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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29. 2022

<춘천&뮤지엄산 나들이> 전지적 마냐 시점 여행?

좋은 사람과 시간, 경험..뭘 더


나를 좋아하는 이들의 사랑은 일상적이라 사소하고, 나와 삐걱대는 이들의 반응은 과하게 힘들고. 멍청하게도 무엇이 귀한지 잊고 아둥바둥 삽니다. 그걸 가끔 확인할 기회가 오는게 인생이죠.


"우리 춘천 놀러가요."

여행은 B의 한마디로 시작됐습니다. 온전히 저를 위해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친구가 있다니, 여행 제목이 '전지적 마냐 시점 2022년 1월 춘천여행'. 제 사진까지 넣은 여행가이드. 미쳤죠!


1박2일 느긋하게 부어라마셔라 세상사 잊는 컨셉의 여행 일정표. 단 하나 이틀째 마지막 일정만 구체적이었어요. 17:30~18:30 제임스 터렐 '컬러풀 나이트'를 위해 목도리, 핫팻, 패딩, 장갑을 준비하라는 친절한 안내. 천장이 뻥 뚫린 곳에서 구경하니 '겁나 추움' 경고.


이 경험이 얼마나 아찔하게 각인될지는 경고하지 않았네요. 제임스 터렐이 빛과 공간으로 장난치는 순간마다 경이롭다는 말 밖에 못하겠어요. 판테온 마냥 타원형에 갇힌 하늘은 주변 조명에 따라 빛이 변했어요. 엷은 분홍 안에서 청록 초록에 가까워졌다가, 보라색 팥죽색이 됐다가 어느새 올리브그린. 변화무쌍한 쪽빛의 그라데이션을 보이다가 해가 지며 온통 까망인데 어느새 다시 투명한 파랑. 하늘은 변할리 없는데 제 눈은 계속 착시에 흔들립니다.


터렐의 Ganzfeld, 완전한 영역. 거대한 스크린 혹은 빔프로젝터가 투사된 걸로 보이는 벽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잊지 못할듯요. 벽이 아니라 빛이 만들어낸 환각. 시각은 나를 구하지 못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보는 것 만으로 세상을 알지 못해요. 보는대로 믿는건 위험합니다. 끝없이 질문하고 확인하는 것 외에 부족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제임스 터렐을 비롯해 뮤지엄 산 관람은 B의 선물. 제임스 터렐은 사진촬영 불가라 뮤지엄 산 야경만 남깁니다. 링크에서 구경은 가능한데 이건 경험해야 하는 종류입니다.  

중요한 건 사람. 그리고 함께 한 기억. 우리가 채운 시간들. 2022년 1월에 좋은 조각들이 이렇게 남습니다.


미술관은 3월까지 'Spielraum X Phytology_식물의 방' 전시. 재미난 경험 중 압권은 김제민님의 '잡초비전 초식 42'. 신검합일, 결초보복, 등평도수 등 이건 봐야합니다. 사진으로 보일랑가요.

허윤희님의 '나뭇잎 일기'도 겸허해집니다. 산책하고 그날의 빛깔을 담은 나뭇잎을 가져와 그림그리고 글을 습니다. 사계절 나뭇잎의 색과 모양에 세월이 담기고, 그 시절을 기록한 한 줄이 역사입니다. 평창올림픽 울컥 한 줄은 평화를 위한 고된 노력의 기쁨과 슬픔을 남기네요.


꽃과 나무는 인류가 예술하는 근원일까요. 구텐베르크 성경에 문양을 그려넣은 화가의 마음을 상상합니다. 온전한 믿음의 힘으로 붓질 하나에 기운을 다했을 그 시간. 나무 껍질을 삶고 불리고 찣고 한 장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 애쓰던 인류가 기계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한 때의 벅찬 마음도 상상합니다. 노동 효율을 혁명해버린 기계들을 잠시 떠올립니다.

#달아실 새삼스럽게 로봇태권브이를 돈키호테 마냥 말에 태운 작가의 상상력을 상상하고 과거의 문화유산에서 시대의 변화를 담담하게 봅니다.


하나낳아 젊게살고 좁은땅 넓게 살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둘도 만다, 무서운 핵폭발 더무서운 인구폭발..한 시절의 말들이 우스워질만큼 시대 변화는 인간이 내다보기 어렵나봐요. 조금 더 크고 넓은 상상력을 갖고 싶네요.


