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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ug 18. 2019

<나들이>치유패거리 W-ing 투어 & 시와님 공연

  두근거리는 나들이길. 605번 버스가 집 앞에서 대방동까지 간다는 사실에 흐뭇했고. 시원한 버스 창가자리에 앉아 타는 분들 구경을 즐기고 있어요. 어르신들과 소년들이 많이 타는구나, 버스란 얼마나 근사한 이 도시의 인프라인가, 잡념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요즘 어딜가나 검색해서 버스 덕을 많이 보고 있거든요. 문득 창밖에는 요며칠 땡겼던 구복만두. 이 시간 긴 줄을 보면서 입맛만 다시고.. 버스를 타면 거리가 더 잘 보입니다. 도시에 사는 재미, 서늘한 감정들이 이리저리 엮입니다. 이렇게 폰질만 안한다면요. 나들이 가는 오후. 멋진 분들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콩닥콩닥


이것은 예고편도 아니고. 가는 길부터 잔망스럽게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멋진 분들을 지금 만나러 가는구나! 발걸음은 가볍고, 비스코티앤파이에서 호두파이와 치즈파이를 챙겼어요. 1차 목적지는 대방역 부근 W-ing. 6월에 ‘성덕 기록'을 남겼던 그 곳입니다. 그리고 이날 저는 또 한 번 '성덕'이 되고야 맙니다. 존경하는 혜신명수님을 만나게 됐거든요.


하현정님 사진. W-ing 의 겉모습은 아늑하고 예쁜 카페입니다.

한 달 전쯤 페이스북 친구 이명수님이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잘 쉬고 있어요?" 밥 한 번 사주고 싶은 마음에 혹시 시간 괜찮으면 가수 시와 공연 보겠냐고요. 아는 이들 좀 초대하신다고요. 가수 시와님 공연이라니, 이런 치유를 마다할 수 있나요. 게다가 제가 사실 명수님 팬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혜신명수님 팬이죠. 작년에 명수님 심장이 잠시 멈추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분의 건강 상황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명수님은 회복되면서 이를 기록으로 남기셨어요. 놀랍게도 그냥 페친의 회복 일기를 보는데, 그만 왈칵 눈물이 나고 고맙고 그렇더라고요. 명수님 페북 보면서 치유의 힘을 나눠받았습니다. '당신이 옳다'는 정혜신님이 마음을 다해 명수님을 살려내는 과정, 두 분의 깊고 열렬한 관계의 아름다움에 감동 쫌 받고요. 이 모든 걸 담담하고 때로 우쭐대며 털어놓는 명수님의 글은 또 어찌나 맑고 단단한지. 제가 올 봄에 힘을 얻은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역시 명수님 덕분에 봤거든요. 명수님의 누이가 배추적 부쳐준 사연, 그거 정말 대단합니다. 덕분에 제가 배추적을 한 40권 정도 사서 돌렸으니, 대단한 능력자 명수님. 사람과 공감할 뿐더러, 사람을 공감하게 만드는 공감킹.

8월17일 토요일 일정은 오후에 비덕님의 사회복지법인 윙(W-ing) 을 제대로 둘러보는 윙투어, 비덕님이 제공하는 밥 먹고 놀기, 그리고 시와님 공연. 참으로 알찬 구성이었죠.


비덕님 윙 투어 맛보기


본명보다 다들 비빌언덕이라 하는 바람에 비덕님이 된 걸까요. 여성의 존엄과 자립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윙을 이끌고 계세요. 비덕님의 윙 투어. 맛보기로 전해드립니다. 윙이 뭐하는 곳이냐. 여성들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역사가 67년이나 되다보니 해온 일도, 윙의 정체성도 계속 진화 중. 그래서 이날 설명이 더 좋았어요.  비덕님 말씀은 붉은글씨. 제가 엄지로 받아친거라 정확하진 않아요.

한마디로 함께 하는 공간? 배우고 말하고 나누고.


