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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29. 2019

<제주 3박4일> 박물관과 공원을 만든 한 사람의 힘

본태박물관과 한림공원

이번 여행기록은 이 글 외에 총 세 편.

<제주 3박4일> 곶자왈과 올레, 숲을 걷다

<제주 3박4일> 먹방 기록


전통을 수집하고 살려낸 힘


제주여행 둘째날에도 날은 흐렸어요. 공기는 습하고 뜨거웠죠. 걷긴 어딜 걷겠냐 하다가, 중문 인근 본태박물관을 찾았어요. 여러 번 가봤을 것 같은 J님도 처음이라고요. 저와 G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본태, 본래의 형태, 본때? 이곳은 현대가 며느리 이행자님이 만드셨다고 합니다. 노현정 전 아나운서 시어머니. 수집 취미가 있으셨나 봅니다. 어느 인터뷰에 보니, 장을 모으다가 자리가 없어 작은 소반 모으다가, 조각보 모으다가.. 실제 박물관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꽃상여와 꼭두의 미학’ 특별전이라는데, 꽃상여도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도 낯설고 아름답습니다.  


고인이 가는 길 외롭지 않도록 여러 친구들을 함께 보내는 건가요. 저승길 동반자 꼭두는 다채롭더군요. 대량생산의 시대가 아닌지라ㅎㅎ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기도 하겠지만, 아가씨의 뒷모습, 물구나무선 이, 말을 탄 이, 온갖 복색으로 다른 표정을 가진 꼭두.  


결국은 또 스케일인데.. 이 분, 정말 모으는 규모가 남다릅니다...  꼭두 뿐 아니라 상여에 쓰이는 용마루 등 뭐 많은데요. 문외한은 여기까지.


이행자님이 모았다는 소반은 저렇게 거대한 벽을 이루고. 옆 벽은 조각보의 향연이 펼쳐지고, 또다른 복도에는 베개의 산. 우리 베갯모가 저렇게 다양한 것인지, 각자 맘에 드는 문양으로 한껏 멋을 뽐내는 경연장이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못 담았지만 옛 선인들이 각각 다른 모양의 찻주전자에 멋을 부렸다는 사실도 상상해보면 근사해요. 책장, 담뱃대, 모든 소품이 다 그렇더군요. '바늘방석'은 그 이름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으며 신기해서. 바늘방석조차 저렇게 고운 공예품이라니.


본태박물관 신기한게, 모퉁이 돌면 갑자기 느닷없이 살바도르 달리가 나오고, 어느 방에 들어가면 백남준입니다. 제주에 이런 곳이.


건축 자체가 작품. 서 있는 사람도 있어 보이는군요. 안도 타다오의 이 곳을 더 잘 봐야 하는데...


운무 가득한 이날... 뵈는게 별로 없어서리.


이게 그 유명한 방주교회라는데..... 그 멋진 풍경은 어디로 가고... 공포 영화마냥 스산한 날이었어요. 실제 운무 가득한 길을 가다보면 믿기지않는 환상특급.

J님이 운무를 뚫고 운전하는게 신기했습니다. 시야가 몇 미터 안되거든요. 갑자기 앞날이 보이지 않는 제 처지와 겹치면서, 그래, 앞이 안보여도 좁은 시야만큼 초집중,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거지, 어쩌겠어... 이런 개똥철학에 빠졌는데요.. J님이 나중에 해주신 말씀. 차선이탈 방지 운전모드를 썼다나요. 그런 기능이 있는 것도 몰랐지만 .. 한 치 앞이 안 보여도 기술의 힘을 빌리면 된다니... 미래에 대한 준비는 역시 기술이라는 J님. 으아.....


본태박물관의 각별한 재미로 '무한거울의방'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일본의 설치미술가. 본인이 정신병으로 환각에 시달리면서, 치료의 하나로 미술을 했다는데요... 무한거울의 방.. 진짜 무한히 이어지는 빛의 향연인데, 실체는 고작 등 몇 개.. 우리가 인식하는 아름다움은 허상인데. 실체가 아니라한들 쏘왓..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대체 뭐... 라고 하다가, 그녀의 삶에 대한 설명을 좀 보고서야... 그림도.... 어쩐지 짠합니다.


가보면, 이렇게 사진 몇 장 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세상이 펼쳐집니다. 본태박물관 강추. 재벌가의 며느리라지만, 어떤 삶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네요. 다만 수집을 통해 세월의 재미를 찾고, 이를 나누기 위해 멋진 박물관을 만들어주신 분에게도 고맙습니다.


