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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29. 2019

<제주 3박4일> 곶자왈과 올레, 숲을 걷다

화순곶자왈, 올레14길, 절물휴양림까지

이번 제주여행은 사실 술 마시러 갔습니다. 저의 제대(?) 기념 한 잔 하기로 G님, J님과 일정을 맞춰보고 있었는데요. 이날 안되고, 저날 안되고.. 그러다가, J님이 정쌤과 제주에서 보기로 한 저녁이 있는데,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한거죠. 술 마시러 제주에?? (사실 오래 전 그런 날이 한 번 있었죠. 갑님 보러 을로서)


처음에는 빵 터졌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와이놋. 하루는 그렇게 보내고, 나머지는 그냥 놀러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작당했습니다. 결정 뒤 바쁘신 딸, 엄마식 여행(!)에 관심없는 아들, 또 바쁜 남푠까지 모두 외면해서 홀로여행이 성사됐고.. 3박4일 제주여행.. 사실 한때 꽤 제주를 들락거렸지만, 이렇게 오래! 길게! 가본 것도 처음. 그런 여유는 없이 살아온거죠ㅎㅎ


저는 걷는 여행으로 컨셉을 잡았어요. 하지만 첫날 오후 공항서 만난 제주전문가 J님은 황당하다는 반응. 날씨 앱에는 목금토일 온통 천둥번개 표시. 훅 찌고 습한, 언제 빗방울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었어요. 하지만 역시 J님. 중문에서 정쌤을 저녁에 봐야하니.. 가는 길에는 '화순곶자왈'이 적당하다고 했습니다. 완벽한 결정이었어요.


참고로 이번 여행 기록 두 개 더.

<제주 3박4일> 먹방 기록

<제주 3박4일> 박물관과 공원을 만든 한 사람의 힘


정말 딱 좋은, 화순곶자왈


제가 동백동산, 선흘곶자왈 얘기를 꺼내는 순간, J님이 제주 지리 모르냐며... ㅠ  화순곶자왈은 가는 길.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곶자왈의 특성은 그대로였어요. 원시림 같은 오래된 풍경. 인간의 손길이 가장 적은 공간.. 게다가 이 곳은 인기 관광지가 아닌지라.. 이날 사람 거의 못 봤어요.


신기하게도 곶자왈 내부에 소 떼가. 참 팔자 좋은 소라고 떠들다 생각해보면, 팔자 좋은 소의 운명이란.

제가 좋아하는 초록초록 연두연두 한 아이들이 곳곳에.


곶자왈의 비경에선 빼놓을 수 없는 뭔가 깊은 숲속으로 진입하는 느낌. 그리고.. 이 곶자왈은요.. 정말 잠깐, 잠깐 올랐는데 엄청난 전망대가 나오더라고요. 가성비 갑. 잠깐 고생하고 훌륭한 안식. 다만 운무가 많아서 뷰는 쫌 아쉽. 그러나 제주의 행복한 산책. 더할나위 없이 딱 좋았던 시간입니다.


판포 탐험과 올레14길


여행을 준비하다가, 친구가 제주에 작은 집을 하나 빌려놓은 걸 알게됐어요. 호텔 취소했죠. 포구의 작은 집이라고요. 세상에, 드디어 그런 집에 머물 기회가.

셋째날부터는 혼자 여행. 친구집 담벼락을 돌아나가면 바로 바다가 펼쳐집니다. 판포는 스노클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어요.


판포 포구.. 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해녀와 어부가 있는 마을. 이렇게 가까이 해녀 분을 만난건 처음인데요.. 허리가 휘어질 만큼 망태에 뭔가 가득 담아 가시는데.. 수확의 기쁨도 있겠지만, 고단한 삶의 무게가 간단치 않다 싶은 제3자 도시사람 관찰기.


올레 14길 탐험


내륙에서 시작되는 14길이 바다를 만나는 건 월령리. 판포 바로 옆입니다. 선인장 자생지로도 유명한데, 바위 틈마다 연두빛 선인장이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냅니다. 그런데 멕시코에서 조류를 타고 넘어온 선인장이라고요? 약재로도 쓰인다는데 하여간에 놀라운 사연. 카카오맵을 계속 보면서 다녔는데 월령리 지도에는 '무명천할머니삶터'라는게 뜹니다. 4.3 당시 총탄에 턱을 잃은뒤 평생 무명천으로 감고 고통의 세월을 보내셨죠. 말하는 건 불가능하고, 먹는 것도 고통인 삶. 예전에 까멜이 선물했던 할머니 그림책도 생각나고... 할머니의 삶터를 보존해주셔서 고마운 마음. 아니, 할머니의 삶을 지켜주신 월령리 분들에게 감사.


