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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23. 2016

<백의 그림자> 절망 없이 희망이 있겠냐만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이 남자, 무재 씨의 사랑 고백. 갈비탕을 좋아하냐, 자기는 냉면을 좋아한다, 뭐가 좋으냐, 당신의 취향이 궁금해지는 그 마음. 그리고 쇄골이 반듯한 사람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과 별개로, 그냥 상관 없이 당신이 좋다고 한다. 좋으니까 좋은 것. 사랑이 원래 그렇지. 저 대목이 정말 좋더라.. 좋으니까 좋은.


빚의 규모가 너무 커서 빚보다는 빚의 이자를 갚느라고 힘든 노동을 하는 와중에 아홉 식구의 생활비도 버는 생활을 하다가 소년 무재의 아버지의 그림자가 끝끝내 일어서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당신,그림자를 따라갔나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신뢰하는 미현님이 권한 소설. 사람들이 무거운 일상에 숨도 못쉴 무렵, 절망의 끝에서 그림자가 일어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은교와 무재는 그림자가 일어서는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다. 철거를 앞둔 전자상가에서 아마도 최저임금에 일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이들. 아마 은교의 고용주인 여씨 아저씨를 비롯해 그들이 사는 세상 모두, 그림자가 무섭다는 걸 안다. 철거된 상가가 예쁘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바뀌어도 그들의 세상은 바로 옆 잿빛 공간이다. 그들은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강고하지는 않아 보인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번듯한 스펙 하나 없는 약자들. 다만 성실한 하루를 이어가는 이들이다. 쉽게 다치지 않을 것 같은 담담함은 곡절 많은 삶을 말없이 증명하는 느낌. 그래도 손을 잡고 노래를 하면서 버텨낼 이들.


이 소설의 대화들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가장 진실해질 때의 그 표정으로 오고 간다. 절규와 환희도 없이, 훈계도 신파도 없이, 170쪽의 짧고 깊은 소설. 근래 가장 윤리적인 절망과 희망 앞에서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책 뒤에 붙은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이다. 소설도 좋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이 소설에 대해 뭔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급한 의무감을 느꼈다"는 신형철의 해설도 좋다. 그리고 2010년 6월이라 기록한 황정은 작가의 말도 무지 좋다...


여전히 남폭한 이 세계에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몇 있으므로
세계가 그들에게 좀
덜 폭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 세계는
진작부터
별로 거칠 것도 없다는 듯
이러고 있어
다만
곁에 있는 것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거나 하는 초
자기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
밤길에
간 두 사람이 누군가 만나기를 소망
한다

모두 건강하고
건강하길


처연하고 서글플 법 한데, 그들의 건조한 일상에서 따뜻한 기운을 찾아내게 된다. 무너지지 말자고, 슬쩍 한 마디 건내주고 싶기도 하다. '슬럼'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다가오는데, 아마 나는 수많은 은교씨와 무재씨를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것도 무섭다. 이 소설이 고마운 까닭의 하나겠지. 호들갑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래도 내심 기대할 수 있는 한 가닥을 남겨두는 것도 고맙다. 작가의 말대로 초-자기애적 믿음을 갖기 어려운 시대, 그래도 따뜻한 걸 조금 끌어온 그 노오력.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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