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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아빠 Dec 24. 2018

재주와 첫번째 교감

아이와의 관계의 발전 또한 계단형. 그리고 시간이 필요해

난 비교적 육아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맞벌이 부부로서, 재주가 아침에 등원할 수 있는 준비 - 깨워서 밥먹이고 옷준비까지 - 는 내가 맡고 있다. 그 이후 힘과 시간이 소요되는 등원은 장모님이 해주고 계신데, 요것도 이제 내 역할이 될 예정이다.


매일 아침 '육아'를 맡지만, 조금은 '업무'적인 측면도 있다. 잠들어 있으면 너무 늦지 않게 깨워야하고, 늦게 일어나면 늦는대로 아침식사를 서둘러야할 때도 있다. 최대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어와 몸짓('밥', '맘마', 상어가족 춤추게 하면서 밥먹기 등)으로 '목적적'인 아침을 보낸다.


연말이 다가오니 이래저래 저녁 약속이 많아졌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복직 후 회식 자리에 참석할 일이 잦아졌는데, 송년모임이다보니 둘 중 하나가 일정이 잡히면 남은 한 명은 자연스레 재주가 잠들때까지 전담마크를 하게되었다.


내가 당번인 어느날, 재주가 혼자 잘 놀고 있길래 너무 피곤하여 안경을 벗고 소파에 잠이 들었다. 10분 쯤 지났을까, 이 녀석이 내 아이폰을 나한테 집어던진 것이다. 다행히 나는 맞지 않았지만 내 손에 꼭쥐고 있던 안경이 깨질 뻔 했다. 그것은 '나랑 놀아라'는 직접적인 의사표현이었다. 그때부터 조금 경각심을 갖고 같이 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같이 똑같은 율동과 퍼즐로 시간을 보내다가, 쌩뚱맞게 날더러 들어서 안으라더니 안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구석에 있는 잡동사니 코너까지 끌고 가서 뭘 집으라고 지시를 하는데, 바로 면봉이었다. 가끔 엄마가 자기 귀를 면봉으로 살살 긁어주면 기분도 좋고 잠도 잘 들었었더랬다. 나보고 '귀를 좀 긁어달라'는 표현이었다.


내가 면봉을 집어들자 바닥에 있는 이불로 쪼르르 달려가 왼쪽 귀를 하늘로 향하여 철푸덕 누웠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살살 긁는 시늉을 하니 '흐흥' 하고 웃다가 오른쪽 귀를 내밀었다. 귀에 바람을 솔 불어주며 긁어주기를 한 5분 남짓 하고선, 이불에 앉은 김에 나도 그냥 누워버렸다.


바로 그 때! 재주는 내 손에 든 면봉을 뺏어서 내 귀를 파주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귀를 판 건 아니고, 귓바퀴 언저리를 긁어댔다. 생일초 불듯 진지한 표정으로 내 귀에 '호호' 바람을 연신 불어댔다. 나랑 재주 둘 뿐이었지만 우스워 죽을뻔 했다. 부자 간에 한 문장의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위한답시고 보낸 수 분의 시간이 감격스러웠다. 이것이 바로 교감!


올 12월은 재주의 만 19개월 차다. 이제서야 아들과 기억에 새겨지는 교감을 했다니, 그동안 무심했던걸까? 그렇다기보단, 그간 밥먹고 씻고 옷입으면서 보낸 시간이 쌓인 첫번째 결과일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이 녀석과 보내는 아침 그리고 저녁이 조금 달라졌다. 보이는 풍경은 그대로이겠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내 '업무적'인 태도일 것이다. 이제 '뭔가를 나누는 사이'로 격상된 만큼, 태도로부터 비롯된 말투, 단어, 요구하는 것들이 모두 변해가고 있다.


부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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