한 사람의 집념이 만든 한림공원


제주여행 넷째날 오전. 홀로 어디를 싸돌아다닐까 하다가.. 숙소인 판포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한림공원에 가보기로 결심. 친구가 좋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대체 왜 추천했는지 알듯 말듯... 아니, 모르겠어요.. 대체로 제 취향은 아닌데 TMI. 정말 지나치게 뭔가 많아요.


아열대 식물관도 꽤 크고 길고 다양하고. 야자수부터 처음보는 식물들... 그런데, 저는 식물박사님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서..


온통 근사한 나무인데 근사한 나무가 너무 많고. 온통 기묘한 돌들이, 또 기묘하게도 너무 많고. 멋진 연못이 펼쳐지면서 연꽃에 반할라치면 멀리 석등이 있고. 물허벅 여인상(이건 어느 나라의 선물이더군요).  


뭐랄까, 야외의 나무에 온실의 식물에 더해 화분의 식물까지! 물론 분재들은 얘기가 다르지만. 곳곳에 화분 식물이 적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뭔가 많아요.


아열대 식물들과 산야(산과 들)의 '잘 다듬어진 자연'에 덥고 지칠 때쯤 동굴이 나옵니다. 정말 엄청 시원합니다. 공기가 다릅니다. 그런데 동굴 설명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리고 용들의 흔적(?)을 보는 우리가 행복할거라는 둥, 어느 기둥을 한바퀴 돌면 지혜를 얻을거라는 둥 좀 귀엽기도 하고.


기기묘묘한 돌들은 또 어디서 다 수집하셨는지. 제주 뿐 아니라 전국에서 다 달려온 것 같은 돌들. 게다가 민속촌이라니. 제주 양식의 초가집, 제주의 살림살이들이 있긴 한데.. 전시 상태가 아주 훌륭하다고 보긴 어려워요.


방마다 뭐가 있는데, 잘 안보여요. 하여간에 많긴 많고 다채롭고, 어마어마한데.. 투머치.


분재에 대해서는.. 저 멋진 나무들 틈에 이게 또 웬 분재냐.... 하고 있는데. 세상에, 분재도 200년, 300년 짜리라니. 이 스케일..


공작새 최소 세 마리 목격. 아무렇지도 않게 관광객들과 함께 길을 갑니다. 지나가다보면 앵무새 먹이주는 공간도 있고. 아열대 식물들 틈에는 뱀과 이구아나, 거북, 새가 틈틈이 튀어나옵니다. 진짜 틈틈이.


이것은 무슨 탑인지.. 자세히 못 봤는데.. 하여간 태극기도 인상적인 한림공원.


이건 분명.. 엄청난 분일거야, 했더니 역시나 동상이 있습니다. 기록을 세세하게 해놓은 별도 건물이 있는데요... 한림공원 역사 자체가 엄청나요. 20대이던 1956년에 제주도의회 의원이었던 송병규님. 10여년 간 한림읍 개발위원장이었다는데.. 협재, 비양도를 묶어 관광단지를 만들고자 1971년에 사업에 착수. 부친의 유산으로 이 땅을 샀다고요. 첨엔 농장도 만들었다가, 농업경영도 하고, 72년에 야자수도 파종하고, 73년부터 82년 조경사업에 나서고..82년에야 개인도 공원을 조성하도록 공원법이 개정된뒤 본격 나섰던 모양입니다. 이 모든걸 하나하나 쌓아온 역사가 벌써 50년 가까지 되는거잖아요...


한림공원에 보면, 재미난 표지판이 많습니다. 어느나라 정상이 방문해서 감탄한 사연 등등. 기록관에는 정주영, 이병철, 재계의 전설 시절에 방문한 사진도 나오고.. 우리 모든 현대사 거물들의 방문 사진이 다 있어요. 그러나 가장 제 눈길을 끈 것은 '인연목'. '우리들의 우정을 소중히', 한림초등학교 제44회 동창회가 심은 나무인가봐요. 이 공원은 한림 사람들과 함께 자라고 뿌리를 내리고... 그리고 한림의 일자리 기업입니다. 기록관에는 100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는데. 하여간에 세심하게 돌보는 분들이 많아요. 식물원 바닥을 치우고, 나무 조경을 하고, 작은 솔로 수석의 먼지까지 털고 계신 분을 보면서... 한림공원의 세월을 다시 생각합니다. 정말 꼭 봐야 한다는 리뷰도 많으니 취향 문제이겠지만, 공원을 좀 더 예쁘게 정리해줄 한림의 다음 세대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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