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76.24km, 오늘: 9.46km, 걸음 수: 12,960
표지사진 | 서울 용산구 이촌동 ‘돈지방건널목‘
“저희 동네도 한번 오세요!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에요.
키도 크고, 옷차림도 늘 단정한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서울 동네를 걷고 글을 쓰는 것을 보더니, 자기 사는 동네에도 한번 놀러 오라고 한다. 어디에 사시냐고 했더니 ‘동부 이촌동’이란다.
“어? 가깝네요?”
나름 잘 아는 동네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멈추었다.
사실 마포 집에서 가까운 용산구에 위치해 있지만, 막상 ‘이촌동’을 구석구석 탐방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거주하는 동네가 아니라면, 사실 옆 동네라도 아침 안개가 낀 듯 잘 모르는 구석이 많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모르게 쓰윽 한 번 둘러보고 올게요. 하하하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꼭 가보겠다고 말했다. 사실, 이촌은 나에게 포근한 기억을 안겨 주었던 동네 중 하나이다. 마치 소풍 바구니 안에 숨겨진 꽃처럼 부유하고 소박하다.
날이 좋은 가을이다. 가방에 휴대용 배터리만 두 개 정도 챙기고, 나는 오늘 서울 용산구 이촌동(二村洞)으로 걷는다. 바람도 좋고 덥지도 않다.
'이런 날 안 걸으면 언제 걸으라는 거야?'
스스로, 가족을 집에 두고 혼자 나선 나에게 변명을 건넨다. ‘히힛’ 하며 웃다가, 마음이 무거워졌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좋은 걸 어떡해~’ 하고 다시 스스로에게 나올 이유를 속닥댄다. 물론, 그전에 청소랑 빨래는 다 해놨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은, 꼭 주고받는 말 뿐만은 아니다.
이촌동은 '두 개의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지금도 이촌동은 벌판에 가까운 동부이촌동과, 산 쪽에 가까운 서부이촌동으로 나뉜다. 서부이촌동은 아무리 봐도 주변에 가까운 산이 없고, 그러나 동부이촌동은 이촌역을 빠져나오면 언덕 없이 평지로 가득하다. 그래서 '들녘 끝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들말'이라고 불리었다.
어느 무더운 날, 저녁 약속이 잡혀 들렀던 ‘동부이촌종합시장’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가벼운 식사를 하고, 술 한잔을 마시고 후텁지근하면서도 물먹은 가랑비가 자욱한 날이었다. 시장은 조용했고 희미한 가로등은 나이를 먹어 껌뻑껌뻑였다. 서로가 바글거리지 않으면서도 있을 건 다 있고, 또 그 안에서 풍요를 보았다.
'술에 취해 몽롱해서 좋았던 것은 아니고?'
그런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쨍 맑은 날이니, 그날의 짙은 감정을 증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흥동 집에서 나와 10분 남짓 마포역으로 걸어왔다. 길 건너 도화동을 가로질러 용산을 지나 이촌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도화동은 ‘복숭아꽃 피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내가 신혼을 시작한 동네이다.
마포역 5분 거리의 ‘마포쌍용황금아파트’는, 1997년 건설 공사 도중 금맥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건설사는 광산 개발을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아파트 공사를 밀고 나갔다. 금맥의 행운을 입주민에게 돌려주려 했다는 미담(美談)은, 아파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게 들린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나에게 많은 행운을 가져다준 옛집이다. 소중한 딸이 태어났고, 가족은 건강했으며, 집값이 조금이나마 올라 지금의 대흥 집으로 이사 올 수 있었다.
도화동 하늘이 좋다. 주일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근화빌딩’ 주차장의 차량 위로, 파란 도화지가 청명하다. 빼곡하지만, 주변으로 평온한 하루가 흘러간다.
원효로 2동을 지나 ‘용산전자상가’로 빠졌다. 1987년에 개업한 전자 상가 곳곳이 재건축 준비로 한창이다. 점포는 빠지고 건물의 옷은 낡았다. 돌이켜보면, 지난 40년 동안 용산전자상가는 내게도 추억의 메카였다. 조립 컴퓨터를 사고, 게임을 구입하고, 특히 디지털카메라를 사러 올 때면 그렇게 ‘용팔이’들이 들러붙었었다. 결국, 나는 그들의 타깃이 되었다.
