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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Nov 06. 2024

나는 한국인과 일하지 않을 것이다

29. 공무원을 결심한 순간

며칠간의 공황 상태에서 나오며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는 내용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노동부에서 명시하고 있고용주와 생길 수 있는 분쟁들을 보니 세금문제 외에도 나에게 해당하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 휴가비

- 공휴일 근무 추가수당

- 카드단말기 팁 내역

- 직원과 직원 가족에 대한 모욕 

- 언어폭력

- 정서학대


캐나다의 소득세는 연방과 주정부에서 각각 부과하며 연간 소득에 따라 세율이 차등적용된다. 나는 기본세율이 적용되는 연간소득에 받고 있었다.

연방정부(왼쪽)와 BC주(오른쪽) 2024년 소득세율
BC주 소득세의 경우 $50,000의 소득이라면 $47,937까지는 5.06%가 적용되고 초과한 $2,063에 대해서는 7.7%가 적용된다. 여기에 15%의 연방 소득세가 붙는다.


BC주 근무 시작 시부터 5년까지 2주(14일) 유급 휴가제가 있다. 유급 휴가를 주지 않을 경우 해당연도 세전 연봉 기준으로 최소 4% 휴가비를 지급해야 한다. 엄마가 캐나다에 오셨을 때도 나는 무급 휴가로 여행을 했다. 휴가비도 받지 못했다.


근무기간 6년 차가 되면 휴가는 3주(21일)가 된다. 휴가비는 새 휴가연도가 시작되기 7일 전까지 지급되어야 한다. 즉 당해연도 정산을 기본으로 한다. 퇴직을 할 경우 퇴직일까지의 당해연도 미지급 휴가비를 정산해줘야 한다. 휴가기간이 2주일 경우 최소 4%, 3주 최소 6%, 4주는 최소 8%의 휴가비가 적용된다.


캐나다에도 월급제(salary)가 있지만 시간제(hourly wage) 개념의 임금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공휴일 근무를 할 경우 근무시간의 1.5배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과 다르게 캐나다는 월요일로 떨어지는 공휴일이 많다. 나는 월요일에 항상 근무를 했다. 공휴일 근무를 원하지 않는 로컬 아이들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같이 날짜가 정해져 있는 공휴일에도 쉬는 날이 없었다. 따라서 공휴일 근무에 대한 추가수당을 받았어야 했다.


1.5배의 공휴일 근무 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공휴일 이전 30일 중 15일간 근무를 해야 한다. 공휴일 근무시간이 12시간 이상일 경우에는 2배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팁 관련한 규정을 보니 '팁은 직원들을 위한 제도지만 운영상 필요에 따라 고용주도 팁을 취할 수 있다.'라고 나온다. 팁을 가져간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카드단말기 팁의 정산 내역을 공개해 달라는 요청은 할 수 있다.


신고는 유선으로도 가능하지만 서면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 나는 서면을 선택했다. 필요한 양식을 다운로드하고 작성을 해 나갔다. 이미 계산해 놓은 소득세 차액과 내가 받을 수 있는 휴가비, 공휴일 근무 수당을 포함해 금액적인 부분을 양식에 담고 그동안의 내 근무 스케줄과 계산 내역을 첨부했다.

나를 포함한 가족에 대한 모욕과 언어폭력, 그리고 정서적 학대는 별도 진술서와 병원기록 등을 첨부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노동부 서류는 준비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갈 각오까지 하며 내가 내린 결정은 정면돌파였다. 정면돌파는 물론 나의 안위도 있었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주방직원들을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부정하고 나올 경우 나는 그들과 직접 싸우지 을 것이다. 그땐 플랜 B, 서류를 노동부보내면 된다.


사장님에게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 얼마 후, 이틀 뒤 오전 10시에 맥도널드에서 만나자는 답장이 왔다. 당일이 되어 자료를 가방에 챙겨 넣고 노동부 서류들은 따로 봉투에 담아 집을 나섰다. 햇살이 내려앉은 골든 이어스(Golden Ears)는 겨울에도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차를 하고 들어가니 혼자 앉아있는 사모님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블리야. 커피 마실래?"

"사장님은요?"

"어 이 양반, 오늘 골프 치러 갔어."


