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46.44km, 오늘: 22.14km, 걸음 수: 31,437
표지사진 | 서울 종로구 평창동 ‘평창마을길’
팀장님!
지난주 등산 모임에 왜 안 나오셨어요?
늘 등산 모임에 빠짐이 없었던 P팀장께 물었더니, 지난번 등산 코스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참석을 안 했다고 한다.
산을 꽤나 싫어하는 나도 촐랑촐랑 쉬운 길이었으니, 파워 등산가인 그에게는 분명 재미없는 코스였을 것이다.
그에게 대뜸 말했다.
“그럼, 우리끼리 ‘파워워킹’ 한번 안 해보시겠어요?”
“네? ‘파워워킹’이요?”
“네. 주말 새벽에 나와서 빠르게 걷고 오전 안으로 귀가하는 거죠. 거리는 대략, 20km 이상?”
나의 제안에 그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오~ 엄청 힘들겠는데요? ㅎㅎ”
“네. 게다가 주말 오전에 다 끝내는 거라 가족들에게 민폐도 안 끼치고 좋죠. 혹시 팀장님 집 근처로 해서 북한산 둘레길 어떠세요?”
“와우~ 완전 좋죠!”
P팀장이 흔쾌히 승낙했다. 평소 나의 걷기 활동을 응원해 주었던 L차장도 합류했다. 그렇게 다음 코스는 동네 탐방이 아닌, 남자 셋이 ‘북한산 둘레길’을 파워 있게 걷기로 했다.
그날은 내가 먼저 제안했으므로 코스 일정도 내가 세웠다. 사실 나는 둘레길 걷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지난달 다녀온 ‘지리산 둘레길’에 완전히 질려있었다.
아름다운 길은 둘째 치고, 폭염에 걸었더니 고행(苦行)의 기억이 컸다. 장장 25km를, 그것도 체감온도 35도에 육박하는 가장 더운 날에, 가장 어려운 코스인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걸었다.
내 앞뒤로 트레킹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리산 둘레길을 폭염에 걷는다는 건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어쩜 길에 그늘이 이렇게나 없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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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연으로 이번 북한산 둘레길을 내가 기획은 했지만, 순전히 그를 위한 코스이기도 했다. 평범한 땅길보다는 오르락내리락 산길이 어느 정도 있어야 다닐 만하다는 그를 위한 트레킹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21개 코스를 하루에 모두 도는 건 무리였다. 오늘은 1코스부터 7코스까지만 걷기로 했다.
북한산 둘레길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지리산에 비하면, 가벼운 산책 수준이다. 날씨도 좋았다. 대부분의 구간이 나무 그늘이었다.
이전에도 북한산에 여러 번 와 봤다는 P팀장이 가이드를 맡았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도로를 걷다가, 땅길을 밟다가. 주택을 구경하다가, 또 산속을 걷는 일은 다채로웠다.
서울 외곽이기도 했고, 북한산 자락으로 내려오는 산 공기가 폐 속을 한 바퀴 돌아 묵은 찌꺼기를 쓸어냈다. 쉬운 평지는 아니었지만, 몸뚱아리가 씻기니 큰 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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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를 시작으로 난생처음 가본 우이령 계곡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2코스에서 만난 ‘4.19 혁명 기념탑’ 앞에서는 걸음이 자연스레 멈췄다.
숭고하게 솟은 기념탑들이,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의 요새 바랏두르 성처럼 위엄을 드러냈다.
와… 대단하네요!
4.19 기념탑을 처음 보기도 했지만,
저 위상이 엄청나네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숭고함과 위대함이 형태로 구현된 품위, 그 자체였다.
1980년의 5.18 광주민주화 운동도 잘 모르는데, 그 보다 더 오래된 1960년 4.19의 행적과 시대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만히 내려다보고, 내려다본다. 잠깐 눈을 감고, 그 시절의 아픔과 영광을 상상하려 애를 써 본다.
기억에 없는 장면이, 가슴을 쓰다듬는다.
가벼운 바람이 뺨을 더듬는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쉬지 않고 1코스부터 5코스, 14km를 걸었다. 그리고 오늘 가장 고대했던 6코스 ‘평창마을길’로 들어섰다. 평창마을길은 이름 그대로 북한산 아랫 자락에 위치한 평창동 마을을 걸어간다.
