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Nov 22. 2020

<정신과 의사의 서재> 책 읽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노는 물이 안 좋아요. 원섭님 덕에 먹방 아는 척도 못하고. 넘사벽 하지현님 덕분에 어디 가서 책 쫌 본다고도 못하고ㅋㅋ"

"제가 이는 사람  '최고의 다독가이자  리뷰어' 부문에서 유일하게 하지현 선생과 어깨를 나란히   있는 마냐"라는 송원섭님 페북글, 나의 댓글입니다.  

솔직히, 비교 불가. 넘사벽 하선생님이 어느 정도인가 하니...  2019년에 읽은  정리 는 "2019년에  165 정도의 책을 읽었다"고 정리를 시작합니다. 제가 사실 2013년부터 하쌤 따라서 연 결산을 하는데  <2019>남은건  밖에 없다, 46권이었거든요.. 권수로 따지는 건 좀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 정도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작년에 유독 적게 본 거다, 나 나름 바빴다는 말도 안 통하게시리.. 하쌤도 전문의 교수님 본업에 작가, 칼럼니스트, 강연가로 바쁠 뿐만 아니라 <예능력> 작가님 답게 TV 예능프로그램도 챙겨보시고, 맛집을 섭렵하는 술꾼이신데 말입니다.
서로 바쁘다보니 뜸해졌지만 한 때 술친구, 책친구(라고 저는 생각하는ㅎ) 하쌤 책 이야기는 기다려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이 분이 아니면 누가 쓰겠나 싶은 그런 책이고, 이 분은 마땅히 꼭 쓰셔야 한다, 그리고 저는 내심 컨닝할게 있는 책이라 기다려왔습니다. 사실 대체 언제 책 읽고, 언제 책 쓰냐.. 이것부터 미스테리인 분.. 저도 가끔 이런 소리 듣지만ㅎ 하쌤은 저자로서 리뷰어로서 독보적 넘사벽. 책을 통해 본인 내공을 수련한 과정까지 담아 무협 비급 같네요 .

 책을 읽느냐고... "마음의 코어를 단단히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정신과 의사 답게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얘기를 오래 해오셨고, '마음의 코어' 초전문가. 울트라 다독가 하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책을 통해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과정. 지식을 통해 이치를 깨달으면서 세상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다. 타인의 관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내 관점의 편협함이 깨진다. (10쪽)
저는 '남은건 책밖에 없다'고 해왔는데, 엄마가 된 뒤 화려한 나이트라이프도 포기하고, 야심도 줄이고, 칼퇴해서 아이 재우고 난 뒤 남은게 진짜 책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넷플릭스도 없었고요. 그런데 읽고 정리하다보니, 재미와 더불어 제가 단단해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책 읽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다르게 진화하는가... 제 관심사 맞습니다. 다만 제가 책으로 성장했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사실 근거가 없어 보였는데, 전문의께서 '마음의 코어를 단단히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해주시니, 오호라.

마음의 코어를 챙기는데 뭔가 성장만 챙길 일은 아니죠. 단순 쾌락용 독서를 따로 챙기시네요.
만화방은 내게 마음의 휴식을 주고, 만화책은 뇌에 휴식을 준다. 스트레스가 심해지거나, 지쳤다고 느낄 때, 머리를 식혀야 할 때에는 본능적으로 만화방 구석 자리를 찾는다. 일종의 리추얼이다. (42쪽)
20대와 30대까진 저도 만화방을 가끔 혼자 찾았습니다.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을 때 갔어요. 2시간 정도 만화에 빠져들었다가 나오면, 직전까지 엄청 심각했던 일들이 흐릿해지는 효과가 있었거든요. 이런게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뇌에 휴식을 주는 거군요. 힘들때 만화방 찾은 제 본능도 칭찬해! (요즘은 만화방 대신 웹툰ㅎㅎ)


책을 읽으면... '독서의 희열'

(솔직히 이 분 이랬구나 싶게ㅋㅋ) 유치한 지식배틀 흑역사를 고백하면서, "나도 왜 아는지 모르는 이상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결국 내 책 읽기의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30쪽)... 저도 아는 척 좋아하는 인간이라 그랬다는 걸 확인합니다.
그냥 읽는게 아니라, 내 안에 담겨 있는 경험, 지식, 감정과 만나서 화학작용을 일으킨 다음에야 그 내용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독서의 희열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85쪽) 사실 책 한 권 읽으면 지식과 정보를 들이키는 재미가 있지만 저는 그 때 뿐입니다. 금방 까먹어요. 그래서 리뷰를 시작했고, 저는 많이 떠드는 편입니다. 책 얘기를 저의 언어로 바꿔서 좔좔 풀어내야 그 책이 제 것으로 소화됩니다. 저는 그래서 독서클럽 트레바리를 좋아합니다. 다른 관점도 들어보고, 함께 떠들면서 정리하면 '독서의 희열'이 커지거든요.


