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배민, 카카오, 플랫폼노동 200일의 기록
저 부제보다 더 정확한 책 설명은 없습니다. <프레시안> 기자, <피렌체의 식탁> 편집장으로 18년간 기자였던 그는 궁금해서, 답답해서 뛰어들었습니다. 2020년 1월이라니, 팬데믹이 막 시작하던 무렵에 'Gig Job'으로 업을 바꿨습니다. 팬데믹으로 마침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실제로 '쿠션'이 되어주고,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오게 만든다는 그런 쿠팡 물류센터의 일, 배민 커넥터의 일, 카카오 대리기사의 일.. 노동은 실제로 버거운데, 노동의 가치는 납작하게 주저앉은 시대, 그의 체험은 무척 귀한 기록입니다. 편의점 사장님들은 모여서 최저임금 인상에 항의 시위라도 하지만 최저임금 8,590원 받는 (408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는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지키라는 시위도 하지 않는 그런 사회에서 그의 글은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투명인간들을 옆자리로 불러옵니다. #트레바리 #디지털시대읽기 2021년 3월 책. 술술 읽히는데 묵직한 이 책, 토론도 재미있었는데 생각은 복잡합니다.
새삼스럽지만, 최저임금 노동이 '남 일'이 아니라 '내 일'로 기록한 그를 따라가니, 뭔가 울컥합니다. 1988년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제도가 시작된 이후 노태우 정부 때는 매년 10% 이상 인상됐고. 1989년에는 무려 20%대 인상을 기록했다고요. 그 시절엔 고도성장기라 그럴 수 있다 쳐도, 1991년에도 18.8%. 김영삼 정부 6~9.8%를 거쳐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5번이나 두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답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2%대 기록했던 것은 IMF 때인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두번 뿐. 따라서 19년 2.9%는 두번의 국가위기와 맞먹는 수준이었고, 2020년엔 1.5% 였습니다. 문재인정부 초기에 너무 급격히 올렸다고 난리였지만, 사실 모든 대선 후보가 1만원대 공약을 내놓았던 만큼 선택의 여지는 적었고..초기 저항에 덴 탓인지 결국 1만원은 어렵게 됐습니다. 1989년 시급 600원이던 최저임금은 2020년 8,590원까지 14배 올랐고, 그 사이 삼성전자 주가는 160배 올랐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필수노동(이라 부르지만)
시급 15달러의 미국 아마존 물류센터 일용직은 1년 3.6만 달러(4320만원)를 법니다. 그러나 아마존 본사의 신입 개발자는 기본 연봉 10.9만 달러(약 1억2700만원)에 보너스까지 연 1.5억원을 법니다.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은 시급 8,590원. 계약직 취업 경우 연 2,280만원을 벌지만 쿠팡 본사 개발자 연봉은 9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2020년 개발자 공채에 입사 축하금 5000만원 내걸기도 했죠. 팬데믹 이후 아마존 주가 폭등 덕에 순자산이 2000억 달러(약 221조 원)를 넘긴 베조스는 1초에 4000 달러를 벌고 있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이용자들의 편익을 늘린 베조스의 공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총 100조의 신화를 쓴 쿠팡도 훌륭하죠. 끊임 없이 공부하고 애쓰는 개발자들이 제대로 보상받는거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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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노동자는 보호받고 있는가? 아무리봐도 너무 많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주식을 나눠준다고 하지만, 일단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부터 문제여요. 그런데 이 문제는 쉽게 지워집니다. 온통 쿠팡 상장 소식 밖에 안 보여요. 유사하게도,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진짜였다 같은 기사는..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의 다음타자는 마켓컬리라는 기대감에 묻힙니다.
미국이 아닌, 해외 진출도 없이, 한국에서만 사업하는 커머스 기업이 시총 886억5000만달러(약 100조4000억원)의 초대박 상장을 하게될지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역대급 IPO로 예상은 됐으나 알리바바 이후 최대, 2021년 최대 규모 상장이 될 줄이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고, BTS의 활약에 부심 돋던 우리는 쿠팡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합니다. 손재권님의 글에 구구절절 동감해요. 다만 그만큼 쿠팡의 노동자에게도 관심을 더 가졌으면 합니다. 플랫폼 노동의 현실에 둔해지지 않있으면 해요.
교통사고 사망자는 줄어드는데(16년 4292명, 19년 3349명)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는 늘고 있어요. 20년 1~4월 123명으로 전년 동기대비 15% 증가했죠.
그런데 산재사고 자료 보면, 지난 5년간 배달 사고로 사망한 라이더는 30명이라고요. 맥도널드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라이더는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집계도 안되요. 배달하다 죽는 사람이 몇 명인지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그동안 알아볼 생각도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2019년 3월 6349억이던 배달 주문은 2020년 3월 1조1858억원에 달합니다. 2020년 6월 기준 10만여명이 배달 일을 해요. 2만명은 전업, 8만명은 투잡..