평창동은 조선시대 국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어 ‘평창리(平倉里)’라 불렸으며, 여기서 유래한 지명이다. ‘평창(平倉)’은 평평한 땅에 세워진 창고를 의미하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현재의 ‘평창동’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평창동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부촌이다. 북한산과 북악산 자락의 풍수지리적으로 ‘백호의 기운’이 모인다고 한다. 자연경관이 좋아 문화예술인들이 선호하는 동네이다. 걷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고요했다.
바람이 풍경이 되는 마을. 그곳을 걷다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작곡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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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 주택마다 마당이 넓으니, 나무나 꽃들을 많이 심어 놓았다. 인간의 손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높은 담벼락 너머에는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
나 같은 프롤레타리아는 절대 넘보지 말라는 듯, 그들의 세계를 바깥의 우리는 때로 동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걷는 내내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은 그들이고 이렇게 땡볕에 걷는 나도 행복한 인생이다.
5분쯤 걸으니 언덕에 ‘삼각산 연화정사(蓮華精舍) 불교 사찰이 나온다. 명상과 수행자들을 위해 문을 열어 놓았다. 발을 들인다. 북한산 아래로 서울이 가득이다. 아주 높은 곳에서 세상을 아우르는데, 그 덕에 나 또한 내 눈에 세상을 담아본다.
몇몇의 행자들이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본다. 그들에게도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행복인가 보다. 웃는 소리 없이 웃음이 가득하다. 바람이 휘리릭, 그들의 머리카락을 날리고 나는 그들이 서 있는 세상을 함께 본다. 눈 부신 가을이 더욱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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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의 집들은 각 주인의 취향을 담고 있었다. 모던하기도 하고, 고풍스럽기도 하며 때로는 기괴하다. 집을 지을 때, 얼마가 들지 보다는 어떻게 지을지를 더 고민한 듯했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니, 어린 시절의 평창동은 상상만으로도 이질감이 든다. 부잣집 자제가 아니고서야 근처에 학교도 드문 이곳에서 나고 자란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동네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들조차도 모를 것 같은 도로를, 이방인 남자 셋이 걷고 있다. 저 아래 끝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올 일이 없었다 보니, 오늘 나의 평창동은 구름 위 동네이다. 하늘 아래서 바라본 드넓은 평야에 가지각색의 집들이 저마다의 취향을 담고 평안하게 자라고 있다. 가을이라 집들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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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마을길 내내, 그늘 없는 길을 걸었다. 머리 위로는 뜨겁고 아스팔트길은 열을 뿜어 헐떡인다. 동네가 꼭대기라 길이 평행하지도 않다. 산길만 아니지, 여기도 내내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구경하고 아래 세상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좋았다.
평창동의 끝에 이르니, 서서히 인간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창동도 모두가 부촌은 아니고, 낡음과 역사가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주인 없는 빈집도 보이고, 담벼락도 부실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이 훨씬 더 감성을 자극한다. 스르륵 거리며 바람 소리를 등에 지고 평창동을 사진에 담는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동네를 지나왔다. 남자 셋은 수다도 없이 오직 걷기에만 집중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것은 비단 높은 하늘에만 있지 않았다. 다소 땀이 났지만, 집집마다 걸려 있는 감나무가 가을이라 말해 주었다.
평창동에 대한 기억은 20여 년 전, 회사에서 북한산에 간다고 모였던 ‘만남의 장소‘에 불과했었다. 시간이 흐른 후, 오늘 평창동은 잘 익은 감 같았다. 먹음직스럽지만, 내 손엔 닿지 않은 곳에서 풍요롭게 매달려 있는 그것.
내 생에 이런 동네에서 살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여력이 된다면, 나는 이곳에서 진짜 예술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창가에 앉아 저 아랫마을을 보며, 하늘을 본다. 조용한 음악을 켜고 커피 한잔을 하고 있으니, 시 한 편이 거실 바닥을 뚫고 돋아난다. 사르락— 북한산 공기 한 줌과 바람 한 점이 담을 타고 창가에 머문다.
그렇게 꿈을 꾸듯, 평창동을 내려왔다.
- 제5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