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Nov 23. 2019

<달문의 길>김탁환쌤과 함께 걷고, 백탑을 만나다

#김탁환 쌤 #열하광인 이후 #백탑파 팬을 자처했으면서 '백탑'이 실재하는지 오늘 알았습니다. 그것도 #탑골공원 안에. 유리박스로 보존되어 있는 국보2호 원각사지십층석탑이 바로 그 백탑. 연암 박지원 선생의 집이 그 뒷편이라, 실학자들이 백탑 아래 모여 놀기를 즐겼다고요. 오늘 탁환쌤과 함께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통해 달문의 팬이 된 이들이 모여 서울 '달문의 길'을 걸었습니다.

서울지식이음축제의 한 행사를 위해 서울도서관 집결. 몇 무리로 나뉘어 걷는데 저는 '달문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통해 달문에게 홀린 저로서는 이런 나들이, 감사하죠. 달문을 모르신다면.. 일단 이 링크ㅎ  


서울도서관에서 나와 익숙한 프레스센터 옆 길로 가는데 이 곳이 '군기시' 터랍니다. 처음 알았네요. 조선시대 병기, 깃발을 제작하던 관청. 지금으로 치면 방위사업청. 유적들이 서울시청 내에 있는 것도 몰랐... 달문은 당시 조정 대신들이 좌익, 우익으로 나뉘어(이념이 아니라 말그대로 왼쪽오른쪽) 산대놀이 경연을 벌일 때, 무서운 의금부와 형조가 짝을 이룬 좌익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군기시와 포도청이 합세한 우익의 으뜸 광대를 맡아 대단한 놀이를 선보이죠... 그래도 까먹었던 이름 '군기시'.


요즘 싸목싸목 걷느라 즐거운 탁환쌤, 걸음 날렵하시고. 달문의 팬으로서 모인 이들은 쫄래쫄래..  


곧바로 청계천 광통교.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화자 모독이 드나들던 쥐영감 세책방이 있는 그곳이죠. '세책방'? 서점이라기보다 대여소. '대소설'을 빌려보며 이야기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곤 했던 조선인들에겐 귀한 장소. 오늘 일정은 모독을 따라 가는 겁니다. 모독이 달문을 만나서 겪는 일이 소설의 골자인데.


1707년생 달문은 실존인물입니다. 연암 박지원이 18세 때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서울서 유명한 이들을 찾아 만나곤 했는데, 정말 재주가 많고 못생겼다는 이로 소개받은 이가 조선의 광대 달문. 연암이 직접 찾아갔더니 정말 못생겼더라는 얘기를 남겼습니다. 광통교에서 함께, 그리고 각자 이어폰으로 들어보는 웹판소리 <달문, 한 없이 좋은사람> 에피소드 1-1. 글로 묘사된 달문을 이렇게 소리와 그림으로 만나다니.


걸음을 재촉해 탑골공원으로. 사실 언제 가봤는지, 안에는 들어가본 적이 있는지 저는 기억에 없습니다. 공원 앞에서는 걸쭉한 어르신들의 노랫자락. 화려한 반짝이 양복을 입은 어르신이 춤을 추고. 두꺼운 옷차림의 어르신들이 잠자코 그 공연을 지켜봅니다. 보통 이런 모습에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쳐간 곳이 탑골공원이 아니었을지..


그런데. '탑골'이 왜 탑골이겠어요. 탑이 있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국보 2호 원각사지십층석탑. 그리고 이게 바로 탁환쌤의 '백탑파'가 활약한 무대가 되는 백탑입니다. 실학자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 어귀의 탑. 박제가 선생의 기록에 따르면 한 번 모이면 보름씩 실컷 놀고, 다 함께 예를 갖춰 박지원 선생의 집으로 찾아갔다고요. 저 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 하얗게 빛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탑! 세상에.. '백탑파'의 백탑을 이렇게 눈으로 보다니.


기단이 삼 층. 그리고 위에 십 층. 기단에 묘사된 그림은 삼장법사 얘기라고요. 우리 석탑은 일반적으로 화강함인데 이 탑은 대리석. 원각사는 조선 세조 11년(1465년)에 세워진 뒤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보호되던 시절, 세조 13년에 세워진 탑이라고 합니다. 원각사는 이후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이라는 기생집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위키에 나옵니다... 하여간에 그림은 정교하고, 탑도 참 아름답습니다. 저 <열하광인> 이후 백탑파 팬이라니까요...



탑골공원에서 나와 다시 청계천으로 걷다보면 전태일 기념관이 나옵니다. 사실 이런 건물인지, 역시 낯선 발견. (저는 다녀보면 뭘 아는게 없는 사람입니다.. 혹은 기억을 못하거나..)


전태일 기념관 지나면 바로 수표교가 나옵니다. 광대이자 거지였던 달문의 본거지가 수표교. 모독이 처음 달문을 만나는 곳.


이 자리에서는 웹판소리 에피소드 두 개를 연달아 봐줘야 합니다. 달문과 모독 만나는 그 얘기.



갑작스러운 비에 모독과 달문은 수표교 아래로 내려갑니다. 우리도 내려가봅니다.


조금 걷다가 전태일 동상도 보고 갑니다. 달문이 조선시대의 한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전태일 열사도 그 시대 한 없이 좋은 사람..  바닥에 이렇게 이름과 글이 새겨져 있는지, 역시 직접 걸어봐야 압니다.



오늘의 인증샷. 탁환쌤 페북에서 퍼왔습니다.  


전태일 동상 옆은 동대문 평화시장입니다. 바로 동대문이죠. 동대문 성벽 너머 바깥의 거지들을 챙긴 달문의 이야기도 참 아름답고 슬프죠.


동대문에서 1호선을 타고 종각역으로. SC제일은행 본점. 이 자리가 바로 조선의 의금부 자리입니다. 달문과 모독도 여기 끌려와서 문초를 당하죠.. 당시 천주교인들도 다 끌려와서..


의금부에서 정말 날라가는 걸음의 탁환쌤을 따라 다시 서울도서관으로... 돌아가기 직전, 서울시청 지하의 군기시 터를 봅니다. 시청 지하의 유적들. 이렇게 보존을 해뒀군요. 뭘 알아야 보인다고. 조선의 방위사업청 군기시를 알고 보니, 화살촉 더미 같은게 눈에 들어옵니다.  


토요일, 모처럼 시내에 나가서 18세기의 길만 걸은 건 아닙니다. 21세기의 풍경도 잘 봤습니다. 공수처의 기원이 독일 나치이고 '모탯동'이고 김일성인지 저는 잘 몰라서.. 

친일의 후손으로 따지면.. 굳이 왜 그걸 다투는지 잘 모르겠지만... 무튼, 이것도 신기하게 봤습니다... 


이건 들고 있는 손팻말 구호가 신기해서... 찍고 싶었으나 초상권 문제도 있고 하여.. 큰 무대 배경으로 보이는 걸로 찍어봤습니다. '탄핵무효, 사탄파 척결' 이라는 구호인데요. '사탄파'라는 단어가 낯설기는 하더군요. 무튼 #달문의길 걸으러 갔다가 만난 뽀너스 같은 깨달음? 

매거진의 이전글 <다낭 3박5일> 어쩌다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