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Apr 08. 2018

<서촌> 그래, 도시!

황두진쌤과 도시 산책

아는 분은 아시지만, 독서모임 '트레바리'를 좋아합니다. 한 달에 한 권 책 읽고 3시간 여 토론한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해보면 압니다. 2014년 5월부터 베타 테스터로 참여, 클럽장까지 꾸준히 해오다가 작년 봄 직장 옮기고 여차저차 그만뒀죠. 4개월 한 시즌 쉬었더니, 저를 채우는 일이 필요하다 싶어서 작년 9~12월 시즌에는 멤버로 등록했습니다. 클럽장은 못해도 클럽 멤버야 뭐^^;;

지난 시즌 건축가 황두진쌤이 클럽장인 '그래, 도시!'에 참여했습니다. 건축 이야기란게 전문가 코멘트와 함께 책을 읽으면 재미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첫 책 '무지개떡 건축'의 리뷰는 여기. 무엇보다 3월 번개는 황쌤이 가이드로 나선 서촌 산책이었습니다. 사실 토요일은 일주일 단 하루 쉬는 날이라,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이 번개는 놓칠 수가 없었어요. 알찬 내용, 다 전할 수는 없고. 궁금한 분은 '그래 도시'에 등록하세요. 5~8월 시즌은 마감된 것 같습니다만ㅎ

바빴던 3월 어느 토요일, 미세먼지도 잠잠하고 걷기에 딱 좋았던 날의 사진입니다. 1.3만보 정도 걸었다네요.

목련원. 통의동 골목에 튀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건물 두 동을 연결시켜놓았는데, 한쪽이 황두진건축사무소 사무실. 한쪽은 황두진쌤 집입니다. 무지개떡 건축 이론에서 강조하는 '직주근접', 직장과 주거지가 근접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붙어 있죠. 놀랍게도 2층 통로가 황쌤의 서재 겸 사무실입니다. 인터넷 곳곳에 '목련원'이라는 이 건축물의 사진이 있지만, 프라이버시 존중 차원에서 저는 요 사진만.


마당 한 귀퉁이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전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숨어있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작은 '홀'이 나옵니다. 한쪽 벽은 건축책. 한 20명은 거뜬히 세미나가 가능한 공간. 진짜 부러운 공간입니다ㅎㅎ 오른쪽 사진 모자 쓰신 분이 황쌤. 살짝 얼굴이 노출된 분들은 우리 클럽 멤버들.


황쌤은 2002년부터 서촌에 살아온 동네 주민. 서촌 산책에 앞서, 공부부터 해봅니다. 1750년 그림에도 경복궁은 분명히 보이고, 왼쪽에 서촌이 보입니다. 사실 청계천 기준으로 윗쪽을 북촌이라 한지라, 여기가 서쪽 동네가 맞느냐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만.
당시의 길은 지금과 다릅니다. 경복궁역에서 자하문터널로 올라가는 길은 원래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길 따라 집들을 들어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광화문에서 좌회전해서 사직터널로 가는 길도 없었다고요. 사직단으로 가려면, 지금 서울시경 앞을 지나는 길이 유일했다고 합니다.


통의동 '목련원'을 나서 조금 걷다보면 아주 좁고 예쁜 골목이 나옵니다. 진짜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고, 기와지붕 선들이 날렵하게 이어집니다.

종교를 믿는 분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기도 하고요. 이런 골목 주택지의 주차장 문제는 대승적으로 생각해볼 문제...

통인동 효자아파트로 알았는데, 무튼 통인아파트는 통인시장의 한 축입니다. 1층에는 상점이 줄을 잇고, 2층부터 주거시설인 무지개떡 건축. 듣기 전에는 그곳에 있는지 인지도 못했습니다.. 다니엘 린데만이 사범으로 있던 무술도장이 2층에 있다고요. 오른쪽 사진은 저 동네에서 가장 장사가 잘된다는, 그래서 빵을 사먹기 힘들다는 효자베이커리입니다. 줄이 늘 길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저런 모습이라니.

중인들의 거주지였던 서촌. 이른바 조선시대의 변호사, 의사, 통역사 등 '중인'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고요. 무엇보다 친일파 윤덕영의 벽수산장 흔적이 흥미롭습니다. 걷다보니 서촌 한 절반이 한 집안의 산장에 해당되는데, 그 입구를 지키던 경계석만 덩그러니, 어울리지 않게 남아있네요.


벽수산장은 정말 커다란 단지에 가까웠고, 실제 윤덕영이 살다가 해방 이후 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가 썼다는 건물 모습은 정말 기이합니다.. 조선 초기 저런 아방궁을 짓고..


전신주 줄이 가로지르는 골목을 넘어가면 인왕산이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골목 넘어 우아한 계단을 올라가면 보이는 집이 이른바 '윤 황후 집'. 찾아보면 1977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됐다가, 붕괴 위험 등의 민원으로 97년 해제됐다고 합니다. 이후 20년이 지났는데 아직 붕괴되지 않았고, 실제 다세대 주택으로 여러 가구가 살고 있다고요. 몹시 허름해서 보수가 필요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계단만 봐도 풍모가 어딘지 다릅니다.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 윤보선 고택으로 약 100년 됐다는데, 이 집이 제대로 인정된다면 그보다 앞선 한옥이라고요.


오래된 한옥을 뒤로 하고, 길 따라 가다보니 놀랍게도 '서촌의 비버리힐즈'랄까. 부촌이 나옵니다. 전망 끝내주겠다 싶습니다. 높고 긴 담장들.


모퉁이를 돌고 돌면.. 드디어 나옵니다.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경. 서촌의 한 자락에서 이런 뷰를 볼 수 있군요.

인왕산 자락에 옥인 시범아파트가 있었다는 건 처음 들었습니다. 71년 준공. 저와 나이가 같을 수도 있을 이 아파트는 9개동 308세대나 됐다는데, 다 철거되고 남은건 왼쪽 사진의 벽 일부만. 계곡 위에 아파트를 올렸다니 놀랍고, 완전히 사라진 것도 놀랍고.

인왕산이 참 가깝습니다. 그리고 정말 잘 생긴 산입니다. 내려오는 길, 수성동 계곡에서 기념 사진. 겸재 정선과 같은 곳을 보고 있습니다.


수성계곡 내려오다보면, 마을버스 종점. 동네 분위기가 고즈넉합니다. 오른쪽 사진 가운데에 폐가가 된 적산가옥이 보입니다. 누가 저걸 재개발하더라도, 원형을 보존하면서 해줘도 좋겠는데.

왼쪽은 박노수 미술관. 몇 년 전, 한 번 들려본 기억이..  언제 다시 가볼까요.
오른쪽은 '무지개떡 건축'에 사진이 나오는 바로 그 골목. 1층에는 상점이, 2층 이상은 주거지. 평온한 삶과 유동인구를 만들어내는 상업지구의 조화.


왼쪽 사진은 책에 나오는 건물이 또 나와 반가웠어요. 무지개떡 건축의 시초랄까. 한옥 상가! 2층에 실제 주인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적 건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골목 끝에 있는 기이한 동네ㅎㅎ  핫플레스도 많은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듯 하고. 이날 저녁 벙개를 한 식당 사진으로 마감합니다. 서촌 나들이, 날 좋고 시간 여유 있을 때 또 해보겠죠. 사실 사무실에서 가까운 동네인데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더스탠드 에비뉴> 컨테이너 박스 116개의 변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