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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11. 2018

<무지개떡 건축>어쩌면 도시의 필연

어쩌다보니 2018년 첫 책. 황두진쌤이 직접 이 책 이야기를 해주시는 자리가 있었다. 그리운 구본준님 덕분에 건축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진지 몇 년. 황쌤 이름이야 여러차례 접했는데, 이제야 기회가 생겼다. 


도시를 걷는 재미는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는데서 나온다. 풍광이 화려하거나 편안한 자연이 아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 없는 욕심도 만들어내는 편집샵,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하는 빵집을 지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획일화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망가지기는 하지만 한때 가로수길이 그랬고, 이태원도 뒷골목이 남아있고. 그저 높은 빌딩의 담벼락을 지나가는 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솔깃하다. 도시 살이의 묘미를 살려주는 도시 건축은 무엇이 다를까. 

'무지개떡 건축'이라니, 어쩐지 고급진 건축가의 분위기에 촌스럽고 소박한 이미지를 더해 확 와닿는 이름이다. 더구나 직관적이다. 지하에는 갤러리나 스튜디오, 1층에는 카페, 2, 3층에는 사무실, 의원, 4층에는 원룸이나 주거공간, 5층에는 옥상마당이 있는 집. 천편일률적인 공간이 아니다. 다양성이 공간 건축에서도 힘이 된다. '도시란 결국 다원적인 가치를 담는 그릇이며 바로 그런 점에서 단일 산업 위주의 폐쇄적인 농어촌과 다르다고 믿었다'(189쪽)는 저자에 동의한다.

황쌤 작품. 다공성을 살려 구멍이 송송. 그리고 구조는 바로 아래 무지개떡 구상을 실현한 건물이란다.


무지개떡 건축의 기본은 요즘 핫한 '일 생활 균형'.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곳을 합칠 수 있다는 얘기다.
도심에는 왜 사무실만 있으란 법 있나. 동네 주민이 있어야 투표를 통해 지역 살리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 있다.


왜 출퇴근에 시달리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가. 역시 설득력 있다.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가장 확실하게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 아무리 문화시설을 짓고 공원을 조성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면 소용이 별로 없다.'(51쪽) 

황쌤은 바로 이 목련원에서 거주하고 업무한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집이라고.


2004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제주 이주 실험을 시작, 2012년 본사까지 옮기게 된 결정적 이유다. '즐겁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업'이 미션인데, 출퇴근 몇 시간 들이면 직원인들 즐거울리가. 실제 20분 이내로 출퇴근 시간이 단축된 제주 직원들의 생활은 서울 직원들과 달랐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시대라 가능해진 변화인데, 또 다른 도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무지개떡 건축은 도시의 필연. 수평적으로 더 확장할 수 없으나, '마을'이 필요하다면 수직적으로 올릴 수 밖에 없다. 버려진 공간 옥상을 살리면서 마당을 즐기는 집은 모두의 로망. 다 부수고, 새로 올리는게 정답이 아니라면 기존 아파트, 혹은 사무공간을 조금 혹은 많이 손 봐서,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테고. 고용의 종말을 앞두고, 일자리 개념, 일과 생활에 대한 철학이 모두 바뀌는 시대에 산업혁명기 공장 지대와 베드타운, 도심 사무공간에 신도시 아파트로 분리되던 도시는 새로운 스타일이 필요하다.


이 도시에서 비싼 대지를 구하고 건물을 올려 옥상마당을 가지는 것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일이겠지만, 조금 변형을 해본다면 최근 관심 받는 셰어하우스를 비롯해, 새로운 공동체에게도 어울리는 공간이 태어날 수 있다.


"도시에서의 삶의 조건을 담고 있으면서 여전히 양질의 삶에 대한 꿈이 투영된 새로운 이상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수직의 마을' 개념이다. 마을에는 집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동네 어귀 정자에서 시작해서 마을회관, 우물, 가게,학교,우체국, 그리고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뒷산이 다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만 이것들을 더는 수평으로 배열할 수는 없으니 기존 아파트 구조를 이용해서 수직적으로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159쪽)"


오래된 거리, 혹은 도심에 대한 상상은 이어지는데. 아파트촌도 달라질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가, 책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용도변경 등 법과 제도에 조금 유연한 상상을 해본다면, 지금도 등장하고 있는 1층 어린이집, 작은 스튜디오, 상점이 얼마든 1층에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이어가도록, 생각의 자극을 준다. 오로지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주제 하나로 책 한 권을 풀어내는게 일반인에게도 관심 있을까 싶었는데, 어느새 설득된 것은 이 덕분이다. 상상해봐, 생각을 다르게 해 봐. 그리고 봐 봐. 이렇게 해봤어.

새벽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와 잠시 쉬는 집. 그러나 '일 생활 균형'이 가능하다면, 아니 가능하도록 세상을 바꿔본다면, 다양한 시도 중간에 반드시 건축이 들어가겠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만도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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