와중에 미디어 수다

일행 중 B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줌 세미나를 여행 중간에 따로 한 전문가. 다른 두 분은 미디어 학자입니다. 저 나름 국민청원 기획자에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자. 먹고 마시는 와중에 우리의 수다는 간간이 이어졌니다.
어떤 담론을 만들어도 그걸 유통되도록 만들려면 형식도 중요. the medium is the message. 글이 길다면 읽힐 장치가 있거나 해당 커뮤니티의 독자에게 맞아야 하고. 글이 제대로 나오려면 일단 보상이 관건.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면 공들일 동기 부여가 안된다는 말씀 지당합니다. 무엇보다 지난 1년 내내 저의 화두이기도 했지만 물적 보상을 뛰어넘는 건 평판 보상. 글에 대한 한 마디 코멘트가 그토록 힘이 된다면 여럿의 예의 바른 소통은 분명 힘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얼룩소 답글 소통의 품질 유지를 위해 초기엔 사람을 갈아넣고, 규칙이 형성된다면 분명 괜찮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글쟁이를 키우는 건 또다른 미션. 젊은 글쟁이를 키우려면 역시 사람을 갈아넣어야 한다는 R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 아는 얘기를 장황하게 하지 않도록, 한 줄 뽑아내도록, 붙잡고 쳐내고 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하죠. 여러 전문가들 글 섭외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K님의 노하우는 사실 K님이란 사람의 매력과 역량입니다. 오래 숙성된 네트워크와 평판이 힘이 되고, 글을 나눌 때의 가치를 설득하는 그의 메시지가 통하는 거죠. 별거 있나요.


보너스 컷, 옹기 술병

#달아실 박물관은 춘천 옥광산 거부의 타운. 달아실 피규어를 비롯해 온갖 것을 수집한 와중에 옥동굴 체험장에 뜬금 없이 옹기 전시. 술통과 술 빚는소주고리. 첫 사진 소주고리는 야하다는 일행의 코멘트.


춘천 이야기


“춘천에는 28만명이 살아요. 강원도 사람들 대략 150만명이죠. 소양강 덕분에 이 지역은 수도권 주민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비용, invisible cost를 치러요. 소양강이 북한강으로 이어지니 상수원 보호를 위해 공장 같은 산업시설을 지을 수 없죠. 일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강원도에는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 두 개가 가장 커요. 다른 지역에 10개 안팎의 매체가 있는 것에 비하면 무척 적어요. 지역 신문에 광고할 지역 기업이 적기 때문이죠.”


당초 여행 호스트 H님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인해 이번 춘천나들이 가이드는 춘천살이 20년 된 K님. 춘천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그 세월에도 K님은 외지인이랍니다. 정작 고향에서는 출향인이라 불린다니 이 텃세와 선긋기는 익숙하면서도 어색해요.

춘천에서는 춘(천)고 출신과 다른 고등학교 출신 등 두 종류가 있다고요. 춘고의 전설 같은 에피소드가 이어지지만 저는 소양강 처녀의 그 뱃길 얘기에 푹 빠졌어요. 또 언제 타보나, 국내 최장이라는 소개에 호기심이 동했던 삼악산 케이블카. 전망대에 올라가면 춘천 도심에서 춘천대교가 강 가운데 섬까지만 연결된게 보여요. 왼쪽이 서쪽 마을 즉 서면인데 거기 박사마을이 있답니다. 진짜 박사가 많이 나와서 붙은 이름. 그 동네가 배출한 박사들 이름을 새긴 박사탑까지 있다는데 정말인가요. 그 마을 출신 박사들은 보통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학교 가는 자체가 큰 일. 춘천대교 없던 시절 강 건너 춘고를 가려고 아침 저녁 배를 탔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를 타고.. 족히 한 두 시간 걸렸을 고된 등하교길. 대체 공부는 안제 하셨을까만 줄줄이 박사.

