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121.46km, 오늘: 15.0km, 걸음 수: 22,796
표지사진 | 서울 성동구 마장동 ‘마장축산물시장’
역시, 고기는 마장동이지!
내가 좋아라 하는 꼰대 스타일 그이는, 을지로 회사 앞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고 나와서는 괜히 잘 먹은 고기 품질 타령이다. 사드렸으면 맛있게 드시기나 하시지, 고기가 푸석하다는 등 괜히 딴지다. 그러고는 마장동 한우에 침도 안 바르고 칭찬 일색이다. ‘아니, 삼겹살 먹고 한우하고 비교하는 게 맞나?’ ㅋㅋ.
뭔 소리라우? 고기는 경동시장 아냐?
나 또한 고기 품질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어 다른 주장을 했다. 그이와 고기 품질을 두고 각축전을 벌였다. 그이는, 고기는 무조건 마장동이란다.
“아니, 마장동을 몰라? 경동시장은 온갖 농수산품을 취급하는 재래시장일 뿐이고. 거기서 고기는 원 오브 뎀이잖아.”
그이는 고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괜히 면박이다. 역시 꼰대셔.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냥 ‘으이구~’ 하면서 웃었다. 하지만 마장동은 아주 유명한 곳이기는 하잖아? 사실 나도 가본 적은 거의 없어서 그렇지, 막연히 ‘그래, 고기는 마장동 아닐까?’ 하고, 더 이상 티키타카를 이어가지 않았다.
새 봄이 한 달여 쯤 남은 늙어가는 겨울이다. 나뭇가지도 비쩍 마르고, 나도 삐쩍(?) 말라서 오늘은 고기를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고기는 마장동이었지?’
크게 고민 없이, 걷기 목적지를 성동구 마장동으로 결정했다. 집에서 가기도 좋았다. 5호선 마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마장역에서 내리면 된다.
마장역까지는 13개 역을 지난다. 일단 마장동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하고, 마장동부터는 걸어서 샅샅이 훑어 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마장역에 도착했다. ‘어디서부터 걸어야 하나?’ 항상 생소한 동네에 오면 일단 방향부터 정하곤 한다. 되도록 바깥으로 돌면서 안쪽으로 파고들어야 구석구석 탐방하게 된다. 맵을 켜고 ‘마장동’을 입력하니 전체 구역이 굵게 표시가 되었다. 생각보다 마장동 면적이 작다.
마장동(馬場洞)의 역사
서울 성동구 마장동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던 곳으로, 지명은 그 유래에서 비롯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마장리가 되었고, 1936년에는 경성부 마장정, 1946년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으로 개칭되었다.
1958년 종로구 숭인동에 있던 가축시장이 마장동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은 축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1961년에는 서울시립 도축장이 세워지며 ‘서울의 푸줏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1974년 축산법 개정으로 개별 도축이 금지되면서 마장동 도축장은 폐쇄되었고, 해당 부지는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었다.
최근에는 무허가 먹자골목 철거와 함께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며, 마장동은 점차 주거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마장역 1번 출구로 나오니 ‘마장삼거리’가 나온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파랗다’. 몇 마리의 참새가 ‘구구구’하고, 그 앞의 비둘기가 ‘짹짹’ 한다. 너무나 단출하니, 왠지 딴지를 걸고 싶다.
‘축산의 도시인데, 암것도 없네?’
어디서 ‘소’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귀 기울여봤지만, 온통 자동차 소리뿐이다. 내가 상상한 마장동은 없었다. 딱! 내렸는데 풀밭에 ‘소’ 수십 마리가 풀 뜯어먹는 평야가 나타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키득 웃는다. 요즘 혼자 걷다가 사물을 보고, 상상하고, 키득거리는 게 취미가 됐다.
마장역에서 ‘마장축산물시장’까지는 가로질러 약 1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지도상으로 보면, 마장동은 오직 마장축산물시장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모양새다. 마장동은 크게 특색이 없는 거리다. 마치 인위적으로 반죽한 땅 위에, 아스팔트 도로가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느낌이 들었다.
이방인이 새롭지 않다는 듯, 무표정한 마장삼거리를 왼편 옆구리에 끼고 오른쪽으로 지나니 성당 하나가 나온다. 천주교 성당은 어느 동네마다 하나씩은 다 있다. 게다가 그 동네의 역사적 배경을 품고 있는 보물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어느 동네를 가도, 그 지역의 성당과 학교는 꼭 찾아보려고 애를 쓴다.
