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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Dec 30. 2022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빠의 해방이란..

진지하고 비장했던 부모. 빨치산이었던 부모. 소소한 일상이 죄책감을 가져오게 만드는 부모. 물정 모르는 촌뜨기 부모. 개인은 늘 시대의 파편을 온 몸으로 받아낸다. 세대를 이어 그 파장은 깊고 짙다.


#아버지의_해방일지 다들 한달음에 읽었다고 하니 살짝 고백한다. 서점에서 샘플 책으로 다 읽어버렸다. 어느날 절반, 그 다음주에 나머지 절반. 늦가을이었다.


"..예쁘길래 사왔는데 입어봐라, 너는 왜 바지만 입냐, 남자친구는 있냐, 왜 연애를 안 하냐, 이런 말을 나누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혁명가였던 내 부모에게는 연애도, 옷도, 화장도, 별 의미 없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 틈에 끼어 나는, 혁명가도 아닌 나는, 신념도 없는 나는,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맛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늙어가는 중이었다. 혁명가도 아니고 신념도 없는 주제에 진지하지 않는 것은 참지 못하는 꼰대 같은 어른으로. 그러니까 아버지, 나는 억울하다니까요! 그래봤자 아버지는 죽었고, 죽어서도 혁명가인 양 영정사진 속에서 근엄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저자의 삶은 어느 단면에서 잘라봐도 희비극이다. 그 아버지는 더욱 그렇다. 빨치산이고 사회주의자인데 어설픈 노동자였고, 연좌제로 가족들에게 피해만 남겼고, 생활력 강한 부인에게 기대어도 바람도 피워보고, 소주로 지우며 살아간 삶. '늙은 혁명가의 비루한 현실'은 웃프다. 머리로는 남녀평등이 당연하지만,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긴 어려운 시대의 남자였다.

책이 화제가 된 건, 무거운 시대의 초상을 질척거리지 않고 쿨하게 그렸기 때문인듯. 사투리는 찰지고, 직설적인 언어들은 둘러 돌아가지 않는다. 좋은 소설이다.

나의 진지함도 아마 아빠에게서 왔겠지. 학벌사회에서도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성공한 인생인데 사회주의 감성을 갖고 청빈하지 않은 걸 견디지 못했던 모순된 아빠. 자상하고 다정한 표정 대신 엄근진했던 아빠. 딸에게 평생 일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결혼해 지아비에게 잘하기를 바랬던 아빠. 평생 자기관리하고 지적 탐험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는데, 요즘 달라지셨다.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아빠,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면 더 부딪친다. 오늘은 아빠 생일이다. 내 마음이 여러갈래다. 아빠는 해방을 아실까? 해외 플랜트 현장에서 진두지휘하고 뭔가를 만들어내실 때 가장 행복하지 않으셨을까? 가족은 위안이기보다 짐일 때가 많지 않았을까?
가족을 그린 소설은 내 가족을 들여다보게 해서 마냥 편하지 않기에, 이 소설이 유쾌하다는 건 큰 장점이다. 현실도 조금 그래도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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