“할머니는 일본에서 공부한 신여성이었어요. 양장점을 해서 돈을 벌었는데 20대에 사별했고요. 1953년 바로 이 자리에서 사회사업에 본격 나섰다고 합니다. 그때는 ‘요보호 여성’, 산업화 시대에 무작정 상경한 여성들에게 안전한 숙소를 제공하고 기술을 가르쳤어요.” (요보호 여성이라는 단어가 시대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67년 전에 바로 이 곳에서 여성을 돕는 삶을 시작하셨다는 비덕님의 할머니...)

윙 센터를 직접 설명해주시는 비덕님

 "지금은 푸드뱅크 많지만 1998년 정부가 처음 시작할때 서울푸드뱅크에 나섰어요. 1995년에 부랑인 여성들을 위한 경기여자기술학원에서 불이 나 37명이 사망했어요. 공무원들이 퇴근할때 문을 잠그던 폐쇄시설에서 자율시설로 바뀌는 계기가 됐죠. 군산 성매매 업소에서도 큰 화재로 두 분이 희생된 가운데 2000년대 초반에는 피해여성 쉼터로 운영했습니다. 그때 피해여성으로서 새출발한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지원했습니다. 2005년 한 여성이 바로 이 옆에 피부미용샵 오픈했어요. 의료지원 법률지원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엄청 잘됐어요.

기존 윤락행위 방지법은 피해여성에게 낙인을 찍었어요. 2004년 제정된 성매매방지법은 여성이 남성중심사회의 희생자라는걸 강조하고 피해여성에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요보호여성에서 피해여성, 그리고 일하는 여성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각 시대의 지원 역할이 달라집니다. 제가 비덕님에게 감탄한 건, 푸드뱅크도 해보시고, 쉼터도 운영해보고, 기술교육과 자립을 지원하고, IT 업계 용어로 방향을 바꾸는 '피벗'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말이 쉽지, 정부 예산 지원도 챙겨서 하던대로만 해도 운영은 됩니다. 그런데 이 분은 계속 질문을 던져요. 이 방향이 맞는 걸까? 이렇게 해볼까? 여성을 피해여성으로만 인식하면 문제가 없는 걸까? 그리고 과감하게 새 도전에 나섭니다)


"기존 방송사와 인터뷰를 해도 너무 전형적으로 그리기 때문에 직접 영상을 찍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무렵 직접 말하고 찍는 치유적 글쓰기 워크숍도 시작했어요. 기존 시혜적 복지시설 은성원에서 여성 내면의 힘을 키우고 경제적 독립을 위한 W-ing 센터로 전환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빵보다 장미라는 칼럼을 읽었어요. 치료를 하기보다 같이 철학하면서 공부했어요. 스피노자가 몸이 능동이어야 정신도 능동이 된다고 해서 매주 수요일 2시간 공부하고 금요일에는 2시간 등산했어요."

(왜 그들을 그렇게만 바라보지? 그럼 직접 영상 찍자. 함께 배우면 되지. 이게 말이 쉽지, 2000년대 중반에 뛰어드셨군요. 게다가 결국 심신 단련인가요. 비덕님은 꾸준히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윙의 i는 initiative. 여성이 직접 주도적으로.. 나머지는 놓쳤...)

"인문학 공부는 지식을 위한게 아니라 엉덩이 힘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었어요. 2시간 앉아있고. 과제를 하고.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사회복지 하는 분들은 좋아질거라고만 하는데, 우리는 함께 니체를 봤어요. 삶은 계속 힘들어질거라고, 그런데 그만큼 너의 삶은 깊어진다는 말이 위안이 됐어요. 과거에 대한 두려움을 재해석하는 힘이 생겼어요."


