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컨벤션업계는 술렁였다. 국가 정상들이 모이는 외교행사는 모든 컨벤션기획사들의 꿈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정상회의는 2005년 11월 부산에서 개최되었지만 정상회의 전 3번에 걸쳐 고위관리회의가 있었다. 정상회의에서 다룰 어젠다를 미리 논의하고 합의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첫 번째 고위관리회의의 대행사 선정이 진행됐다. 뜨거운 열기를 반영하듯 많은 업체가 경쟁입찰에 참여했다.
첫 번째 회의의 용역대행사로 선정된 곳은 우리 회사였다. 벤처협회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곧바로 APEC 행사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4개월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빠듯하게 준비해야 했다. 야근과 밤샘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어느 때보다 신이 났다. 첫 행사였고 정상회의까지 이어질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이라 그만큼 의미도, 책임감도 컸다.
가장 시급하게 시작해야 할일은 보안이 강화된 온라인 등록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각 회원국과 국제기구별로 지정된 담당자에게 고유한 등록시스템 접근 권한을 줘야 했다. 지정 등록 담당자를 통해 접수된 고위 관료들에 대한 신상이 담긴 자료들은 현장 출입통제시스템과도 연계해야 하기 때문에 데이터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회의별로 참석자 그룹이 다르기 때문에 회의장 출입권을 차별화하기 위해 현장 출입통제에 RF 시스템을 도입한 건 당시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와 별개로 무엇보다중요한 업무는 회의 일정을 잡는 일이었다. 2주간의 행사 기간 중 약 10일 동안 40개가 넘는 크고 작은 회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회의 일정을 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막막함까지 들었다. APEC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이 있었지만 APEC 회의가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것이었고 정상회의 개최 경험 자체가 전무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부재했다. 우리 쪽 요청으로 APEC 본부를 통해 회의 스케쥴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받았다. 나는 영문으로 된 방대한 양의 자료와 전년도 행사 일정표를 참고해 룰을 정리해 나갔다.
회의 일정의 룰은 복잡했다.
A 행사는 반드시 B 행사에 앞서 개최되어야 한다. B 행사는 C, D 행사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C 행사는 E 행사에서 도출된 의견을 모으는 자리다. F 행사는 반드시 D 행사 3일 후 열린다. 최종 합의문이 나오는 G 행사 전날 F와 H 행사가 배치되어야 한다 등이었다.
각 회의별 회의장 세팅 및 좌석 배치에 대한 가이드라인 역시 엄격했다. 일부 회의는 교실식, 원형의 라운드 테이블 배치가 필요하고 이외 대부분은 'ㅁ'자 세팅을 해야 하는 등 회의장 세팅 규정이 있다. 'ㅁ' 자 세팅이 요구되는 회의는 각 회원국과 국제기구 대표 1인이 모두 ㅁ자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회의에 따라 뒷열에 각 회원국 및 국제기구의실무자가 배석할 수 있는 의자가 1열, 2열 또는 3열로 배치되어야 한다. 영상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회의도 있고 1개 또는 복수의 스크린이 필요한 회의도 있다. 최종 합의안이 나오는 마지막 회의는 각 회원국 및 국제기구별 2명이 'ㅁ'자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의장이 발언권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행사 장소였던 서울 신라호텔 전체 연회장이 APEC 행사로 잡혔다. 다이너스티홀을 포함한 영빈관의 모든 연회장도 모자라 객실까지 활용해 부대사무실을 조성해야 했다. 총 6개의 회의가 동시에 열릴 수 있는 회의장, 기자단을 위한 프레스룸을 비롯해 10개의 부대사무실이 상시 필요했고, 양자회담과 APEC 의장 사무실과 같은 곳은 객실을 변경해 활용했다.