‘천주교 마장동 성당’은 1890년 고종 때 세워진, 우리나라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곳이다. 당시 이현석 요셉 신부께서 성당을 건립 중 선종하셨고, 현재의 마장동 성당은 1996년에 본당으로 승격하며 세워진 건축물이다. 낮은 지붕에 하얀색 건물로 조그맣고 아담한 크기이며, 출입구와 주차장은 협소한 편이다.
성당을 나와 왼쪽 기다란 담장을 따라 걷는다. 담벼락 뒤에는 아주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현재는 쓰이지 않는 ‘KT한전’ 부지이다. 붉은 벽돌과 흰색의 시멘트벽 위에 알록달록 그림들이 저마다 웃음이다. 초소인가 싶은 곳엔 오래된 덩굴이 겨울옷을 만들고 있다.
이전에는 이곳이 축산 도축장으로 쓰였던 곳으로 보였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풍경이 상상이 된다. 전국 각지에서 자신이 길렀던 소나 돼지들을 끌고 와서 사고팔거나 도축을 했었으리라. 지금은 마치 군부대 연병장처럼 휑하니 넓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어렵게 철벽이다.
그 맞은편에는 ‘마장중학교’가 있다. 그래? 어쩜 좋아. 마장중학교 엠블럼은 역시 ‘말’이었다. 맞아. 마장동은 ‘소’가 아닌 ‘말’이었지? ㅋㅋ. 이곳 학생들은 오래도록 마장동의 말을 사랑했고 자랑했으리라.
이제 저만치 ‘마장축산물시장’ 입구가 보인다.
생각을 못했다. 바글거릴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시장엔 문 연 곳과 손님들이 드물었다. 조용한 클래식을 틀어놔도 ‘음소(音素)’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하다. 어슬렁거리는 나에게 몇몇 매장 직원들이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마치 용산전자상가 같다. ‘이런… 문 연 곳도 얼마 없고. 식당은 또 보이지도 않네?’
시장 곳곳을 돈다. 매장 안의 신선한 한우도 좋지만, 밖에 내다 파는 선지와 곱창도 거의 야생이다. 비싼 곱창이 고무줄처럼 느렁느렁 쌓여있다. 그 위로 주름진 노인네의 손들이 이리저리 물을 쓸어내며 먹거리들을 정리한다. 오랜 세월 마장동에서 살아온 그들의 삶이 순간순간 오버랩된다.
더 깊은 시장 골목으로 들어간다. 시장 안에도 넓은 길이 있다면, 좁디좁은 시장 상인들만의 길도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졸졸 흘러나오는 물줄기들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게, 마치 도축장에서 새는 듯 상상이 된다. ‘절대 사람은 타지 말것, 죽어도 책임질 수 없다’는 개방된 엘리베이터는 마치 공포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기도 하다.
마장축산물시장은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또 한쪽은 돼지나 족발, 그리고 부속품을 팔기도 한다. 역시,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여기도 한산하기는 매한가지다. 두 번을 왔다 갔다 했더니, 처음 손짓하던 매장 주인도 이제는 시큰둥하다. 나도 짐짓 모른 채 하며 고기 한 점 사서 구워 먹으려던 마음을 접었다. 북적이는 어느 손님들 틈에 끼어 소량의 한우 한 점을 사려했는데, 지금 같아서는 내가 괜히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마지막 바퀴를 돌고 나오니, 하늘 전선 위에서 까마귀 떼가 ‘후드득’ 날아간다. 비릿한 축산물 냄새가 마을 전체를 휘감고, 저 새들은 이미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시장을 벗어나 근방에서 식당을 찾아봤지만, 구이를 파는 집 외에는 일반 식당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소고기국밥 한 그릇이라도 먹으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도 어려웠다.
시장뿐만 아니라 주변 200~300m 정도 지역 전체에 소 비린내가 퍼져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분들의 민원이 종종 제기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특히 한 주민이 올린 글을 보니, 학교 앞이나 아파트 근처에 입점한 가공 업체에서 소 뼈를 썰고, 돼지머리를 걸어두는 등의 작업이 이루어져 아이들 학업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쉽게 바뀌기는 어려워 보였다.
