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Jan 02. 2016

<비욘드뉴스> 팩트 대신 이해를 제공하라

저널리즘에도 5W 대신 5I, 지적인 중량감이 필요



최근 미디어 이슈 PT 자료에 활용했다^^ 땡큐!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가 인터넷에 과다 노출, 싸구려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저널리즘의 결론이 '왜'를 묻는 것은 수순이다. 선거 결과 보도? 정부 발표 속보? 인터넷과 TV의 몫이다. 다음날 신문은 veiwspaper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관점을 전달해주는 것은 익숙치 않은 일이다.

그동안 대세는 ‘퀄리티 저널리즘’이었다. 경험있는 기자들이 현장에서 증언을 수집하고, 기록을 뒤지며, 사안을 확인, 재확인하는 방식. 그러나 <비욘드뉴스>는 이제 ‘지혜의 wisdom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독창적 보도에 더해 현안에 대한 지식, 심지어 자기 의견까지 더하라고 한다. Beyond news의 길을 여기서 찾자는 얘기다.


사실 보도냐, 비평과 의견이냐. 

언론은 언제나 불편하다. 귀에 쓴 이야기이니 당연. 미국 독립 무렵, 연방주의자 애덤스는 연방반대주의 편집장의 작업을 테러리즘이라 불렀다. 중국이 반정부 의견을 모두 반테러법으로 잡겠다는 최근 움직임도 역사적 맥락이 있는 셈이다. 애덤스 대통령은 1798년 선동금지법에 서명했다. 많은 연방 반대 편집자들이 기소됐고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1800년 대통령이 된 토마스 제퍼슨은 연방 반대 편이었다. 그는 연방주의 신문에 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정권 교체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다니, 어떤 논리나 주장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 어찌됐겠는가.

“19세기를 거치면서 사실은 저널리즘을 점점 더 지배..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은 비평과 정치적 논평의 중요성을 줄이는데 훨씬 더 열정적이었다. 중도를 지향, 더 많은 부수를 확보했다. 중립성은 구독 취소나 성난 정치인들로부터 보호막이 됐다”

덕분에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단순 사실 보도는 기자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저급하다"고 했던 미국의 뉴스들은 단순 사실 보도, 객관성에 소명을 걸었다. 의견은 ‘오피니언’ 지면에 갇혔다. 한 때 기자로 일했던 나도 이렇게 배웠다. 의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혹독하게 훈련받았다. 전통 저널리즘의 객관주의는 완벽하게 중립을 지향한다. 여전히 포털 뉴스에 여야 기사가 각 몇 개가 실렸는지 세어보는 방식의 공정성 연구가 이뤄진다.


사실 보도의 편향성, 균형의 불공정함 


어떤걸 보도할지, 또 보도하지 않을지에 대한 판단도 선택이다. 그 선택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20세기 중반 미국 저널리즘은 관점에서 실패, 사실을 쫓아다니며 숲은 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전통저널리즘의 객관주의는 완벽한 중립을 지향했다. 그러나, 1000개 중 999개 사실을 골라내는 것도, 어떤 취재원을 인용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도 편향성을 드러낸다. 복잡한 정치분쟁에서 녹색당 티파티 대신 민주당 공화당을 택하는 것도 이미 심판. 완벽하게 중립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균형? 나치 독일에서 탈출한 이가 TV에 출연, 자기 조국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경우, 반드시 나치 대변인이 나와서 히틀러를 칭찬해야 할까?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공정성 심의를 한다. 한 쪽의 주장이 보도될 경우, 반드시 반대편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쟁점이 벌어졌을 때, 인터뷰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보도의 기본. 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공정성, 객관성 위반이라는 정부의 제재는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깨졌다. '방통위, CBS 뉴스쇼 항소심서도 졌다' 

저자는 "객관성, 공정성, 불편부당, 균형 등은 때로 기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않는 핑계"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관점이나 견해 없이 단순 관찰자 뉴스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혐오증을 조장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의견은 시민들을 화나게 만들기도 하는데 "분노한 일부 시민 없이 민주주의가 역동적이고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을 상상하긴 힘들다"는게 핵심. 의견은 가치를 더하고 시민참여를 도와준다고. 


