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호 Mar 20. 2024

어차피 못 할 거 그냥 해

Day 24


오늘은 일주일 중 제일 힘든 빈야사 요가 시간이다. 원장님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빠이팅 넘치게 몸을 움직이는 시간!


아침부터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이유는, 어제 밤새도록 설사를 했기 때문. 하… 정말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몸에 기력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배탈 증세는 아침엔 멎어졌고 오히려 운동을 해서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주저 없이 요가원으로 향했다.


호… 시작 5분 전 도착인데 이미 많은 분들이 와계셨다.

역시 힘들지만 제일 운동이 되는 시간이라 그런가 평소 같은 시간대보다 회원님들이 많이 계신다. 이미 많은 분들이 와계셨단 의미인 즉, 내 자리는 원장님 바로 근처가 될 거란 의미. 원장님 곁의 자리는 제일 마지막에 채워지는 자리 중 하나이다. 허나 난 이젠 이 자리가 부담스럽진 않다! 왜냐면,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


무언가 하기에 주저스러울 때 마음속에 되뇌는 주문이 하나 생겼다.

‘어차피 못 할 거 그냥 해.’


히. 이건 내가 여름에 즐겨보던 드라마의 대사이기도 하다. 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작가가 되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내놓을 글을 쓰려하니 처음이라 자신 없고 못할까 봐 주저하던 와중에 이러한 주문을 외우고는 스스로 용기를 얻어 세상에 글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렇게 브런치라는 글쓰기 공식 플랫폼을 통해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고 요가도 이렇게까지 오래 하며 기록하는 건 처음이므로 여러모로 내게도 도움이 되는 주문이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일이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려니 겁이 나 주저하는 것들이 있다면 이 주문을 한번 외워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은근히 도움이 많이 돼요!


역시나 시작 10분여를 지났을 때부터 점점 빡셔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오. 나 제법 힘이 있다. 어제 비록 설사로 모든 걸 내보냈음에도 여태 20여 일간 운동했던 게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근육들이 이젠 꽤나, 처음보다 잘 버텨준다. 조금 든든해진 느낌. 스스로가 든든해진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나는 늘 몸이 약하고, 체력적으로 많이 후달리는 사람이라 신체활동에 자신이 없는 편이었는데 처음으로 스스로의 몸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역시 몸은 솔직하군.’


사회적인 면에서 내가 하는 만큼 뭔가 성과가 없을 때, 노력 대비 성과가 미미할 때, 그래서 주눅 들 때 운동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낮아진 자존감을 약간은 일으켜 세워 줄 수 있을 지도.

가장 즉각적인 작은 성취 중 하나가 아닐까.


각설하고,

오늘은 매운맛 강도가 5가 최상이면 한 4.5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번엔 수업의 1/2 지점 정도 왔을 때 내면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서… 선생님 살려주세요!!!!!!! 아악.’

그즈음 되면 선생님은 귀신같이 내면의 아우성을 들으시고는 이렇게 또 말씀하신다.

“버텨요!”

선생님말씀을 듣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느슨해지려는 팔다리에 힘을 더해본다.

허. 근데 역부족이다. 오늘은 내 의지와 다르게 자꾸만 힘이 풀린다.


그럴 때 또,

“버-텨-요!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세요!!!”


‘아…아아.. 네. 해… 해보죠!!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


거짓말 같지만 정말 속으로 저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더 날 것으로 표현하자면

‘야.. 버텨보자. 디지기야 하겠냐.’라고 생각했다. 헷. (누가 그러던데 헬스나 에어로빅은 소리 지르거나 구령을 하며 버티는 거라면 요가는 속으로 쌍욕을 뱉으며 버티는 거라고 했다. 그 말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약간은 광기 어린 눈을 장착하고 미친 사람처럼 버텼다.


근데 왼쪽 뒷 허벅지 햄스트링이 또 말썽이다. 전굴 할 때마다 찢어질 듯 아프니 섣불리 숙이질 못하겠다. 오른쪽은 정말 유연해졌는데 왼쪽은 뻣뻣 그 자체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병원을 가야 하는 건데 내가 미련하게 안 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이러다 또 말겠지.

조급히 생각 말자. 나는 느리지만 오래도록 가고 싶다고. 미리 내년 4개월치 회원권도 끊었는걸.


좋아!


해보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반다가 뭐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