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밤 11시가 넘어 친구에게서 빨리 밖으로 나가보라는 연락이 왔다. 콘도 베란다에 나온 사람들이 너도 나도 카메라를 들고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고 있다. 옐로 나이프와 같은 북극 지역을 가야 볼 수 있던 오로라가 밴쿠버 밤하늘에도 내렸다.
맑은 하늘에서 더 잘 관찰된다는 오로라. 친구 어머니는 평생 한번 보기 힘든 자연 현상에 소녀가 되셨다. 밤 12시에 오로라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버나비 마운틴으로 가신다고 한다.
오로라는 북극지역에서 관측이 되는 이유로 오로라 보레알리스 Aurora Borealis 라고 불린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와 북풍을 의미하는 보레아스를 합친 단어다. 사실 캐나다에서는 노던 라이츠 Northern Lights 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오로라는 태양 흑점의 폭발로 일어나는데, 태양 상층부 대기인 코로나에서 플라스마와 자기장이 폭발해 지구로 향하면서 일어난다. 태양 흑점의 자기장들이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이때 태양에서 방출된 충전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을 따라 이동하며 대기와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지자기 폭풍은 총 5단계로 분류되는데, 며칠간 이어진 이번 폭발은 가장 강력한 G5 등급이라고 한다. G5 등급의 지자기 폭풍이 지구를 강타한 것은 2003년 10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태양 흑점의 수는 11.2년을 주기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활동을 반복하고 주기마다 100여 회의 지자기 폭풍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번 지자기 폭풍으로 인한 피해 예방을 위해 BC 하이드로(BC주 전력공급기관)와 같은 캐나다의 주요 전력 회사들은 고전압 전송 시스템에 대한 비상 대응 체제를 가동했다. 며칠간 이어진 지자기 폭풍으로 고주파 통신 및 GPS 시스템 기능 저하와 전력망 불안정이 예고됐는데, 소셜네트워크 등 웹서비스에도 서비스 성능 저하가 있었다고 한다. X(구 트위터)의 위성들 역시 많은 압박을 받았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려했던 큰 피해는 없는 듯하다.
역사상 최대 지자기 폭풍으로 인한 피해는 1859년 8월 28일부터 9월 3일까지 이어진 캐링턴 이벤트 Carrington Event 라고 한다. 처음 지자기 폭풍을 관측한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캐링턴 Richard Carrington 의 이름을 딴 거다. 당시 상황을 스케치하던 캐링턴은 새하얀 불화염으로 인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200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였다고 알려진 캐링턴 이벤트로 밤하늘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 불빛으로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고, 록키 마운틴의 광부들이 새벽 1시에 해가 뜬 걸로 착각하고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베이컨과 달걀 요리를 하며 아침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당시 북미와 유럽 등지의 전신망이 두절되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1859년 캐링턴 이벤트
오로라와 캐나다 구스?
지금은 명품 패딩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 구스는 원래 오로라를 관측하기 위해 온 관광객들에게 대여되던 옷이었다. 옐로 나이프와 같이 오로라 관측지로 알려진 곳에 간다 하더라도 관측이 100% 보장되는 건 아니다. 밤새 오로라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방한용으로 지급되던 옷의 보안효과가 알려지며 오늘날 캐나다 구스의 명성을 얻게 됐다.
오로라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데 코로나를 잘 이겨낸 덕, 그리고 지금 힘든 경제 위기를 잘 견뎌내라고 모두에게 내려준 태양의 덕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