APEC 회의의 특징 중 하나는 문서 배포 규정이었다. 회의에서 다룰 어젠다는 보통 회의 전날 또는 직전에 APEC 의장실을 통해 전달됐다. 다른 행사에서는 볼 수 없던 '문서실'을 운영해야 했던 이유이자 문서관리에 대한 보안지침을 마련해야 했던 이유다. 배포자료는 회의 시작 전 각 회의실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다르게 최종 합의문이 나오는 마지막 회의는 'paperless'였다. 최종 회의의 모든 배포자료는 전자문서여야 하고 'ㅁ'자 테이블엔 40여 개의 회의에서 다룬 방대한 양의 어젠다들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개인별로 제공해줘야 했다. 또한 배석자들을 위해 회의장 각 코너에는 영상장비가 설치되어야 한다. 회의장에 접근할 수 없는 참가자들이 회의 진행과정을 볼 수 있도록 '뷰잉룸'도 조성이 됐다.
회의 일정을 짜기 위해 신라호텔로부터 전 연회장 도면을 받고 도면 작업을 먼저 시작했다. 'ㅁ'자 배치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연회장별로 'ㅁ' 자 배치로 나올 수 있는 좌석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먼저 그려본 후 엑셀시트에 장소별로 행을 만들고 날짜를 열에 넣어 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회의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넣다 뺐다 수도 없이 반복을 한 끝에 드디어 회의 스케줄이 나왔다. APEC 회의 규정에 맞춰 작성해야 하다 보니 내가 임의로 만든 식별과 색깔을 사용해 변경이 되더라도 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알록달록한 회의 일정표를 볼 때마다 뿌듯함이 들었다.
회의가 많다 보니 현장운영매뉴얼은 수백 장에 달했다. 대표단 차량 운행을 담당할 기사를 포함해 100명에 이르는현장 진행요원을 선발하고 두 번에 걸쳐 사전교육을 실시했다. 현장요원에게 지급할 유니폼과 안전사고를 대비한 상해보험 가입 등 예산이 들어갈 곳이 많았다. 빠듯한 예산에 조경장식을 할 여력이 없어서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행사장은 70명 규모가 앉을 수 있는 'ㅁ'자 테이블 가운데가 텅 빈 운동장처럼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예산이 없어 장식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뻥 뚫린 회의장 내부가 내내 마음에 걸려 뭐라도 갖다 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행사를 얼마 안 남겨두고 신라호텔 행사담당자인 연회판촉팀 지배인으로부터 밤늦게 전화가 왔다.
"블리야 대리님! 아~ 이러시면 곤란하죠~"
"제가.. 뭘 곤란하게 해 드렸을까요?"
"대리님~ 나 이거 내부 주문서 올리려면 며칠 밤새도 모자라요.."
"ㅋㅋㅋ 수도 없이 수정을해서 저는 500장을 다 외울 지경이에요. 지배인님께는 아~주 간략하게 축약해서 보내드린 겁니다~"
"하아.... 이렇게 하시죠!"
911 테러가 일어났던 날 했던 내 첫 번째 행사의 담당 지배인이다. 의미가 남달랐던 첫 번째 행사에서 만나 왠지 모를 끈끈한 파트너십이 있는 지배인이어서 가끔 죽는소리도 주고받곤 한다.
"내가 꽃장식을 해주면 어때요? 내가 대리님 얘기는 다 들어주잖아~ 꽃장식만 가운데 딱 들어가면 현장 그림 끝내주게 나올 것 같은데? 대리님도 기획단에 생색 좀 내시고 우리도 이참에 호텔 홍보사진 좀 바꿉시다!"
때마침 딜을 해 온다. 내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지배인은 마음이 급해진다.
"오케이! 지금 안 풀리는 게 뭐예요?뭐든 다 들어줄게. 어때요?"
오오~ 생각지 못한 와일드카드가 생겼다. 지배인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던 나는마지막 하이라이트회의장의 부족한 부분이었던 조경장식을 얻으며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딜을 받았다. 안 할 이유가 없다.
"음... 한번 살려드릴게요!"
"오...케~이! 능력 있는 총각 대기시켜 놓고 있을게요!"
조경장식에 대한 대가로 나는 내부 주문서로 쓸 수 있도록 운영매뉴얼에 있는 우리 회사 이름을 지운 PDF 파일을 전달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더불어 와일드카드까지 얻었다.