뒷덜미가 뜨거워진다. 단둘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실만큼  당신이 괜찮지 않다. 그걸 견뎌낼 너그러움도 지금 나에겐 없다.


"저 사장님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사장님께 연락드린 거예요."

"무슨 얘긴데? 나한테 해."

"사장님과 해야 해요."

"그래? 그럼.. 약속시간 다시 잡을까?"

"네! 오늘 연락 주시나요?"

"그래, 이따가 이 양반 들어오면 얘기하고 연락해 줄게."

 

연락은 없었다.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자 이번엔 단도직입적인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제가 낸 세금과 관련해 확인할 게 있습니다.

오늘까지만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내일 10시 맥도널드에서 봅시다.' 곧 답장이 왔다.


다음날 맥도널드에 두 부부는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했던 대로 사장님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정리해 간 내역을 보여줬지만 회계사에게 맡겨 처리한 거고 세금이 잘못될 일은 없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이야기 할 때마다 말에 '변화'가 있다는 건 그것이 사실과 멀리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나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방어에 방어가 이어지며 허점이 계속 드러났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진실게임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사장님이 태도를 바꾸고 수긍을 해버렸다. 실수였는지 아니면 계속되는 질문에 내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서였는지 세금이 과도하게 징수됐다는 걸 인정하고 나왔다. 확인하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믿기지가 않았다. 막상 인정을 하고 나오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거듭 다시 묻자 그렇다고 대답한다.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이어진 말에는 허무함마저 밀려왔다. 처음 주장처럼 몰랐던 사실이거나 회계상 실수가 의심된다면 회계사를 통해 확인한 후 오류 정정을 해 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계정이 아닌 개인 계좌에서 현금으로 돈을 빼주겠다는 건 애초부터 그들의 부정한 의도가 관여했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지난 2년간의 휴가비와 공휴일 근무 추가수당도 지급 약속을 받았다.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손목이 망가진 탓에 일을 할 수 없으니 Medical EI(건강상의 이유로 일하지 못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기록(ROE) 발급도 해주기로 했다. 정면돌파를 결정하며 정한 나의 목표는 여기까지였다.


내친김에 세금 신고에 필요한 T4 슬립까지 미리 발급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류 하나 때문에  연락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고용기록(Record of Employment, ROE)은 퇴직 시 고용주가 발급해 주는 서류로 근무기간, 퇴직사유, 근무기간 중 소득이 명시되며 실업급여(Employment Insurance, EI) 신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T4는 연간 소득을 보여주는 한 장짜리 서류로 세금신고 마감인 매년 4월 말 이전에 고용주가 발급해 준다.


노동부에 서류를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내 영주권도 일하는 주방직원들도 문제없을 것이다. 별개로 직원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렸다. 혹 그들도 똑같이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소득갈취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급여명세서를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사장님과 직접 만나라고 당부를 해 두었다. 휴가비와 공휴일 근무 수당도 꼭 챙겨 받으라고 덧붙였다.


일은 해결이 되었지만 일주일간 경험한 좌절과 이 일이 그들실수가 아닌 의도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도의 회의감이 들었다. 세 번이나 당했던 이주공사 일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외국땅에서 내 동포에게 받은 상처들은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그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만 건너면 다 아는 크지도 않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같은 곳에 뿌리를 둔 민족끼리 상처 주고 상처받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주공사 대표에게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고 연락을 했다. 초조하게 비자나 영주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게 마감날이 되어서야 우체국 소인을 찍어 서류를 이민부에 보내는 일정관리가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나에게 풀타임 오퍼를 하며 이제 막 LMIA 비자 승인이 난 직원정리하려 생각하고 있는 것도 불편했다. 내 미래도 미래지만, 그곳에서 나가면 그 친구는 고용주 찾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영주권 받는 기간 동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국인 고용주와 일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았다는 이유로 마치 기득권층인 양 힘을 과시하는 모습도, 가당치 않게 뽐내는 그 우월의식도 나는 갖고 싶지 않다. 개인의 이익에 눈이 멀어 타인의 인생 가볍게 여기는 그 이기심을 나는 배우지 않을 것이다. 그곳엔 인격도 존중도 배려도 없다. 나는 타인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할 것이다. 내 사사로운 욕심이 힘을 행사하않는 그런 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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