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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호 Apr 30. 2024

숙취 요가

Day 39


'으아아! 죽겠다'

이 소리는 월요일 아침 아쉬탕가 시간 초입부터 급격히 술이 올라와 숙취와의 싸움으로 내적 신음을 하는 한 인간의 울부짖음이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이런 말을 요가하면서 쓰게 될 줄이야. 특히나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이제 술 안 먹는다 내가’라며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하기도 하는데 이걸 또 요가를 하며 속으로 내뱉게 될 줄이야.


전날 겨우 맥주 두 캔 마셨다. 그런데 어제 유독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소주 한두병 정도 먹은 것 같은 뒤끝이다. 자기 컨디션도 못 챙기며 술을 먹다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술에 휩쓸려서 다음날 힘들어하는 꼴이라니… 요가가 아침 일찍 있는 스케줄이면 애초에 먹질 말았어야지.' 하며 내면의 관찰자가 기숙사 사감과 같은 모습으로 냉정하게 나무란다. 아. 몸이 힘드니 마음도 시끄럽고 요가도 안된다. 이런 기분이면 하루도 망칠 것만 같다.


나는 이런 식이다. 그런데 또 돌아보면 너무 스스로를 빡빡하게 구는 것 같아 안쓰러워서

'아니, 그럴 수도 있지. 겨우 맥주 두 캔인데! 컨디션 안 좋으면 몸이 훅 갈 수도 있지 자기가 뭐 알고 먹었겠나. 자신도 모르는 몸상태였나 보지!' 하며 내 편이 되어주는 말을 또 해본다.


시끄러운 정신상태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하며 내면의 두 관찰자들을 달래준다.


'일단 말이지. 나는 지금 너무 힘들다구. 술을 먹은 건 어제의 지난 일이고 현재 나는 요가는 왔단 말이지. 그렇다면 힘들어도 일단 해야 돼. 그러니까 둘 다 조용히.'


아. 막바지에 다다랐을까.

누워서 복부를 일으켜 후굴 하는 자세인 '우르드바다누라' 자세를 하고 나니 이젠 숙취에 두통까지 더해졌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도저히 표정을 부드럽게 지을 수가 없다. 누가 보면 오늘 요가는 혼자 다 한 얼굴. 게다가 평소엔 잘하지도 않는 동작이었다. 아직 무릎도 약하고 허리도 유연하지 못해서 우르드바다누라를 요가원 다닌 이후로 시도한 적이 다섯 번도 안된다. 여태껏 그전 단계인 브릿지 자세에서 버티는 걸로 몸을 다져왔었는데 오늘은 숙취가 판단력도 흐리게 만든 건지 나도 모르게 복부를 부웅~ 일으켜 우르드바다누라를 하고 있더라.

고개가 거꾸로 땅으로 향하니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술이 더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거울을 보고 있진 않았지만 아마도 얼굴이 벌게졌을 것 같은 기분이다.


다시금 내면의 사감님이 팔짱 낀 손을 풀어 날카로운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조둥이를 달싹거린다.

'그것 봐라…ㅉㅉ… 꼴좋다.'

질세라 다른 천사 같은 관찰자가 맞받아친다.

'말이 좀 심하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내가 아쉬탕가가 많이 익숙해지긴 했나 보다. 잡생각이 많이 드는 걸 보니.


그런데 이 잡생각들은 동작들에 정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일정한 스텐스로 흐름을 타는 게 아닌 같은 동작이라도 첫 번째엔 오른쪽에 더 힘이 들어가고 두 번째엔 왼쪽에 힘이 더 들어가는 등 이랬다 저랬다 난리 부르스의 요가였다.


약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가는… 그 전날 먹는 것부터가 시작인 걸까?' 하는…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다음날 요가 시의 몸상태와 정신상태가 이렇게나 영향을 받는다면 요가원의 한 시간만이 요가 타임이 아니라, 그 전날부터 이미 요가는 시작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가 시간을 온전히 잘 느끼고 명상의 단계까지 다다르고 오고 싶다면 좀 분하(?)지만 내면의 사감님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줘야겠다.


사감님이 이기셨네요. 하지만 점심은 천사님과 먹겠습니다아.



덧, (덧붙임의 말이다. 혼자 블로그에나 쓸 때 쓰는 표현인데 여기서도 이렇게밖에 표현할 줄 몰라 부끄럽지만 본문과는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이기에 써본다.)


개인 요가매트를 사야 하나 고민 중이다.

우리 요가원은 공용 매트가 있긴 한데 오래되어서 냄새가 좀 난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냄새가 난다. 땀냄새 같은 약간 꼬림한 냄새가. 완전초짜일 땐 그냥 요가원 매트를 쓰다가 3개월 첫 등록이 끝나면 내 전용 매트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이젠 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이놈의 귀차니즘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개인매트를 사용하여 매번 돌돌 말아 챙기는 귀차니즘을 감당할 것이냐 vs 냄새나는 공용 매트를 감당하며 몸만 왔다 갔다 하는 편의성을 택할 것이냐.'의 대립이 팽팽하다.


냄새는 싫지만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이 가뿐한 놀림이 너무 편하고 좋은 것.

하지만 편한 것은 위험하다했다.(?)


이 글을 쓰며 다짐했다. 개인 매트를 장만하기로.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요가원에서 개인매트를 쓰지 않는 사람은 한 타임당 나를 포함 한두 명 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이젠 개인 매트를 쓰는 이유를 좀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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