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2017년, 클럽장으로 활동하던 트레바리부터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반년 쯤 지나자 금단 현상이 생기더군요. 당시 일에 치여 살면서 인풋 없이 아웃풋만 뽑아낸다는 불안도 생겼고요. 그래서 그냥 보통 시민으로서, 업무와 가장 관계가 없어보이는 클럽에 슬쩍 등록했습니다. 건축가 황두진쌤의 '그래, 도시'라는 쿨럽. 당시 엉터리 멤버였지만 가끔 숨 쉴 기회로 삼았는데요. 책들은 다 좋았죠. <도시의 승리>도 참 좋다 말았어요. 다 못 봤거든요. 얼렁뚱땅 독후감 숙제는 했죠.
그리고 4년 만에 트레바리 얼룩소 클럽의 책 고르면서 그냥 책꽂이에 있길래 후보로 슬쩍 넣었는데 투표 끝에 <도시의 승리>가 낙점됐습니다. tmi.. 투표에서 밀린 책은 시사인 전혜원 기자의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마사 누스바움의 <지혜롭게 나이든다는 것>.
다시 읽으니 달라보이는 것들? 일단 팬데믹이 우리의 미래를 확 앞당겼고, 오프라인에서 서로 부딪치며 연결과 경쟁을 통해 도시의 가치가 커진다고 믿는 저자의 전제가 낡아버렸습니다. 일단 클럽장으로서 제 발제입니다.
1. 도시의 승리
도시에 인류문명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저자의 대전제에 동의하시나요?
(도시) 보존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합니다. 마천루와 아파트가 서울에 더 필요할까요?
도시가 농촌보다 친환경적인가요? 전기차 시대에도 그럴까요?
국가 정책은 기업들에게 비생산적 지역으로 이동하라고 권한다는데 균형발전을 어떻게 보세요?
가난한 이들을 돕는 공공 정책이 가난의 대규모 집중화 현상을 가져온다는데 어떤 방향이 최선일까요?
교육과 일자리가 결국 핵심. 부자들의 울타리 교육 대신 공교육에 더 투자한다면요?
지방소멸 해법도 도시화에서 찾아야 할까요?
2. 조금 바뀐 시대에
밀집 근무 환경의 가치는 우연한 만남과 주변 이들의 임의적 행동 관찰에서 나오고, 이게 도시의 힘. 비대면 시대는요?
전염병 시대에도 도시가 더 안전할까요?
중국은 탄소배출 규제에 부정적입니다. 전세계가 미국 도시화 한다면요?
인재 중심 경쟁과 연결이라는 도시의 미덕은 계속 유지될까요?
저 첫번째 발제는 4년전 클럽장이셨던 황두진쌤의 질문을 그대로 가져온겁니다. 참고로 황쌤의 발제.
1. 도시에 인류문명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대전제에 동의하시나요.
2. 31쪽의 제인제이콥스에 대한 비판에 대한 의견을 구합니다. (특히 보존에 대한 생각)
3. 도시가 농촌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구합니다.
4. 저자는 랜드마크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줍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구합니다.
5. '탄소배출권'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6.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을 통해 도시에 대한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 딱 경제적으로 봅니다. 도시 빈민이 농촌 빈민보다는 훨씬 행복하다고 단언하고, 교외에서 출퇴근하며 탄소배출하는 것보다 도시에 마천루를 올려 사는게 친환경. 파리처럼 도시를 보존하면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오르고 시민들은 불편하다고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책의 핵심은 도시가 플랫폼이란 주장입니다.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아이디어가 커지고, 변화를 만들고 가치가 커지죠. 그런데 이게 비대면 시대에도? 제가 일했던 alookso의 주요 리더는 제주와 양양, 니가타에서 근무합니다. 굳이 서울 성수동이라는 도시에 모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 봅니다. 직접 접촉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봤던 글레이저 교수의 전제 하나가 10년 만에 무너진거죠. 새삼 사회, 경제적으로 미래를 앞당겨버린 팬데믹의 위력을 확인하네요.
책 리뷰를 두번 씩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자본주의의 미래> 이후 두번째네요. 굳이 남기게 된 건, 트레바리 토론에서 나온 의견과 질문들이 좋았습니다.
어느 도시나 비슷한 형태로 개발되다보니 다양성이 사라진다. 천편일률적 도시화가 정답일까?
디스토피아는 이미 현재. SF에 흔히 나오듯 지위에 따라 공간이 분리됐다. 약자는 자기 공간에 결정권이 없다. (성석제님의 '투명인간'이란 책 제목은 통찰력 넘쳐요.. 약자는 보이지 않아요)
글레이저가 틀렸다는 반증 사례가 서울 아닐까? 혼잡통행료를 내도 최악의 교통환경, 마천루와 아파트 즐비한데 저자 말대로 행복한가? 환경도 좋지 않고 도시 양극화는 극심하다. => 그렇다면 괜찮은 도시의 인구밀집에도 임계점이 있는걸까? 서울은 너무 과한가?
“자족적 초대형 공장들은 경쟁과 연결이라는 도시의 미덕에 적대적”이라고. 근데 일자리 측면에서
디트로이트 쇠락을 그 도시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 애틀랜타 인구가 늘어난건 그 인근 앨러배마에 공장들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제조업 문제는 다른 차원. 네이버는 5000명을 고용하지만 현대차는 16만이다. 도시를 유지하는 일자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월스트리트 종사자 전체가 십수만. 포드차는 20만이다.
메가시티는 결국 일자리+로컬 기반 교육을 통한 인재 공급인데.. 수도권 외 동남권 구상 어찌 될까?
가난한 이들을 돕는 공공 정책이 가난의 대규모 집중화 현상을 가져온다? 지원의 방식 문제?
그래서 냉방 에너지 소모 심한 휴스턴 대신 캘리포니아에 마천루를 올려? 비어가는 로컬은 어떻게 하지?
지방 소멸 해결, 균형발전은 우리가 논하기 쉽지 않다. 다만 주요 대학 이전은 유효할 것. (설혹 비대면 교육이 확산되더라도) 양육 지원이 충분하다면 지방 이전 기대 요소.
우리는 모두 오피스 사람들. 실제 도시에서 소외된 이들의 입장을 잘 모른다.
메타모빌리티, 자기 방에서 달도 가고 대구도 가고.. 기술이 도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까?
민주주의가 도시 개선을 위한 강력한 행동을 방해한다?(180쪽) 도시 재건을 원한다면 독재자의 지원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279쪽) 유명 학자가 이렇게 무책임해도 될까? (경제학자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