1) 플랫폼노동 전망
- 좀 더 친절할 준비가 되셨나요? 생생 체험에 대한 소회는?
-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대한 고민과 플랫폼 노동의 고민은 닮았나요? 다른가요?
- 당신이 N잡러가 될 가능성이 있나요?
- 노동은 더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2) 불평등 문제 등의 해법은?
- 정부가 회사 공동체 시대의 역할을 넘겨받게 될까요?
- 과연 타다 사태는 2020년의 러다이트 운동이었을까요?
- 직업에 대한 존중, 보상이 혹시 달라질 것 같아요?
-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보다 커지는 시대의 문제는?
이런 발제문으로 토론을 나눴어요. 그러다 K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실제로 책 읽다보면, 수고한다는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워낙 생생해서, 좀 더 친절해질 것만 같았는데.. 개인이 더 친절한 태도를 갖는게 해법은 아니라는 거죠. 구조적 문제에 집중해야죠. (사실 두번째 주제가 그거긴 해요)
회사 중심의 복지 체제는 IMF 이후, 금융위기 거쳐 무너졌어요. 그런데 국가는 여전히 더뎌요. 고용보험조차 여전히 회사 중심이라, 예컨대 실업급여는 회사에 일정기간 다닌 뒤 '해고'된 사람만 받을 수 있어서.. 고용보험 내고도 실업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전체의 75%에 달한답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도 회사에 고용돼 있어야 가능한거고..택배기사 1만8792명 중 산재보험 가입은 7444명. 대리기사는 가입자가 달랑 3명 뿐...
블라인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37%가 부업 겸하는 N잡러라는데.. 불과 몇 년 전, Gig 경제는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했어요. 맥킨지 보고서는 이런 긍정적 측면을 분석했고, 2016년 힐러리 후보는 긱잡이 실업을 줄일거라 했죠.
긱 경제는 그리 훌륭하지 않았고, 긱 노동자는 양극화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죠. 회사가 보상을 더 하고, 더 존중하도록 하려면, 요즘 유행하는 ESG에서 S(Social)의 가치가 실제 기업 가치에 더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런건 연기금이 잘해야 하는 걸까요? 기업 주가에 영향 주는게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거버넌스와 사회적 책임이 되도록?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데, 그런 공간을 어떻게 넓혀가야 할지 과제.
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 관계를 흔든건 '김박사넷'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상황이 보다 투명해지는건 언제든 도움이 되는 걸까요? 유럽에서는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노동조건 지침'이 있다는 화학산업 전문가 K님 말씀.. No data No market..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면 시장 진입 말라는 논리인데요... 몇 시간 일할거고, 얼마 받을 거고, 표준문서가 등장하면 플랫폼종사자보호법 같은게 진화할까요. 하지만 기업 비밀이라 어떤 물질 쓰는지 알려줄 수 없다고, 노동자 건강을 위협하는 산업 현장의 문제는 여전히 투명성이 확보안된 처지라..이건 결국 규제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체적 문제를 인식된 문제로 바꿔주면 해결책이 나온다"는 말씀도 인상적이었어요. 문제 정의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건데, 예컨대 영화계에 표준계약서가 도입된 과정도 그런 단계를 거쳤다고요.
정부 개입보다는 역시 정규 교육부터 노동 존중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 인문학적 고찰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 네네. 젠더교육 생태교육 민주주의교육.. 더 강화해야 마땅하다고 떠뜬지 이제 꽤 됐네요..
노동을 보호하는 사회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에 대한 보상, 보호에 좀 더 책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어요. 저소득층의 교육의료주거 등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의 분배도 필요하죠. 결국 사회안전망 문제이고, 언젠가는 기본소득.
기본소득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프리라이더 논란. 어느 정책이든 완벽할 수도 100%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1보 전진을 위해서는 반 보 후퇴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항상 1%의 프리라이더, 블랙컨슈머, 좀도둑이 생기는 꼴을 못 봐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99%를 포기한다. 그래도 그 1%가 걱정되면.. 보완책은 얼마든지. 기본소득 외에 추가 소득 얻는 직업 없는 이들은 의무적으로 하루 4시간 교육을 받게 하는 것.. 교양교육이든 기술교육이든.
저자의 문제 의식에 공감합니다. 동시에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을 떠올립니다.
"자동화와 세계화 문제로 인해, 19세기 초와 대공황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합의를 다시 검토해야 할 것"... "앞으로 10년, 또는 20년에 걸쳐 아무 조건 없는 공돈에 대해 논쟁하게 될 것" .. 16년 6월과 10월 백악관 AI 보고서가 나올 때의 말입니다. 저는 기본소득에 대해 앞으로 10년, 20년 논의하듯이..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정치사회경제의 보호 역시 오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미 시작됐고, 이런 기록과 독서, 토론은 그걸 나눠가는 길 어딘가에 있다고 봐요. 책,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