시장 근처를 둘러봐도 특색 있는 장소는 잘 보이지 않았다. 시장 뒤쪽으로 기찻길이 보인다. 왕십리역으로 이어지는 경의중앙선 철도이다. 그 기찻길옆 골목을 따라 지역 주민보다 더 심한 동네 양아치로 걸었다. 누가 보면 일하러 나온 직원 같기도 하다. 코 앞의 축산물 이동을 위해 고안된 특수차량이 생경하다.
마장동은 마장축산물시장과 역사를 함께한 곳으로, 지역의 삶을 쉬지도 않고 비릿하게 유지해 온 동네이다. 물론 많은 곳을 개발하고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도 들어왔지만, 이곳에서 수만 명의 고객과 함께 해온 시장 상인들의 삶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이제 시장을 벗어나 ‘고산자로’ 길 건너 마장동 서편으로 이동했다. 시장을 조금 벗어나서인지 비린내가 덜 했다. 큰 대로변의 집들은 아직도 1970년대이다. 내리막길에 서 있는 자전거 한대가 평온하다.
길을 따라 내려와 다시 밀집되어 있는 주택가로 들어간다. 저 앞으로 ‘동명초등학교’가 보이고, 운동장에는 젊은 무리가 축구 경기를 한다. 자세히 보니, 늙은 어른과 젊은 어른이 한데 뒤섞여 있다. 아침 해가 쨍하니, 그들의 움직임은 모두가 20대이다. 넉 놓고 보는데, 내가 다 에너지가 찬듯한 느낌이다.
길 위에 아직도 얼음기가 있어 조심조심 걸었다. 조금만 더 북쪽으로 내려가면 청계천이 나온다. 청계천을 따라 걸을까 하다가 다시 마을 구석구석으로 다녔다. 언제 다시 올까 하여, 마장동 골목을 제 발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언덕이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비스듬한 오르막이 오히려 재미를 준다. 저 앞에 노랑으로 가득한 담벼락 그림이 보인다. 미술학원에서 홍보용으로 그린 듯한데, 아기자기한 원장님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곳에서 학생들을 유치하려고 땀을 흘리는 모습이 상상이 간다. 어디에서든 ‘노동은 아름답다.’
고산자로 골목을 타고 마장동 서편의 좁은 길로 들어선다. 골목 하나하나가 어른 서너 명이 함께 걷기에도 벅차다. ‘다들 아침 드라마를 보시나?’ 나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혼자서 가장 넓게 좁은 길을 걷는다.
시멘트 길은 녹이 슬고, 그 사이의 검은 이끼가 땅색을 이룬다. 천천히 걷다가 또 남이 만든 쓸쓸한 벽을 쓰다듬는다.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그의 삶을 어루만지고 콧노래 한다.
골목골목으로 복잡함과 낡음의 흔적이 익숙하다. 보증금 500에 월세 40만 원. 옛날 생각이 난다. 나 또한 돈이 부족하여 가장 싼 동네를 찾아 봉천동 옥탑방으로 이사 간 적이 있었다. 낡았지만 행복했던 곳, 먼 미래의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닮은 듯 다른 마장동에서 내 청춘의 봉천동을 본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나의 꿈을 눈감고 뒤돌아본다. 사라락~ 바람이 골목을 타고, 나에게 담겨온다.
얼추 5킬로미터를 걸은 것 같다. 쉬지 않고 걸었더니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 고기는커녕 국밥 한 그릇도 못 먹었다. 사실, 밥을 먹으려 ‘마장먹자골목’ 입구까지 다시 걸어갔지만, 무심한 듯 파를 다듬는 주인을 보고 뒤돌아 나왔다. 그 주인장 뒤로, 2인 이상이라고 씌어 있는 메뉴판이 보였다.
날이 따듯하고 평일에 오면 더욱 복닥거리는 마장동의 진심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왠지 온몸에 한우 냄새가 베인 듯했다. 언젠가 그 꼰대 아저씨와 다시 올 그날을 그려 본다. 손님들이 바글거리는 시간대에 마장동 삶의 현장은 또 다른 마장동의 색깔로 내게 올 듯하다.
이제 마을버스를 타고, 나는 다시 행당으로 간다.
- 제10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