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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강남구 자곡동

누적: 144.56km, 오늘: 23.1km, 걸음 수: 35,423

by 마포걷달

표지사진 | 서울 강남구 자곡동 ‘고양이 어르신들’



팀장님 댁은 어느 동네세요?


나의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질문에 오늘 회의차 오신 재단 팀장님이 잠깐 멈칫하셨다. 이내 눈을 희번덕하며 의아한 듯 ”자곡동이요“ 말한다.


자곡동은 나의 유년기 대부분을 보낸 고향,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옆 동네이다. 어렸을 때에는 사실 자곡동은 잘 몰랐고, 수서동이나 세곡동을 더 많이 가 봤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린벨트로 오랫동안 묶여있어, 있는 듯 없는 듯 공기(空氣) 같은 동네였다.

자곡동: 자줏빛 자紫'자, 지곡동의 '골 곡谷'자



아! 그렇군요? 그럼 이번 제 걷기 코스를 자곡동으로 잡아 보겠습니다


내 말에 팀장님이 웃으신다. 그 동네, 볼거리가 없을 거라고. 사실, 나는 어떤 볼거리를 찾아 동네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저, 필이 꽂히는 동네가 있으면 그 동네를 걷고 싶어진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동네를 알게 되고, 정이 들고,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동네는 나만의 갤러리가 되어간다.


여지없이 오늘도 추웠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몸에 걸쳤다. 이제 주섬주섬 가방만 싸서 나가면 된다. 언제나 출발은 신속하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나는 정말 무한하게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집을 나서니 아파트 단지부터 휘잉 하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털모자를 귀 아래까지 뒤집어쓰고 음악을 켠다. 영화 ‘러브레터’의 OST가 머리 전체를 돌더니 가슴으로 내려온다. 나카야마 미호, 그녀가 그립다.




마포에서 자곡까지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수서역에서 내려 우선 ‘궁마을’로 향했다. 수서역 3번 출구로 나오니, 채 녹지 않은 눈이 얼어붙어 길이 미끄러웠다.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꽃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든 것이 조용하다. 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사각사각, 수걱수걱~


낮은 산과 몇 채 없는 집들이 서로 키재기를 하며 소리 없이 잔소리다. 높지 않은 궁마을 언덕 꼭대기에서 일원동을 바라본다. 저 멀리 신동아 아파트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정지된 그림 같다.


지근거리 동산에서 까치 한 마리가 우는데, 눈을 감고 있으니 후욱~ 하고 옛 추억들이 가슴을 타고 머리로 올라온다. 코 질질 꼬맹이 시절, 이곳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난다. 그때에도 모양만 다를 뿐, 한옥 집들은 언제나 드러누워 연기를 피워대고 있었다.


궁(宮) 마을의 유래
궁마을은 조선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의 후손들이 정착한 마을이다. 세 아들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아 ‘삼궁’이라 불렸고, 그 흔적으로 ‘궁마을’이라는 이름이 남았다. 대모산 자락의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왕손의 묘역과 옛 가마터가 남아, 도시 속 숨은 시간을 품고 있다.




사각사각 눈 덮인 인도를 걸어 내려갔다. 굳이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산에 가까워질수록, 소복이 쌓인 눈길이 마치 담요 같았다. 밟을수록 내 발을 끌어당겨, 눈 속에 숨어 있는 자기 얼굴을 기꺼이 마주한다.


궁마을을 지나 일원동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대모산으로 이어지는 길 초입에,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박물관 하나가 보였다. 뭐지? 분명 아파트와 연결된 듯했지만, 건물 자체는 외따로였다. 입구 푯말을 보니 ‘가마터’라고 쓰여 있다. 아파트 공사 중 조선시대 가마터가 발견되어, 이를 보존하려고 외벽 건물을 세워 감싼 듯했다. 하나하나 둘러본다.


이 겨울에도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몇 군데의 바닥은 낡았다. 그 발자국을 따라 나도 이리저리 걸었다. 조선시대 일꾼을 형상화한 마네킹 하나가 서 있는데, 아무 걱정 없이 저 가마에 불을 지펴 도자기를 만드는 일이 왠지 행복해 보였다.