올레14길은 온통 돌길이라 힘들었어요. 길이 없어지나 싶을 때 마다 올레 리본이 등장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저 길로 가야하나 싶을 때 돌벽에서 인사하는 리본들. 물론 제가 있는 위치 기준으로 올레길을 세세히 보여주는 카카오맵 도움을 엄청 받았습니다.


돌길이 어려운건.. 어디로 발을 디뎌야할지, 걸음마다 긴장하여 폴짝거려야 하기 때문. 삐끗해 넘어지면 간단치 않은 상황이 되겠죠. 제가 멍청하게도 스포츠샌들을 신어서, 발이 다치지 않는 것도 중요했어요. 근데.. 돌길인 대신 이 구간 걸어가는데 사람 거의 없었어요. 날씨가 흐렸는데 몽환적인 바다와 하늘과 구름.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세게 불고요. 혼자 걷는 이에게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순간들.


돌길이 끝나면 휠체어올레길이라 불리는 구간입니다. 잘 닦여진 길. 고맙기도 해라.. 그리고 마을로 접어드는데.. 바닷바람이 사라지고 찜통 같은 날씨에 힘들던 무렵 거짓말처럼 등장한 표지판. 그리고 연두색 대문으로 들어가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책방 #북스토어아베끄


엄청 시원해서, 잠시 서가 구경을 어쩔 수 없이ㅎㅎ 기증자 이름을 명시한 중고책 서가도 재미있고요. 수익금은 유기견 돕는데 쓴다고 합니다. 책방답게 책방책들. 고마운 공간이라 책 한 권 샀어요.


그리고 금능. 아침에 중문 바다는 강한 파도에 서핑족만 있더니, 14길 금능해수욕장은 무릎 높이 잔잔한 바다. 아이들만 신났고요.

참고로 부근 바다 다음날 사진ㅎㅎ

한림 쪽으로 들어갔다가 정처 없는 걸음에 흔들리면서 급검색. #앤트러사이트한림 찾아갔죠. 문을 여는 순간, 릴라언니가 예전에 엄청 칭찬했던 기억이 나더군요. 흙과 나무가 그대로 바닥. 정말 탐험적 공간이어요. 어떻게 이런 공간을 상상하죠?


무튼 둘째날, 오전에 중문 바닷가 잠시 걸었던 것에 더해.. 2.6만보 육박



절물휴양림, 장생의 숲길, 절물오름


제주여행 넷째날이자 마지막날 오후. 이날 점심을 애월에서 하고, 봄날까페에서 인스타 사진 찍고 놀긴 했는데. 애월 바닷가 올레길을 걸을 처지는 아녔어요. 너무나 쨍한 하늘. 정말 여름 날씨. 올레길을 포기하고, 잠시 일찍 서울 갈까 생각하다가.. 검색 신공 발휘. 절물휴양림까지 40분. 갈만 했습니다. 바로 출발.


제가 한때 좋아했던 곳. 절물.. 입구에는 빽빽한 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어요. 주차장 들어가는 차들의 행렬에 깜짝 놀라서, 잽싸게 입구 쪽 길가에 다른 차들 따라 주차. 사람이 엄청 많다는 건.. 이런 더위에 시원한 피서지라는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제주는 사실 숲의 섬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요. 실제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요. 시원하고 향긋하고. 저렇게 누워있는 분들이 많을 줄이야.


가볍게 두 시간 예상했는데 3시간반 코스라는 장생의 숲길로 잘못 진입.. 했다고 생각하여 처음 2.3km를 나름 미친 속도로 걸었어요. 다른 이들 추월하며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는데 불현듯 나가는 길 갈래길 등장. 14시 이후는 장생의 숲길 가지 말라는 표지판에 은근 안도하며 나가는 길로 아주 여유있게 숲을 즐겼어요. 새소리, 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 숲 냄새 흙 냄새 즐겨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사랑하고.


그렇게 걷다가 또 갈림길. 그래, 역시.. 뭐 이렇게 숲 대신 절물오름으로 방향 선회.. 이런 곳에선 내려오는 사람이 그렇게 부럽습니다. 사실 30분 뒤에 저의 모습일텐데, 30분 뒤에 흐뭇할 나를 부러워하며 헥헥헥. 무튼 #절물휴양림 #절물오름 오랜만에. 4일간의 제주 여행 중 이날 만 화창. 이날만 푸른 하늘. 그림 같은 구름. 멀리 바다와 한라산이 다 보이는 그런 운수좋은날.


절물이 '절의 물'이란거 아세요? 사랑스러운 숲..  이날 오전 한림공원 걷고, 오후에 절물까지.. 2.5만보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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