"센터엔 처음 40명이 있었는데 매년 5명씩 꾸준히 사람을 줄였어요. 인권 차원에서  성인 여성이 40명씩 함께 사는 건 힘들잖아요. 그무렵 쉼터는 필요한가? 그분들은 자기 말 잘 들어주는 사회복지사만 원하는게 아닐까? 고민 끝에 쉼터를 반납했어요. 연 8억 정부 예산 반납한거죠. 주거는 밖으로 돌렸어요. 상도동 셰어하우스 26평이면 방 하나씩 쓰도록 하고 여기는 일하는 곳으로 바꿨어요...셰어하우스 임대료는 내라 했는데 복지하는 사람들이 왜 빡빡하냐고 하더군요. 9만원부터 반지하 독채는 16만원이어요. 임대료 제 날짜에 받는데 1년 걸렸어요. 일은 않는데 임대료 내는 사례를 보니 남친이 내주더군요. 그것도 성매매라 했어요."

(쉼터 대신 셰어하우스. 그리고 윙 센터. 이것도 분기점 같아요. 피해여성들을 다 모아놓는 시설에서 벗어나, 주거는 별도로 어떻게든 해결하는 방향에서 함께 배우고 일하는 기반을 만들자..)


"여러가지 했어요. 카페, 목공작업장. 핸드메이드샵. 탈학교 학생들과 분식집도 10년. 일자리를 만들고 취업하도록, 삶이 유지되도록 같이 일하고 같이 뒹굴고 그랬어요. 현재 센터 전체 예산 중 60%만 국가보조금. 나머지는 수익사업으로 운영해요."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자연염색은 딱 한 가지 쪽빛만 시도했답니다. 작업장 구경해보니 그 노력이 와닿습니다. 윙 센터 2층에 정말 예쁜 쪽빛 손수건을 팔고 있었는데, 경황 없어 못 샀네요. 다음에)


윙 센터 1층 벽 니체의 문구에서, 피해 여성 대신 자립하는 일하는 여성들, 그들을 위한 센터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나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야말로 중요합니다. 일상의 힘을 유지하는게 거의 모든 치유의 시작 아닐까요.


8월의 윙 선물 리스트ㅎㅎ 이날 음식이 너무 많아 제가 도착하자마자 냉동고에 일단 보관했던 호두파이와 치즈파이는 센터 분들과 천천히 드시라 했어요. 선물 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을까요?ㅎ

비덕님 지난주에 아드님 결혼하셨다고요. 요즘 언니들은 나이가 가늠되지 않고요ㅎㅎ 사실 별 관심 없습니다. 그냥 비덕님은 비덕님. 사랑스러운 아드님 커플도 이날 인사하는 행운이ㅎㅎ


센터의 1층은 '곁애'라는 카페입니다. 이 공간, 어떻게 만들었는지 도와주신 멋진 분들의 이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날의 음식... 지난번 김탁환쌤 북토크 '덕후의 식탁'에서 알아봤지만, 비덕님 음식은 매우 정갈하고 맛있습니다. 몸에 좋은 맛이란게 보통 맛이 좀 아쉬운건데, 몸에 좋은데 맛있어요ㅎㅎ  이날 음식 100인분 했다고 하시는데, 나머지는 다 나눠주셨어요. 음식 담는걸 거들었던 제게도 손에 쥐어주셨는데, 오징어볶음 뚜껑이 살짝 열리는 바람에 제 에코백에 참사가 벌어진 것은 뒷 일ㅎㅎ 이건 뭐 즐거움의 흔적으로 생각하기로.


새우와 샐러리 냉채는 다져넣은 파프리카가 상큼함을 더하고, 견과류 듬뿍 샐러드는 파인애플 소스가 새콤달콤하게. 가지버섯당근 구이는 이날 함께 한 농부님의 양평 소뿔농장에서 직접 키우셨다고 얼핏 들었는데, 세상에. 평소 안 먹던 당근이 달콤하더군요. 오징어볶음이야 이날의 밥도둑. 떡볶이 식감의 우동면인지, 하여간에 야채 볶음과 말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아버리는 갈비찜, 고소함이 넘치면서 온 몸에 힘을 나눠주는 버섯들깨탕


