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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May 05. 2024

망해가는 회사의 팀장이 되었다

08. 스카우트 제안

APEC 행사가 끝나자마자 회사는 세계신문협회총회 막바지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컨벤션사업부뿐만 아니라 전시사업부 직원들까지 행사에 총동원됐다. 수십억의 예산이 투입된 회사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나는 BH-VIP 임석이 정해진 개회식을 비롯해 연회행사, 그리고 포스트 투어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BH-VIP: 행사기획자들 사이에서 BH는 청와대 'Blue House'를 뜻하며, BH-VIP는 '대통령'을 일컫는 약칭
*포스트 투어: 공식 행사 일정이 종료된 후 행사 참가자와 동반자가 참여하는 관광 프로그램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유료로 제공하는 일정


뉴욕타임스 회장을 비롯해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 등 전 세계 신문발행인, 편집인, 기자 및 통신사 대표 1500여 명이 참석하는 세계신문협회총회는 한국 언론의 발전사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만큼 문화 공연, 관광 프로그램 등 행사 콘텐츠에 많은 공을 들였다.



몇 년을 준비해 온 세계신문협회총회의 성대한 막이 올랐다. 국립극장에서의 환영만찬을 시작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석하신 개회식과 며칠간의 회의 일정이 이어지고 마지막 환송만찬을 남겨두고 있었다.


창경궁에서 열린 환송만찬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한국을 방문해 온 해외 언론인들을 배웅하기 위해 참석했다. 마지막 공식행사이기도 했지만 우리 역사의 상징이자 자부심인 고궁에서의 행사였기 때문에 엄격한 문화재청의 규율을 따라 준비에 특별히 많은 신경을 썼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참가자 안내 지침을 만들고 행사장도 보수적으로 구성했다. 인화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제공할 수 있는 '정중한 식단'을 만들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도 받았다.  


하지만 창경궁 환송만찬에 대한 기사가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뉴스에도 보도가 되면서 문화재 훼손 논란에 불을 지폈고 연일 질타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항공, 숙박, 식음료, 교통, 국내여행 등 파급효과가 커 컨벤션산업은 '관광산업의 꽃'이라 불린다. 세계신문협회총회는 60여 개국 1500명이 참석하며 며칠간 순항을 했지만 비난을 받고 막을 내렸다.


당시 문화재청을 이끌고 있던 유홍준 청장은 창경궁 만찬을 승인한 경위에 대해 해명글을 내보내야 했고 수년 후 방송에 출연해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또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경복궁 경회루는 외국 사신을 위한 연회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잔치를 베풀기 위해 지은 누각이라는 설명을 하며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


2005년 6월 창경궁 명경전에서 세계신문협회총회 만찬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하여 한 방송사의 비난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질타가 있었는데 이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 때문이라 생각한다. 고궁에서의 만찬은 하나의 국제적 의전이다. 왕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의 환영만찬을 고궁에서 베푼다. 고궁이 없는 나라에서는 박물관이나 예술관 로비에서 연다.
이를 통하여 국제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그 나라 문화와 전통을 체득하게 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나라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여 그동안 국제대회라면 으레 특급호텔에서 열리는 것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돈만 있으면 열 수 있는 특급호텔의 만찬과 고궁과 박물관에서의 만찬은 격이 다른 것이다.


공식행사 일정이 끝나고 포스트 투어만을 남겨두고 참가자들이 여러 곳으로 나누어졌다. 나는 그중 제주도 투어를 맡아 참가자와 동반자들을 이끌고 제주도로 향했다. 신라호텔에서 투숙한 나는 그곳에서 APEC 제2차 고위관리회의에 참석한 APEC 관계자들과 조우했다.

 



입사 후 벤처기업 시상식, APEC, 세계신문협회총회까지 연이어 3개의 행사를 치르는 동안 1년 반이 흘렀다. 쉴 틈 없이 이어진 행사를 종료하고 전체회의가 있던 날, 회사는 컨벤션사업부를 2인 팀장 체제로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 나를 컨벤션 2팀의 팀장으로 임명했다. 예고 없는 승진이었다.


언젠가 나도 팀장 자리에 올라 행사 총괄자가 되겠지 생각해 왔던 일이 경력 3년 10개월 만에 갑작스레 닥쳤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팀장이 되어 달라지는 나의 역할과 책임감이 어떤 것일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팀과 프로젝트를 이끌 깜냥이 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됐다. 회사 살림을 챙겨야 하는데 나의 한 달 지출이 얼마인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걱정과 의심이 이어졌지만 스스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뭐라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팀장의 유전자는 따로 없다. 처음부터 팀장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 부딪히면서 배워나가자 생각하고 걱정과 의심을 털어버리기로 했다.


역할이 달라지면서 직원들과의 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격의 없이 따르던 직원들이 거리를 다. 모르는 척 지켜보면서 속이 쓰리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그들의 연봉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평가가 내 손에 달려있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그 무렵 벤처협회 사업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갑질'을 당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나도 '갑'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일 호흡도 잘 맞는 사업팀장이라면 같이 일을 해도 좋을 일이었다. 그 당시 관계 변화, 역할 변화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나는 비즈니스 파트너였을 때와 동료로 일할 때의 관계에서 오는 차이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야"를 외쳐대던 회원관리팀장 따위는 머릿속에 없었다. 정해져 있던 당장의 행사는 모두 끝났고 머릿속은 온통 앞으로의 사업구상과 팀 구성뿐이었던 나는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다. 고민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컨벤션'이었다.


회사의 살림을 챙기는 일에 참여하게 된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회사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됐다. 벤처협회에 내가 파견 나가있는 동안 회사는 해외전시사업을 추진했고 엄청난 손해를 봤다. 해외전시팀 직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던 회사는 다방면으로 경제적 난관을 해결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무렵엔 이미 전시사업부 직원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 여파는 컨벤션사업부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퇴직의 바람을 타고 이 부서, 저 부서의 직원들이 떠나고 있었다. 한때 크루즈사업까지 손 댈 만큼 좋았던 사장의 자금력은 바닥이 났고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회사는 무기력하게도 직원들이 떠나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팀장이 되어보니 회사가 망해가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르르르릉~


"감사합니다. 컨벤션사업붑니다. 네, 블리야 팀장님요? 어디시라고 전해드릴까요? 네, 잠시만요.."


직원이 전화를 돌려주며 발신자의 회사 이름을 알려준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고구려 정복왕의 이름을 딴 회사에서 어느 날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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