고대하던 APEC 행사를 목전에 앞두고 나와 직원들은 호텔 체크인을 했다. 2주간의 호텔 합숙이 시작됐다. 첫날 행사를 위해 여섯 개 연회장에 세팅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새벽이다. 고단하기도 하지만 설렘에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현장 지원을 위해 선발된 100명의 진행요원을 포함해 우리는 모두 국가적 행사에 참여한다는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하루 행사가 끝나면 그다음 날 행사를 위해 여섯 개 연회장을 모두 다시 세팅해야 했다. 신라호텔 본관과 영빈관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며 확인하는 일이 몸에 부대끼기는 했지만 그 피로감조차 즐거웠다.
행사 외에 볼거리도 많았던 APEC 행사였다. 며칠간 호텔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얼굴에 광채가 나다 못해 눈이 부신 김희선이 서 있고 구내식당을 가면 권상우가 옆에 앉아밥을 먹고 있다.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까지 등장했다. 자서전 홍보차 한국을 방문했고 신라호텔에서 투숙을 한 것이다. 공식 일정을 위해 양복을 차려입고 호텔을 나서던 빌 클린턴은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았고 현장을 목격한 직원들과 진행요원의 말을 타고 소식이 빠르게 전해졌다. 다음날 나는 짐에서 운동을 하고 나오던 체크무늬 반바지에빨간 양말을 한껏 끌어올려 신은 빌 클린턴을 면전에서 마주쳤다.한때 세계를 쥐락펴락한 권력자이자 세기의 스캔들주인공이었던 이가내 앞에 저런 모습으로 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2주간 우리는 마라톤과 같은 일정을 달렸다. 30개에 이르는 회원국과 국제기구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한 APEC 1차 고위관리회의는 모두 순조롭게 진행됐고, 어느새 마지막 회의만을 남겨놓고 있다. 테이블 위치를 잡고 난 후 본격적인 세팅이 시작됐다. 장비 설치가 마무리될 무렵 나는 객실에 올라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회의장에 내려왔다.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모든 게 정말 예쁘게 구현됐다. 호텔에서 준비해 준 조경장식도 기다랗게 적당한 사이즈로 회의장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APEC 정상회의 의장실 총괄업무를 맡고 있던 외교부 지역협력과장이 현장을 점검하러 나와 흡족한 표정을 짓고 한쪽에 자리하고 앉아 준비과정을 지켜본다.
테이블 비품이 빠진 건 없는지, 국기와 명패는 순서대로 잘 놓였는지 점검을 하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발언권 관리 시스템과 영상장비 리허설을 하던 나를 쭉 지켜본 외교부 과장이 한마디를 한다.
"내가 외교부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블리야 대리님처럼 프로페셔널한 분은 보기 힘듭니다. 정말 프로십니다."
반할 정도로 예쁘게 나온 현장 그림에 칭찬까지 들으니 그동안의 노고가 보상이라도 된 듯 가슴이 벅차 온다.
마지막 행사날이 되어 외교부 수장이자 APEC 정상회의 준비기획단 단장을 맡고 있던 반기문 장관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유의 재치와 흡입력 있는 영어 실력으로 회의의 오프닝을 알렸다. 2주간 이어진 회의의 대장정이 끝나고APEC 정상회의를 향한 1차 고위관리회의의 합의안이 그렇게 도출됐다.
사람은 본인 능력만큼의 아량을 갖고 있다. 종이 따귀를 날린 벤처협회 부회장은 곧 협회를 떠났다. 칭찬을 아끼지 않고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외교부 과장은 APEC 정상회의가 끝난 후 파리에 있는 OECD 대표부로 파견을 나갔다. 이후 박근혜 정부 초기 의전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사임 후에는 호주 대사를 역임했다.
APEC 1차 고위관리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준비기획단에서는 2차 회의도 우리가 맡아주길 바랐다. 당시 몇 년간 준비해 오던 세계신문협회총회를 얼마 안 남기고 있던 회사는 아쉽게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부산 정상회의의 용역대행을 주지 않았던 준비기획단은 이후 나에게 정상 오만찬행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전문가 섭외 형식으로 필요한 팀을 꾸릴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회사에도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는 기회였지만, 당시 12월 행사를 함께 하고 있던 클라이언트의 강력한 반발로 정상회의에 간절히 참여하고 싶어 했던 나의 꿈은 무산됐다. 하지만 APEC 정상회의의 기초를 잘 다져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반기문 장관으로부터 APEC 정상회의 개최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