상가 입구에 들어서면, 첫 번째 매장에서 미끼를 던진다.
“뭐 보러 오셨어요? 캐논 G2? 80에 드릴게요!”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당시 가장 핫한 제품의 가격을 그냥 던진다. 그런데, 마침 그것이 내가 눈여겨보던 물건이었다. 순간, 현혹이 일었다. 대부분의 구매자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알아보고 오는데, 그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을 듣고는 놀라는 거지. 하지만, 들어서서 첫 번째 매장이니 당연히 그냥 지나친다.
한참을 돌아도 첫 번째 매장에서 내게 던진 80만 원보다 더 낮은 가격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G2 디지털카메라의 최저가격이 100만 원을 넘었었는데 80만 원 이라니. 결국 한 바퀴를 뺑 돌고 나면 다시 첫 번째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게 바로 ‘미끼상품판매(Bait Price)이다.
그 집 용팔이가 나를 매장으로 데려가 앉힌다. 그러고는 다른 제품의 메뉴판을 슬쩍 던져준다. 용팔이가 옆에 있는 알바생에게 지시한다. “야! 김 군아! 창고에서 G2 좀 가져와봐. “ 김 군이 간 사이에, 용팔이가 다른 제품을 본격적으로 홍보한다. 이런… 내게는 G2 말고는 다른 제품에 대한 최저가 정보가 없다. 걸려들었다.
한참을 지나도 알바생 김 군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이, 나는 다른 제품에 대해 한참 설명을 듣는다. 매장 입장에서는 마진이 가장 많이 남는 제품일 테다. 이윽고 김 군이 도착한다. “사장님! G2 재고가 다 떨어진 것 같은데요?”
나는 결국 캐논 G2가 아닌 소니 ‘사이버샷’을 손에 들고 나왔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다. 당시는 눈물이었고, 지금은 웃픈 추억이다. 내게는 그런 전자상가였는데 이제 하나하나 이사를 가고 새 단장을 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다.
전자상가에서 구름다리를 타고 용산역으로 넘어가 밖으로 빠져나가면 신세계가 열린다. 용산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한 마천루가 펼쳐진다. 태양빛이 그대로 유리창에 반사되어,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플래티넘 건물이 내 눈을 마비시킨다.
‘아… 여기도 강남이 되려나’
용산역 앞은 과거 집창촌이 자리했던 곳이다. 규모는 청량리 588, 영등포 집창촌, 미아리 텍사스촌만큼 크진 않았지만, 낡은 먹거리촌과 성인들의 유흥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었다. 사실, 지나다니기가 겁날 정도로 용산역은 군인 아니면 건달 이미지가 강했다.
용산역 횡단보도를 지나 우선 서빙고동으로 빠졌다. 서빙고동은 이름에서 유추가 되듯 빙고(氷庫), 즉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재개발 구역이 일부 들어가 있고, 아직은 옛날 기와 건물도 남아있다.
일부러 큰길을 두고 골목으로 빠졌다. 한쪽은 ‘부영건설’에서 초고층 아파트를 건설 중이고, 그 옆으로 낡은 단층 주택이 줄지어 있다. 인적이 드물어 낮이 아니라면 오기가 힘들 정도다. 어느 노인 한 분이 한강 바람에 춤을 추듯, 바람개비를 만들어 집 담벼락에 설치를 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낭만이고 삶의 노래처럼 들렸다.
골목집마다 문들은 굳게 닫혀있고, 보도블록은 단정하다. 어느 집은 대문 앞에 잔뜩 고물을 가져다 문을 가렸다. 그에게도 숨기고 싶은 생활사가 있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공감을 한다. 최대한 조용히 골목을 탐방하고 이촌동으로 향한다.
용산에서 동부이촌동으로 갈 때, 이촌역 철도길을 질러가야 한다. 역사의 철도지기가 나와 깃발을 흔들면, 저 멀리서 천천히 열차가 지나간다. 도심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일상이, 이촌의 얼굴이다.