일원동은 지하철역에 가까울수록 오래된 아파트가 많다. 산 쪽으로 갈수록,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단지들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산책하듯 걷기 좋게 설계되어 있었고, 산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산에 오르려던 참에, 마치 남의 집 앞마당을 지나치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주민처럼 행동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어색했다. 단지를 벗어나자, 대모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이 산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초등학교 시절 대모산 약수터에서 드럼통 두 개에 물을 길어, 2km 가까이 산길을 따라 일원동 옛 대청마을 집까지 날랐으니 말이다. 저녁이면, 부모님께서 내가 떠 온 약수물을 보며 뿌듯해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대모산을 오르니, 둘레길을 걷는 등산객들이 꽤나 보이기 시작했다. 둘셋 짝을 지어 걷는 그들은, 서로의 안부가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을 엿듣고 있자니, 훗날 내 모습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하나둘씩 사라지는 친구들을 보며, 그렇게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데. 그럴 때마다, 남은 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근심을 잊으려 애쓸지도 모르겠다.



사실, 수서역에서 자곡동은 아주 가깝다. 쉽게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대모산과 구룡산을 한참 돌아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대모산 정상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어디쯤이야? 점심이나 먹고 가지?


헛! 이 근처에 사시는 회사 상무님의 문자였다. 오늘 걷는 장소를 실시간으로 SNS에 올렸더니, 그걸 보시고 연락을 주신 거다. 바로 전화를 드렸다. 마침 대모산을 내려와 식사를 하고 자곡동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온 연락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대모산을 내려오는 길이 수월치 않았다. 오를 때와는 달리, 내리막길은 거의 스키장 수준이었다. 쭉쭉 미끄러지며 중심을 잡느라 애를 썼다. 거의 다 내려와서는 무심결에 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는데, 나갈 때 보니 정문마저 잠겨 있었다. ‘부잣집 동네라 그런가?’ 외부인의 출입을 막으려는 듯, 정문과 후문까지 꽁꽁 닫혀 있는 모습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다행히 멈춤 없이, 아파트 주민이 오가는 틈을 타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때만큼은 더없이 아파트 주민처럼 행동했다. 누가 봐도 나는, 이 아파트 10층에 사는 한량(閑良)의 모습이었다.




개포동에서 자곡동으로 가기 위해 구룡산을 비켜 가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산을 넘는 방법 외에는 염곡 IC까지 한참을 돌아야 했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길게 이어진 양재대로를 따라 걷는다. 이곳은 걷는 사람이 거의 없어 인도 위로 죽은 풀들이 무성했다. 쌓인 눈은 얼어붙은 채 남아 있었고,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다시 구룡산을 왼편에 두고, ‘헌릉로’를 따라 염곡으로 향했다.


염곡동은 구룡산이 감싸 안은 듯한 지형으로, 홍수가 와도 침수되지 않는다 하여 ‘동산마을’로 불렸다. 낮은 산자락 곳곳에는 오래된 양옥과 현대식 주택이 섞여 있다. 동네는 한적해, 돌아다니는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용달차 하나가 들어가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골목길은 길지 않은 채로 굽이치며 짧게 끝났다. 마치 보물 찾으러 가는 곳인 양, 신비롭다.



헌릉로를 따라 자곡동으로 가기 전에,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 민 씨의 능인 헌릉,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 김 씨의 능인 인릉이 있는 ‘헌인릉’을 들렀다. 아무 생각 없이 헌인릉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젊은 청년이 자동차를 몰고 나를 쫓아왔다.


선생님, 실례합니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데 신고가 들어와서요.


뭐지? 싶었다. 자세히 보니 헌인릉 옆에 바리케이드로 가득한 건물 하나가 있었다. 깊이 묻진 않았지만, 국가보안기구라는 것을 대충 눈치는 챘다.


아니, 저는 헌인릉 사진만 찍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며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니, ‘이상 없음’으로 보내준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국가기관을 헌인릉 옆에 훤히 보이게 지어 놓고는, 관광객 사진에 찍히는 것을 염려하다니. 이유야 모르겠지만, 왠지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헌인릉이 목적지는 아니었으므로, 대충 둘러본 뒤 자곡동으로 향했다.



