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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호 Feb 27. 2024

아니 그게 돼요?

Day 13


아쉬탕가 수업이다! 흠. 오늘은 얼마나 어려운 동작들을 할까? 아침 일찍부터 게슴츠레 뜬 눈으로 단백질 쉐이크를 말아먹으며 벌써부터 살짝쿵 걱정을 한다. 그렇지 뭐든, 모르면 용감한데 알고 나면 겁이 조금 생긴다. 하지만 나는 이걸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 한 가지를 알았지. 그건 바로 ‘겁이 날 땐 늘 처음 한다는 생각으로 할 것’이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아무 생각 없이 하자는 의미 와도 같다. 늘 배우러 간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 이게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 요가 병아리이니까! 헤-


조금씩 날이 추워진다. 웅크린 몸을 이끌고 갔더니 오늘은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하고 시작하자고 하시는 선생님.

“원래 아쉬탕가는 준비 운동 같은 게 없는데, 너무 추워지니 굳은 몸을 조금씩 풀고 시작할게요.”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선생님의 말투를 들으면 하나하나 차분하게 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음. 그렇다. 착각. 선생님은 흐트러짐 없는 차분한 말투로 속도감 있게 아쉬탕가를 이끌어가시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힘이 빠져 물에 푹 젖은듯한 하체를 아주 힘겹게 들어 올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반박자씩 느리게 따라가고 있더라. 분명 나는 지상에 몸이 있는데 하체는 수영장 어딘가에 혼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하. 저 두 다리가 마음처럼 가볍게 따라와 주지 않는다.

‘오늘도 너희 두 다리와 나는 내외하는구나…’


선생님은 일정한 속도로 조곤조곤 말하시며 중반부까지 거의 함께 하셨다.

‘후… 말을 하면서 동작을 끊임없이 하시다니 역시 선생님은 대단해.’


내가 정말 감탄한 건 선생님의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 동작이다. 아직도 복부, 팔 등에 힘이 딸리고 제대로 된 동작을 몰라 삐그덕 대며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선생님의 동작은 정말이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속으로 감탄을 마지않았다.

‘와.’

이런 표현이 감히 맞을지 모르겠지만 기름기 쪽 뺀 참치처럼 동작들이 담백했다. 다른 동작은 모르겠는데 저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 동작은 정말이지 선생님처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뭔가 되게 단단해 보이고 멋있다. 저 동작을 잘 해내면 나도 단단해질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아직 그러기엔 나의 이 죽정이 같은 팔과 거죽 같은 배가 따라와 줄지 모르겠다만, 일단 그냥 계속 다녀보는 거다.


때때로 나는 내가 요가하는 모습이 대벌레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벌레는 팔다리 몸통은 가느다란데 뭔가 유연성 없이 뚝딱거리는 느낌이라 내가 요가하는 모습이 흡사 대벌레와 비슷해 보일 때가 있다.


대벌레야. 살을 찌우고 근육을 키워 100일의 요가를 잘 채워보자.


후달거리는 팔다리, 자꾸 풀리는 동공, 한없이 기력 없는 몸에 체력적으로 살짝 한계가 온 것 같다. 나는 아직 초보자라 숙련자 분들의 동작을 100 프로 똑같이 따라 하지 않고 초보자 전용 동작으로 따라 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여느 때처럼 그런 초보자 동작을 하며 나와의 싸움을 고독히 하다 너무 힘들어 살짝 고갤 들었는데 아니 내 앞의 회원님께서 물구나무를 서고 계신 거다.


나도 모르게

“우와”

하는 소리가 작게 터져 나왔다.


‘아니……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뭣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초보자 동작이 나중에 저런 숙련자분들이 하는 동작들의 초석이 되는 행위란 말 일 텐데, 그렇다면, 나도 언젠가 저것을 해야 한단 이야기잖아… 와, 내가 할 수 있을까?’


혼미해진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의 걱정 비슷한걸 또 해버렸다. 얼마나 배워야 저 정도로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레벨업을 해 나가자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180도로 물구나무를 선 사람, 90도까지만 다릴 들어 올려 물구나무를 선 사람, 나처럼 초보자 동작을 반복하는 사람 등. 각기 다른 모양으로 수련을 하고 있더라.

‘요가는 처음부터 무리하는 게 아니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차분히 하는 거라면 느려도 조금씩 해보면 되겠다.’


다 같은 속도와 모양으로 물 흐르듯 끊김 없이 하는 게 요가라 생각했는데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꾸준한 수련을 하는 게 요가 인가 싶다.

뭔가 오늘 매우 중요한 깨달음 같은 걸 얻은 기분이다.


천천히 가보자,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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