잠깐 멈추어 서서 기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본다. 어렸을 적 친할머님댁에 놀러 가면, 전주 실내다리 저 멀리로 화물열차가 시커먼 석탄을 흩뿌린 채 달려가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었다. 열차의 모습이 얼마나 꿈같았던지. 그것은 하나의 움직이는 동화였었고, 나의 동경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었다.
이촌역 3-1번 출구로 나와 ‘용강중학교’를 지나면, 이촌로 한켠에 1967년 설립된 재래시장, ‘동부이촌종합시장’이 나온다. 여느 재래시장과 비슷하지만 규모가 작고, 또 시장의 곳곳이 먹자골목으로 조성되어 있다.
나는 이촌역을 지나 동네 반 바퀴를 돈 후, 시장 안으로 슬렁슬렁 들어갔다. 분위기 있는 술집과, 맛집만 모아 놓은 식당들이 골목에 나란히 앉아 딴청을 핀다. 손님이 왔다고 손짓도 없고, 들어오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는 심정으로 심드렁하다.
시장 안은 굉장히 깔끔하고, 재래시장 고유의 떠들썩함은 없었다. 혼자서 열심히 박음질하시는 수선집, 또 한쪽에는 모녀가 기다랗고 좁은 식당 안에서 손 만두를 빚고 있다. 그냥 지나치려다 왠지 장인의 손길이 느껴져 들어가 본다. 정말 맛있는 만두가 끊임없이 빚어지고, 어느 가정에서 주문했는지 배달 기사도 바쁘다.
이촌시장은 평일 저녁에 오면 굉장히 임팩트 있는 분위기에서 식사나 술 한 잔을 할 수 있다. 조용하고 이야기가 가득한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신들의 목욕탕과 연회장’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전에 딱 한번 와봤지만, 그 느리고 몽롱한 밤의 가락을 잊지 못한다.
이촌동은 일제강점기 관료들이 거주하다가 6.25 전쟁 이후에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면서 현재의 고급 주택단지가 되었다. 마을은 정방형으로 각 아파트마다 자기 구역이 있고, 그 구역 사이로 골목들이 정갈하게 정비되어 있다.
걸으면서도 느꼈지만 아파트는 아주 낡거나 현대 건물이 섞여있었고, 주민들은 표정에서 여유가 넘쳤다. 강변북로 옆에 있으면서도 차량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이유가 한강 바람 소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휘휘 소리를 내며 몸을 스쳐가면서 동시에 차량의 소리를 노이즈 캔슬링으로 상쇄시켜서인지, 나는 이촌동이 이렇게 고즈넉할지 상상도 못 했다.
많은 아파트 중에는 맨션이라는 이름하에 5층짜리 낡은 아파트도 보인다. 정문에서 바라보면 마치 연세대 앞마당에서 정문을 가듯, 곧게 뻗어있는 도로와 가로수가 매우 인상적이다. 한강에 비췬 태양이 언덕을 거슬러 눈을 멀게 할 정도로 하늘은 밝고 노랗다.
이촌동 구석구석은 또 내가 걸었던 많은 동네와는 굉장히 달랐다. 이촌동 구조가 그렇지만, 이촌역과 한강 사이로 작은 두 개의 동네가 그들만의 평온하고 무탈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 안에는 학교도 많고 아파트도 많다. 많은 것들이 오래되었지만 고즈넉하고 실제로도 부촌에 가깝다. 낡은 아파트가 30억에 육박하거나 어떤 고층 아파트는 50억을 넘어가기도 하니, 이곳은 내가 어슬렁 거릴 수 있는 그런 장소는 아니다. 그래도 이촌의 주인인 양 최대한 걸음 속도를 늦추고, 수십 년간 이곳의 이야기를 담은 아스팔트를 꾹꾹 눌러 담아 걸었다.
시간은 오후를 넘어 초저녁이 되어간다. 햇살도 뉘엿뉘엿 서쪽으로 눕는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을 법도 한데, 강바람 기에 눌려 나올 생각을 못한다. 황금빛을 담은 이촌의 아파트 나무마다, 살랑살랑 대는 모습이 꼭 그때의 몽롱한 밤 같다.
- 제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