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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인생‘
너무 먼 곳으로만 돌아다닐 필요 있어요?
사실 그의 말에 동의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광교도 좋고, 구리나 부평까지 걸어가는 일도 좋지만,
정작 우리 동네마저도 구석구석 다녀본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새롭지 않아서였을까?
아무래도 늘 호기심이 먼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우선 서울부터, 가까운 곳부터라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북아현동은 가까우면서 낯선 동네다. 매일 출근길이 아현동이나 충정로를 지나쳐 가지만, 그 근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북아현동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아현동은 마포구, 북아현동은 서대문구에 속한다는 사실을, 같은 이름을 가졌어도 서로 다른 경계를 가진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어이쿠~ 이런!’
햇살 좋은 오늘, 왠지 그곳을 가봐야 할 것 같다.
북아현동은 조선 시대 한성부 반송방 아현계로 시작해 1914년 고양군 연희면 아현북리로 편입되었고, 1936년 경성부 북아현정으로 개칭된 뒤 1946년 ‘북아현동’이라는 현재 명칭을 얻었다. 1964년 대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아현동 북쪽과 신촌로 이북 지역이 추가되면서 영역이 확장되었다. 2005년 서울시 뉴타운 개발지로 선정되며 재개발이 시작되어, 현재 일부 구역은 입주를 마쳤고, 나머지 구역에서도 공동주택 건설이 진행 중이다.
마포 대흥역에서 이화여대입구역 방면으로 걸었다. 가는 길, ‘대흥로’에는 ‘숭문 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차량이 크게 없이 고즈넉한 길이다.
그 옆으로는 최근 재개발이 완료된 ’마포프레스티지 자이아파트‘가 있다. 지난달, 새로 부임하신 사장님이 사신다는 소문이 있다. 살짝 아파트 위를 쳐다보고는 혹시나 해서 머리를 숙이고 빠르게 걷는다.
‘크크~ 누가 본다고…’
또 혼자서 키득거리는 재미에 빠졌다. 200여 미터를 걸어 이화여대입구역에 도착하니, ‘서윤복쉼터‘가 나온다. 서윤복? 서윤복이 누구지? 평소라면 지나칠만한, 20여 평 남짓 작은 공원에 이름을 넣을 정도라면 내가 모르는 수십만 명의 위인 중 한 명이리라.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의 위대한 마라토너 중 한 분이란다. 일제강점기시대 ‘손기정’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현 시대의 ‘이봉주’ 선수 같은 인물이었을까? 왠지 영원한 2 인자 같은, 그러나 위대했던 인물. 슬쩍, 그의 기록물을 살펴보고 다시 일어섰다.
‘서윤복 쉼터’는 서울 마포구 이대역 5번 출구 앞에 위치한 공간으로,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마라토너 서윤복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 쉼터는 원래 ‘이대녹지 쉼터’로 불렸으나, 2024년 10월 12일에 ‘서윤복 쉼터’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호선 ‘이화여대입구역’에서 아현동으로 걸어 내려간다. 한때 이곳은 국내 최대의 ‘웨딩거리’로 불릴 만큼 웨딩숍이 많았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다수의 웨딩숍들이 강남으로 이전했고,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웨딩 문화가 변화하면서 예전 명성에는 못 미치는 거리가 된 것 같다. 그래도 간간히 운영 중인 웨딩숍과 진열되어 있는 드레스를 보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결혼식 예복을 어디서 맞출까?
웨딩거리?
결혼을 한지 벌써 20여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럼에도 결혼식 이전에 미리 맞춰본다고, 예복을 보러 다니던 기억이 어제 같다. 땀을 삐질삐질 흘려 이대 앞에서 다시 홍대까지 걸어갔었던 기억들. 드레스를 사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하루 빌려 입는 데에도 큰돈이 들었다.
그래도, 그 여름 참 좋았다.
웨딩거리의 잔상을 눈에 담은 채, 나는 뚜렷한 경로 없이 걸어 내려갔다. 50걸음쯤 되었을까? 왼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뻗은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당연히 외면했을 텐데. 나는 그곳으로 무턱대고 올랐다.
꽤 길기도 하다. 낑낑대며 한 계단씩 올라가니 그 끝에는 재개발을 마친 아파트들이 마천루처럼 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아파트를 따라 걷다가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그 앞은 대형 토지 공사로 막혀 있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터널로 이어지는 기찻길이 보인다. 경의중앙선이다.
막힌 곳을 어떡해서든 도로를 내려고 하나보다. 이 높은 곳에 아파트 단지를 짓고, 이사를 오신 분들은 여기 도로만 뚫려도 가치가 확 오를 것 만 같다.