내 기억에 세곡동이었는지 자곡동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한때 만화가 허영만 씨가 이곳에 살았던 걸로 안다. 지금도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아,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니 좋은 작품이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산세에 갇혀 묵묵히 세상을 바라보는 곳,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곳. 예술하기엔 딱 좋아 보였다.


한참을 돌아왔다. 구룡산과 대모산을 낮은 자락으로 담요를 덮어 씌운 듯, 그렇게 자곡로의 길로 들어섰다. 세곡천의 맑은 물과 그 옆으로 지어진 ‘세곡푸르지오’ 아파트가 평온하다. 길을 따라 다소 언덕진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세곡동과 자곡동은 강남의 도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숲으로 둘러싸인 외딴섬 같다. 차가운 바람도 매연 없이 시베리아다. 저 앞으로 단층의 ‘강남효성헤링턴코트’ 아파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낮은 산과 이어진 주택 발코니가 평화롭고 눈부셨다.


아… 나도 저기 살고 싶다.

불쑥, 부러움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런 마음이 쏙 들어온다. 바람마저 그림붓이 되어 마을 전체를 휩쓸며 작품을 만들어간다.



자곡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도로는 자연스럽게 세곡에서 자곡동으로 이어진다. 지나는 중에 만난 ‘해찬솔공원’의 고양이 한 마리가 앙증맞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빛이 ‘강북 놈이 강남에 왜 왔어?’ 한다. 한대 쥐어주려다 겁나서 가던 길을 그냥 간다. 녀석의 눈빛은 분명, 이 지역 깡패다.


이제 다시 내리막길이다. 저 앞으로 자곡동이 정물화처럼 펼쳐져 있다. ‘못골아래근린공원’이 한쪽으로 기다랗게 서 있고, 왼편으로는 가지각색의 주택들이 산 자락 아래로 줄 지어 있다. 마치 영화관 객석처럼, 산에 가까운 주택들이 계단에 앉아 아랫 세상을 구경한다.


동네 한 바퀴를 구석구석 돌았다. 주택 골목으로 해서 올라가면 막혀있고, 다시 내려와 한 칸 옆으로 가서 다시 올라가면 산에 막혀 있다. 그렇게 서너 번을 왔다 갔다 움직였더니, 겨울에도 여름땀이 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애나벨수국’이 뽐을 낸다. 저 녀석은 지난여름에 꽃을 피워 놓고선, 무엇이 아쉬웠는지 겨울잠도 못 들었다. 그렇게 흔들리는 꽃대가 담장을 어루만진다. ‘너마저도 아름답구나’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한다.


겨울이라 오후가 짧다. 도심이지만 외딴섬이라 자곡동의 해는 벌써 퇴근을 한다. ‘못골한옥어린이도서관’의 조명은 켜지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석양에 익어가는 붉은 석류 같다. 그 뒤로 청아한 하늘빛은 구름을 작품으로 만든다. 누가 뭐래도, 오늘 나는 자곡동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산자락, 주택, 공기, 워라밸이라고 퇴근하는 겨울햇빛마저 나에게 플러팅이다.




내가 만난 서울의 여러 동네 중에, 자곡동은 매우 작은 편에 속했다. 양쪽으로 낮은 동산이 감싸 안았고, 그 안에서 집과 공원이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하는 듯했다. 조용한 정물화를 닮은 자곡(紫谷)이다.


자곡동의 끝에서 율현동 방죽마을 고개가 이어졌다. 신도시로 개발이 끝난 자곡동과 아직 개발을 기다리는 율현동의 문화는 또 다르게 보였다. 낡은 주택들이 앞으로 좋아질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 강남이라 그런지, 저 낡음의 흔적이 절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밤고개로’를 옆에 끼고 수서역으로 향했다. 해는 벌써 보이지도 않는다. 그 녀석, 퇴근이라고 가는 길도 쏜살같다. 더운 땀이 금세 가셨다. 이제는 몸 안에서 얼음이 되어가는지 으슬으슬하다. 자곡동엘 다시 온다면, 여름에 만나고 싶다.


싱그러운 상상이 가득한 밤이다.


- 제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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