그런데 하쌤과 저는 완전히 다른 인간ㅎㅎ 하쌤은 "어떤 독서가인지 글 쓰면서 알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하시면서 "혼자 읽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라 독서를 좋아하고".. 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분에게 제가 독서클럽 클럽장 하시라고 했네요. 이 책 의외의 곳에 등장한 저ㅎㅎ  


컨닝하고픈 독서의 요령 ...그러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저는 책 내용 중 중요한걸 나중에 끄집어내어 보기 위해 리뷰를 이용하는데, 하쌤은 리뷰 뿐 아니라 에버노트에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계셨군요. 단순히 어떤 대목을 기록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경우, 본문을 사진찍어 저장하고, 소개된 연구나 실험을 원문 찾아 태그로 붙여놓고, 책 정보는.. 태그에 따라, 카테고리에 따라 쉽게 검색하고 핵심만 뽑아낼 수 있는.. 개인화된 구글....통계 수치, 역사, 어원 등은 표로 만들고. 인용구는 원문 찾아 확인하고 정리..  전공 분야 독서가 깊고 넓은 것을 업무로 그대로 확장시켜, 모든걸 기록하고 정리하고, 원전과 논문 다 찾아서 넣어놓고, 필요할 때 뽑아쓰는.. 에버노트에 1만1천개 자료를 축적하셨다니... 이러니, 책을 후딱 후딱 쓰시죠... 논문도 그렇고.....  저도 예전 리뷰를 꺼내쓰는 일이 종종 있지만, 알라딘 서재, 티스토리 블로그, 브런치까지 시기별 독후감이 따로 있는데다 들어가서 미친듯이 검색해야 하고, 하여간에 체계적이지 않아요. 이게 이과생과 문과생 차이일까요. 그런데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라... 음.

사실 엄두가 나지 않던 연 결산도 따라쟁이로 습득하긴 했습니다만 역시 질이 달랐네요.
"독서연결산. 1년치를 모아서 단상을 쓰면 책의 핵심 주제가 정리되고, 1년 독서의 전반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비로소 올 한 해 내 머릿속에 뭐가 들어왔는지, 어떤 영역의 책을 주로 읽었는지 일종의 사유의 지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98쪽)
저는 사유의 지도를 완성해본 일이 없군요... 2013년부터 연 결산을 따라했는데... 그냥, 한 해 독서를 돌아보는 정도만으로 좋았고, 이미 까먹은 책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도 괜찮았어요.. 흠흠. 어떤 영역의 책을 주로 읽었는지 정리하고 분석하다니... 오래된 제 습관 중 하나는 픽션과 논픽션을 번갈아 읽는 거였는데, 이것도 많이 읽을 때나 가능한 일. 최근 몇 년에는 독서클럽 책들을 우선하다보니, 제가 사적으로 읽는 책의 비중이 줄었어요. 하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소설을 덜 본다고 하시는데, 이건 안타까운 직업병. 저는 소설도 무척 좋아하긴 하는데 말입니다... 나이들수록 바쁘다 바쁘다, 충분히 못 봐서 아쉬울 뿐.


스스로 "문학보다는 인문서를 선호하고, 감정적 울림보다 지적 성찰과 깨달음에 동기 부여가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정리하시는데, 이 책도 말랑말랑한 에세이를 지향한 흔적은 있으나 본질은 성찰입니다. 그리고 지적이어요. 책 읽기의 힘을 이야기하고,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으면 괜찮을지 예시를 제시하고,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가이드를 알려줍니다. 그것이 재미이든 지적 유희이든 업무이든 어떻게 가능한지 담담하게, 꽤 친절하게 정리해줍니다. 엄청난 다독가이자, 실제로 책에서 얻는게 많은 이들이 할 수 있는, 해줘야 하는 이야기죠.

역시 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노화에 맞서 싸우면서 몸에 좋다는 걸 먹는 것, 머리카락을 심는 것, 피부과 시술을 받는 것은 부질없는 투쟁이다. 이제는 더 깊고, 두텁고, 유연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반응할 줄 아는 성숙함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224쪽)

책에서 답을 찾으라고,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군요. 하쌤의 오랜 독자로서 함께 나이를 먹는 이들을 위한 절절한 조언으로 다가오네요.
 

"2011년 당신의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사는 거라고 일갈하는 <심야치유식당>에 홀라당 빠진 뒤 2012년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2013년 <예능력> 마음의 근육을 키워볼까  부터는 리뷰 혹은 트윗 메모도 꼬박꼬박 했다. 2014년에 나온 직딩맘 필독서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 2015년  <공부중독> 왜곡된 공부로 망가지는 부모와 아이 ,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다정한 위로. 2016년 <정신의학의 탄생>은 리뷰까진 못했지만 연재될 때 다 챙겨봤다. 재미있어서! "라고.... 2017년  <대한민국 마음보고서> 더 넓게 공동체의 마음을 살피며 리뷰에 언급한 적 있습니다. 네네. 저도 기록하는 인간이라 이런게 남아있습니다. 햇수로 10년 째 하쌤의 책을 읽어와서, 어딘지 차분하게 돌아보는 이 책이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여러모로 이번 책도 반가웠어요.

P.S> 개인적으로 맘에 다가온 에피소드...


미켈란젤로는 남긴 작품 3/5이 미완성. 하나를 진드근하니 마무리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그만두고 다른 걸 시작하기 일쑤였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완성한 작품이 20점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

모든 일에는 완성이란 없으며 어쩔 수 없는 마감이 있을 뿐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20쪽)

쌤이 끊임 없이 새롭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책을 시도하듯이... 나이가 들수록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은 어릴 적과 또 다릅니다. 이제는 슬슬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시절 같은데도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이런데 꽂히는 종류의 인간들일까요? 계속 보죠.

P.S..2>  하쌤이 지난 10여년 별 다섯 준 책들 리스트가 뒤에 나와요.... 흑흑. 책을 낸 작가로서 여기 들지 못한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언젠가 별 다섯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음. 저도 하쌤에게 별 다섯을 드렸던가... 음...)

매거진의 이전글 <노터리어스 RBG> 팬심 리뷰인데, 아쉽기만 하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