언덕에 언덕을 더한 길의 중턱은, 그 낮은 고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바람과 공기를 데려온다. 후드득 바람이 지나가는 둔턱 사이로, ‘좋다 좋다’ 하며 걷는 나를 따라 콧노래를 한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오르고 내리고 힘들겠다 싶었는데, 서울의 좋은 공기는 혼자서 다 마시고 살고 있었다. 키득 거리며, 나는 이제 전면적인 재개발을 앞둔 북아현동의 오랜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북아현동 한성 중•고등학교를 지나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아현가구거리’ 뒤편으로 많은 주택들이 나온다. 이왕 온 김에 구석구석 보기로 한다. 내려온 길에 이어 평지다 싶었는데,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가을 햇볕이 아스팔트를 만나고 다시 나에게 와서 땀으로 흐른다. 가을이면서도 여름 같다.
숨이 턱에 찼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다가온 건, 이 골목을 수없이 오르내렸을 사람들의 고단함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들의 삶을 들이켰다.
오르는 길이 숨은 차지만 또 아주 높거나 길게 뻗은 거리는 아니었다. 동네 아주머님 한 분이 터벅터벅 올라오시는데, 힘겨워 보이지만 또 능숙해 보인다.
좁은 골목 사이로 양 옆에 오래된 빌라와 연립 주택들이 올망졸망하다. 그 보다 더 좁은 곳으로는 부서진 계단을 타고 낮은 집들이 가장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다른 길’이라고 휘갈겨 쓴 나무 표지판이 보였다. 감정이 실린 듯,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행인들이 호기심에 들어왔으면, 발길을 돌렸으면 그랬을까? 그 끝에는 저 아래 충정로가 훤히 보일 듯했다.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읊조리고는 얼른 가서 사진을 담았다.
골목을 타고 충정로로 내려오다, 다시 경기대학교 뒤 ‘충현동’ 방면으로 걸었다. 골목마다 오래된 한옥 문들이 운치가 있다. 또 어느 집은 그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미용실이 나온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북아현동의 시그니처 풍경이다.
동네마다 이어지는 수많은 전선들은 얽히고설키고, 결국 숨어있는 사람들도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동아줄 같다. 오르내리는 길이 끝도 없지만 여름이 아니라 다행이다. 헉헉대며 올랐을 수많은 동네 분들의 얼굴을 상상하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재개발이 끝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경계에는, 많은 집들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여기에는 사람이 없나?’ 싶어서 가 보면, 정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아무렴, 여기에도 없을까?’ 싶어서 더 살펴보면 또 거기에는 일부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재개발을 앞두고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이 공존을 한다. 그 가운데의 공기는 이미 오래된 유적 같았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가도, 더 좁은 골목이 나오면 애써 들어가 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언덕을 기어 올라간다.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는 골목 사이로, 무성한 풀뿐만 아니라 인기척에 놀란 새들이 후다닥 거린다.
시멘트가 다 떨어져 나간 계단도, 어느 오래된 누군가의 집들도 바람 소리에 놀라 먼지를 한 움큼 흘려보내 이방인을 막는다. 기어코 한 발짝 들어갔다가, 음침한 기운에 발을 뺐다. 주인 없는 감나무에 감은 오래되고 녹이 슬었다. 근처 까마귀마저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드디어, 북아현동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 갑자기 넓은 도로가 나오면서 ‘안산’ 끝자락으로 인도한다. 저 앞으로 ‘천연뜨란채 아파트‘가 보이고, 북아현동의 경계선을 긋고 있다. 서울 중심의 가장 높은 동네에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는 노인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북아현의 높은 바람은 좁디좁은 골목을 타고 백발(白髮)의 집들을 연결하고, 집집마다 이미 사라져 버린 화장실 환풍구를 힘차게 돌린다.
하늘비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녹슨 계단이 언제라도 부서질 듯 위태해 보이지만, 이방인이 뭘 알겠냐면서 그것은 이미 수십 년을 버티고 하늘을 연결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드디어 북아현동의 경계선을 넘었다. 그곳에 안산 자락길 입구가 있다. 넓고 단정한 흙길과 돌길이 서로 부딪히며 산책길을 만들고 있다.
고단한 삶이 아닌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로 산책을 한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나의 땀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으로 건강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돌길을 걷다가 맨발로 황톳길을 걸었다. 발바닥이 차갑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도 한참이 남았는데, 벌써 계절은 찬기운을 땅에 심고 있었다.
발바닥에 스며든 서늘함은, 북아현동의 오래된 시간들을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겨울의 싹을 틔운 늦가을을 담고, 북아현동을 떠나 독립문으로 내려갔다.
- 제8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