보통 저는 탄수화물 잘 안 먹어요. 뷔페 가도 왜 밥을 먹냐, 다른 맛난걸 먹어야지.. 하는데, 이날은 밥 색깔이 특이해서 조금 담아 맛보다가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이거 버터일까? 리조또야? 왜 이렇게 고소하지? 뭘 넣으신거지? 알고보니, 그냥 현미와 현미찹쌀 혼밥. 이렇게 고소한 밥이라니 믿기지 않더군요. 결국 한 번 더 가져와 먹었어요. (조만간 바로 주문해보려고요)


이 당근 케잌을 구운 현정님은 원래 기자였다고 합니다. 신문 만들고 잡지 만들다 시간부자가 되면서 빵 사러 가기 귀찮은 마음에 빵을 만들기 시작하셨다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당근케잌은 오랜만입니다. 저도 한때 베이킹을 했는데, 무서워서 설탕 줄이고 버터 대신 오일 쓰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쿨함 혹은 게으름 혹은 오만함 탓에 맛이 그저그랬죠. 이 케잌은 넣을거 다 넣으면서도, 절묘하게 딱 필요한 만큼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과하지 않은 진한 맛. 케잌 장식은 얼그레이 크림이라는데, 느끼함이 1도 없이 고소합니다. 세상에...


대방동에서 오늘의 시와님 공연이 열리는 합정동까지는 지하철. 나란히 걷는 혜신명수님 멋지군요. 지하철 타고 소풍가는 우리.

김태희님 사진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시와님 공연. 4집이군요. 가을에 CD 나온다고요.


시와님은 치유의 가수. 왜 그렇게 불리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도 발성 좀 된다는 말을 이날 듣고 우쭐할 뻔 했는데, 시와님은 목소리의 울림이 달라요. 그리고 가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나를 찾으려 했던건..

문득, 25년 만에 쉬면서 백수 과로사할 지경이라고 낄낄대지만.. 인생4모작을 앞둔 저야말로 이제 나를 찾아야 하는 순간에 서 있습니다.


훌륭한 책을 읽고 밝은 눈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나를 찾는 여정이 끝나지 않아요. 저는 ‘헤매는 기분이 들기에. 중요한 것이 뭔지 몰라 다 가지려하는’, 그런 상황이 아닌지. 노래를 들으면서, 홍대 벨로주 구석 자리에서 살랑살랑 몸을 흔들면서, 마음이 더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간.


꽃보다 시와. 노래해줘서 고마워요.

권신정님 사진



공연 갔는데, 가수 분과 뒷풀이까지 하는 생경한 경험ㅎㅎ 그리고 이 멋진 ’치유패거리’. 저야 처음 뵌 분들이지만 무슨 조직도 아니고 명칭이 있는 것도 아닌듯한데 누군가 말꺼내신 ‘치유패거리’. 딱 어울리는데다 몹시 사랑스러운 이름이라 전 이렇게 부르고 싶네요.

낮에는 처음 뵙는 몇 몇 분들과 엄마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저녁 자리에서는 또 울고 웃는 이야기들. 제가 좀 긴장하거나, 낯선 분들 앞에서 오히려 말이 많아지는 타입인데 어땠나 몰라요. 비덕님이 지나가면서 "오늘도 성덕이시군요"라고 하셨는데, 제가 좋아하는 김탁환쌤 옆자리에 오래 버티면서 온갖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팬클럽을 만들면 오픈채팅방부터 열까, 별 생각을 다하면서 말여요. 세바시 구범준님도 반가웠어요. 우리가 대학시절 얼굴 보던 사이란걸 이제야 알다니ㅋㅋ


저 많은 사람들을 한 장에 담아주신 사진치유자 임종진님 감사합니다. 저는 기록병이 있고, 뭔가 홀린듯 즐겁게 잘 놀았으면, 역시 기록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 남겨봅니다. 실컷 수다떨고 잘 놀고 있는데, 생각꺼리도 잔뜩 얻고, 이런 분 저런 분, 제가 평소 뵙기 힘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혜신명수님도 뵙고.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작심하는 효과를 함께 나누고.


일단 저는 다음엔 비덕님 부엌 보조를 목표로 하기로 했어요.

임종진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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