소양강 강변 카페 #디쿼드 빈백에 기대어 춘천을 봅니다. 65만이 사는 송파구의 반도 안되는 분들의 예쁜 도시. 햇빛이 푸르게 반짝이는 의암호 물길 따라 자전거 타는게 평범한 일상이라는 K님이 갑자기 비범해 보이는건 뭘까요.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바닥이 유리로 된 다리. 강바닥 돌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아요. 그저 감탄만 하다가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를 지키기 위해 개발이 제한된 상수원 주민들의 고충을 들으니.. 과연 보상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지고요…

닭갈비와 막국수의 도시라지만 조형물 어쩐지 짠해요. 앞치마 두른 닭 옆 막국수 계란 고명이라니. 비운의 닭인가요. #춘천나들이



1박2일 마냐먹방


해장을 막국수로 하자고 고집해서 미안요. 달큰하고 톡 쏘는 동치미 국물은 끝내줬잖아요. 국수에 부어먹어도 좋았고 따뜻한 면수도 좋았고. 고기는 또 얼마나 맛나게요. 다 좋았는데..7000원 감자전은 왜 두 장씩이나 큼지막하게 나오는 건가요. 보통으로 시킨 같은값 막국수는 왜 국수 사리가 두 개인가요. 2인분에 가깝잖아요. 곱배기는 세 개 준다고요? 푸짐한 인심에 과식 경고. 그나마 속 안좋아 못드신 분들 어쩔.. #남촌막국수

첫날 점심도 막국수. 67년에 시작한 #실비막국수. 73년 춘천에서 '막국수'라는 이름으로 영업등록한 1호라고요. 3대가 이어온 이 집 막국수도 고소하고 짙은 맛. 고기는 남촌이 나은듯 하지만 막국수 자체로는 결코 뒤지지 않아요.


이번 춘천 만찬은 #대추나무막국수 집의 엄나무백숙. 대체 엄나무가 뭐길래 이렇게 풍미가 좋은가요. 쫄깃하고 야들야들한게 동시에 가능한 식감은 또 뭔가요. 압도적 백숙입니다. 역시 감자전 빠지면 서운해서 주문했더니 과식. 죽은 남기려 했지만 고소한 맛이 숟가락질 할 때 마다 혀끝에 남아 중독자처럼 끝까지.. #달아실 인근입니다.


저녁 2차는 #스퀴즈브루어리 막국수를 넘어 춘천 명소가 될 수 밖에 없어요. 일단 맥주가 훌륭하고요. 공간도 분위기도 영화 같아요. 안주는 먹태 밖에 맛보지 못했지만 강원도라 그런지 더 고소한걸까요. 사진 핀이 나가서 잘 안 보이는게 아쉽지만 강원 곳곳에 다양한 수제맥주 선수들이 경쟁하고 서로 응원하는 듯 하여 어쩐지 흐뭇해요. 제 사진 하나 건졌네요. 땡큐.


원주 뮤지엄산 주변 맛집 검색해 찾은 #강민주의_들밥. 솥밥에 8가지 찬, 청국장이 1만원 기본. 제육과 고등어구이 추가했더니 간단하게 먹는다는게 그만..


삼악산 케이블카 기념품점에서 B가 고른 #의병주. 조선왕조 최후의 의병대장 의암 류인석 가문의 400년 전통주? 그런데 의암? 네.. 의암호의 이름이 이분에게서 나온거군요. 조선말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하고 해외 독립군 기지를 개척한 분. 네. 이런 술은 마셔드려야죠. 의병주 말고 류인석주라고 명명했어도 좋았겠다는 B의 의견에 동의. 약간 콤콤한데 R님은 블루치즈 풍미라고.

춘천의 밤은 동동주, 의병주, 수제맥주에 이어 숙소에서 B가 준비한 1.5리터 매그넘 와인 마초맨. 제가 L선배에게터 선물받은 53도 소주 무작(無作.) 천연누룩으로 5년 숙성시킨 이 좋은 술은 다음날 제가 멀쩡한것만 봐도.. 뭐 백주도 이어마셨으니 이날 술만 6종..

#마냐먹방 #방역수칙지키면서_식당도살아야죠


춘천 나들이에 기록 하나 이렇게 추가합니다.  


아참. 아. 진짜 멋진데 끈을 묶는데 시간 걸리는 구두 덕분에 벗고 신을 때 마다 고생한 R님. 간지와 바꾼 신발 고행기 한 줄 넣었어야. 덕분에 더 즐거운 여행이긴 했습니다ㅎㅎ


20년 11월


17년 4월


16년 12월











살짝 남겨놓는 사진들. 프라이버시도 중요하지만 추억추억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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