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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20. 2020

<안녕, 나의 순정> 그 시절 설레임을 소환하다니


믿고 보는 영희씨가 또 책을 냈다고 했어요. 2015년 그의 책 <어쩌다 어른>에 대해서는 간만 출근길 도어투도어 워킹독서라며 독보적 덕후 글쟁이 기자 답다. "웃겨 죽는줄"까진 아니고 계속 큭큭낄낄ㅎ 

이라며 <어쩌다 어른> 어쩌다 이렇게 사랑스러워진게냐  며 20분만에 휘리릭 메모를 남겼죠. 
근데, 이번엔 책 제목이 '안녕, 나의 순정'??? 아니 불러낼 순정이 뭐가 있다고... 연분홍색 책 표지를 슬쩍 보고, 며칠 묵혀뒀지 뭡니까. 그러다가.. 펼치고서는.... 이번에도 단숨에 다 읽었어요ㅠㅠ 이런 책을 내다니. 역시 영희씨. 그리고 이건 정말 독보적으로 사랑스러운 회고록입니다. 저의 소녀시대까지 소환됐어요..  재빨리 심쿵 하는 몇 장면 사진 찍어서 저장만 해두고.. 역시 바빠서 리뷰를 못하다가, 이제 정신차리고 다시 추억 속으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 대한민국 순정만화 전성기를 한 권으로 추억할 수 있는 <안녕, 나의 순정>이 출간되었다. 신일숙, 황미나, 김혜린, 이빈, 한승원, 이은혜, 한혜연, 박희정, 강경옥, 유시진, 문흥미, 이미라, 나예리, 천계영, 박은아까지. 이름만 들어도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대표 작가 15인의 만화에 담긴 이영희 작가의 추억을 함께 따라가 보자.

책 소개 그대로입니다. 목차 좀 봐요.... 흑흑. 감동이어요.. 

1부 어른이 된 것 같았던 나의 소녀시대
짧은 머리는 보고 싶지 않았다오 (황미나 『굿바이 미스터 블랙』) • 12
삶은 정말 예측불허였다네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 • 25
인생의 고단함을 엿보고야 말았네 (김혜린 『불의 검』) • 43


황미나 작가님... '우리는 길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아, 이 작품 진짜 대단했습니다. 내용 기억 안나요. 근데 대단했다는 것만 기억나요ㅠㅠ 


그리고 레 샤르휘나. 이 이름을 이제야 다시 기억하다니. 신일숙 작가님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보지 않은 당대의 소녀가 있을까요. 정말 주체적 삶을 위해 온갖 사연을 다 겪던 네 딸들. 그리고 그 이전 황미나, 김혜린 작가님에겐 미안하지만, 신일숙 작가님의 그림은 혁명적이었요. 몹시 아름다웠죠... 


아이고. 한 때 제가 푹 빠졌던 검은 머리 에일레스. 이름도 잊었다는걸 이제야ㅠㅠ 제 중고생 시절, 대학생 시절까지.. 전 장녀 마누아도 무척 좋아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세상에.. 김혜린 작가님 '불의 검'. 주인공 아사, 아라의 가혹한 사연마다 어찌할바 모르고 빠져들었던 작품. 소서노를 비롯해 여성 캐릭터들 완전... 저 대사들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다 잊고 있었죠..대체 영희씨는 어찌 이걸 다 기억하는지. (그게 이런 대단한 정리를 할 수 있는 비결.. 아, 이 비루한 기억력 같으니라고..) 


한승원 작가님도 있었어요.. 와아... 진짜 그림체가 예뻤던 분. 다 똑같이 생겼지만, 그래도 늘 빠져들었던 그 분 작품. 


그리고.. 강경옥 작가님의 '별빛속에'..... 아. 사실 제 원픽을 꼽으라면, 시이라젠느... 정말 제가 몹시 사랑했던 작품입니다. 그림체와 캐릭터와 복잡한 그 스토리까지. 대체 흑발 주인공만 잘나가는 비결은 모르겠으나. 흑발에 대한 차별까지.. 하여간에 제가 한때 SF 팬 아닙니까.. 이 작품은 그 원조 쯤 되요. 정통 SF가 아니면 어때요. 별빛 속에 푹 빠졌는데요.. 결말이 몹시 아쉽고 슬펐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지금 위키를 보니까, 이거 다시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영희씨의 기막힌 복원 덕분에 제 추억이 하나하나 다 살아납니다. 제가 좋아하던 그림체의 만화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한 오뚜기 같은 주인공들. 

 

아.. 호텔 아프리카.. 박희정 작가님은 어찌 그 시절 미혼모에 흑인 혼혈 주인공에.. 그리 따뜻한 스토리를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요. 게다가 이 무렵 쯤엔 정말 그림이 넘나 멋져요.... 


그리고.. 드디어 천계영 작가님의 전성시대.. '오디션'은 충격 그 자체였죠. 설정 자체가 만화적인데, 황보래용, 장달봉, 류미끼, 국철.. 얘들 이름 왜 이런겁니까.. 근데 겁나 멋있어요.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않은 천재들.. 천계영 작가님. 저 '좋아하면 울리는' 계속 잘 보고 있어요. 결제 꼬박꼬박하고 있어요. 부디 건강하시길. 한 시절 제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주셨는데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드리고.. 아프지 마세요. 


이빈, 이은혜, 유시진, 문흥미, 이미라 작가님... 제가 정말 좋아했어요. 그 시절엔 매달 만화잡지 보는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저 20대 직장인 시절엔..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면 만화방으로 달려갔어요. 아무 생각 없이 만화속세상에 푹 빠져서 몇 시간 보내고 나면.. 그때까지 저를 짓누르던 고민들이 흐릿해지곤 했죠.. 그렇게 리셋하고 다시 달렸던거 같아요. 이후 일본 만화도 많이 봤고, 무협지나 다른 장르까지 탐닉하곤 했지만... 제 소녀시대를 사로잡았던 선생님들, 제가 잊고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신간이 나올 때 마다 온동네 친구들이 난리였는데 말입니다...  

이영희 작가님. 그 추억을 소환해줘서 고마워요. 그 시절 작가님들의 '대사'는 어찌 이렇게 간결한데 모든 걸 다 담은걸까요. 맘 같아선 몽땅 다시 정주행하고 싶지만ㅠㅠ 아.. 언젠가 그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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