사실 보도를 앞세우지만, 객관적인 중립이란 건 불가능하며 편향성을 띠게 마련이란 것은 나의 오래된 주장이다. 기계적 중립이 결코 중립적이지도, 균형적이지 않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예전 글 <포털 미디어,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인식>  에서도 강조했지만, 기계적 중립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관점을 갖는 뉴스의 방향, 지혜의 저널리즘 


"중요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으며 심지어 무의미한 해석들. 우둔한데다..들을 마음도, 클릭할 생각도 들지않게 하는 완고하고 과열된 의견"이 아마 우리가 지향하는 뉴스의 대척점에 있다. 현실에서 흔히 만나는 뉴스다. 혹평, 편협함, 불굴의 당파주의, 잘못된 추론,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발. 그러나 이런 뉴스는 잠시 대중을 현혹시킬 뿐 저널리즘이 아니다. 선정적 공격도 문제지만, 제3자를 건조하게 인용, 과하게 몸사리는 '그 누구도 공격할 의도가 없는 밋밋한 성찰'도 문제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언론은 지나치게 몸조심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는 공공정책 등 중요한 쟁점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안된다고. 


사실을 전달한다는 이유로 밋밋하고 소심한 보도는 독자의 외면만 부른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만든다. 이쪽도 저쪽도 다 맞거나, 다 나쁜 놈 같은 보도는 무책임하다. 여기에 의무방어 같은 인용 대신 깊이 있는 분석도 필수. 폴 크루그먼은 "많은 정치 저널리즘은 상황 돌아가는걸 아는 내부자..고위 관료와의 인터뷰가 황금률로 간주된다. 하지만 내부자 특종이 가치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공개 정보를 주의 깊게 분석하는게 낫다"고 말했다. 속보 경쟁 대신 사려 깊고 예리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언론 해먹기 힘들어졌다는게 팩트. 게다가 경쟁 상대는 과거와 비교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지적했듯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의 팩트는 넘친다. 아마추어들이 사진 찍고, 트윗하고, 블로깅한다. "아마추어들이 저널리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정확성 신뢰성 공정성 등이 쇠퇴하지 않는지 주의깊게 봐야..하지만 공정하게 말해 인터넷의 민첩한 피드백이 비판과 정정에도 빨리 반응한다"고 했다. 아마추어들의 등장은 유쾌한 민주적 현상이기도 하다. gate keeper 를 자처한 언론인들은 좁고 제한적인 gate 를 설정해왔지만, 이제는 만인의 기자인 시대. 관점도 다양해진다. 심지어 아마추어들은 대부분 사적이익의 지배에서 자유롭다. 사적 이익은 WSJ나 폭스가 더 많이 영향받는다는 지적에는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 의식 속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저널리즘은 기존 출입처 시스템을 통한 취재 방식으로 얻어내기 힘들다. "뉴스 자체보다 그 의미와 결과를 찾는 지혜의 저널리스트들은 경찰청 보다는 싱크탱크부터 감옥, 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직과 지역에서 정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한다. 출입처 시스템 외에 전통적 채용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에 수긍한다. 누구나 얻는 정보 대신 독창적 관점이 핵심이라면 '제네럴리스트'가 아니라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가능하다. 책에서 전하는 '아마추어' 저널리즘의 사례들은 기존 미디어를 매우 부끄럽게 만든다. 이게 오늘날 언론의 맨얼굴이다. 지혜의 저널리즘을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건 5W 대신 5I. 기자들이 깊이 새겨둘만한 제안이다. 

저널리즘은 좀 더 많은 지적인 중량감이 필요. 온라인에서 쉽게 접하는 5W 대신 5I. 교양있고 informed 지적이며 intelligent 흥미롭고 interesting 통찰력 있으며 insightful 해석적인 interpretive 


내 주장을 마구 떠드는게 의견이고 관점이 아니다. 다른 관점에 대해 공정할 뿐 아니라 상반되는 의견에 노출되면서 검증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뉴스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전해주는 저널리즘의 소명. 기레기 시대에 고급진 고민, 혹은 절박한 탐색이다. 

뉴욕대 저널리즘 교수인 저자 Mitchell Stephens 는 언론 역사를 꿰뚫고 있다. 전작 <뉴스의 역사>는 NYT  선정 '올해의 주목할 책'으로 꼽혔다나.  저자의 해박한 해석이 저널리즘 그 자체다. 1장에서는 수 백 년 전의 미국 언론사가 시시콜콜하게 나와서 당황했는데, 곧바로 현실의 고민과 엮어내는 스토리에 빠져든다. 단독 저서 5권에 번역서 8권이나 내셨다는 이 책의 역자,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의 인터뷰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언론을 망치고 있다" 도 일독을 추천한다. 눈  밝은 김 소장님이 먼저 발견하고 국내 독자에게 전해준 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