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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남구 신사동

누적: 16.1km / 오늘: 16.1km / 걸음 수: 21,135

by 마포걷달

표지사진 |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선배님! 꼭 결혼식장에 와 주실 거죠?


오랜만에 후배 녀석을 회사 앞에서 마주쳤다. 결혼을 한단다. 후배라지만 나와는 제법 나이차가 나는 녀석이다.


너무 오랜만의 대면이라 솔직히 결혼식 참석이 망설여졌다. 그보다도, 이 나이에 결혼식장이라니.

요즘은 오히려 장례식장에 갈 일이 훨씬 많은 나이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며 와 달라고 말해주니, 그 천진난만함에 고맙다고 해야 할까?



그럼! 가야지. 아무튼 결혼 축하해.


어디 보자…

결혼식 장소가 ‘더 리버사이드 호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꽤 유명했던 곳이다.

한남대교 남단에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뷰 덕에 인기가 많았다.


특히 지하에 있던 ‘물 나이트클럽’은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핫플레이스였다.



오래전에 회사 동료들과 ‘물 나이트클럽’에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애초에 춤도 숙맥이었고,

같이 갔던 팀장님이 금방 귀가하는 바람에 나도 놀다 말고 후다닥 따라 나왔다.


입구로 나오면서 마주쳤던 회사 여직원들의 부킹 현장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저희 동료들 있는데요?” 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따라가는 모습에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할까?


웨이터 손에 붙들려 나가던 장면은,

이제는 다 지워져 버린 우리 젊은 날의 자화상 그 자체다.

그립구나.



15년 만에 다시 찾은 ‘더 리버사이드 호텔’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어디를 봐도 눈길을 끄는 신식의 모양새는 없었다.

게다가 나이트클럽이 없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입구는 좁았고, 예식장인지 호텔인지 분간이 안 갔다.

지하로 해서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도착했을 때 허스키한 띵동 소리를 내는 엘리베이터는 정원 8명만 타도 만원이었고, 어느 복도는 층고가 낮아서 머리 위에 납작 엎드려 인사를 할 정도였다.


예식이 있는 홀로 올라가니,

저쪽에 서 있는 후배가 와 줘서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는다.

“축하해!”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한켠에 물러섰다.


나의 인사가 무색하게도

후배의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축하를 퍼붓는다.


괜스레 내가 다 쑥스러웠다.

모든 것은 ‘젊음‘이 주인공인 시간이다.


나는 도둑놈마냥 슬그머니 뒤로 빠져나와

예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직은 까마득한 딸아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게다가 오랜만에 참석한 예식이라 그런지,

그날이 벌써 다가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아내에게 그런 감정을 이야기했더니

자기는 딸아이 시집을 안 보내겠단다.


말도 안 된다고 했더니, 그 말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딸아이는 평소에도 자기는 시집을 안 갈 거라고 한다.

말도 안 된다고 했더니, 요즘은 말이 된다고 하면서 쿨하게 받아친다.


‘아뿔싸? 진짜 그런 현실이 오면 더 슬플 것 같은데?’


신부가 입장하는 모습을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나왔다.

언젠가 나도 딸아이 손을 잡고 입장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눈물이 울컥하다.


‘아이쿠, 안 되겠다. 그냥 나가야지.’




예식장을 나왔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길 건너 ‘신사동 가로수길’로 향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지나며 거리는 많이 한산해졌다.

여전히 젊은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상당수는 외국인들이다.


골목 하나 차이로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곳은 너무 한적하고, 어떤 곳은 북적인다.

어느새 신사동 가로수길은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산책로가 되어있었다.



90년대 이곳은 오렌지족의 성지였다.

오렌지족이라는 단어는 많은 이들이 알겠지만,

그 아류작 ‘낑깡족’은 들어봤을까?


오렌지도(부유층) 아닌 것이 압구정 로데오거리나 가로수길을 어슬렁거리면

친구들끼리 낑깡이라 놀려댔다.


낑깡은 일본어고 우리나라 말로는 ‘금귤’이다.


당시 아버지 자동차를 끌고 나와 “야! 타!” 하던 친구 녀석이 부러웠었던…

오늘 그 길을 걷는다.



건물마다 새롭게 재정비를 한다고

리모델링을 하거나, 페인트로 새 단장을 한 흔적들이 많다.


다시 예전의 가로수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곳으로 흘러 들어갔고,

젊은 인구층은 자꾸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옛 추억을 간직한 중년들이

여기 와서 놀만한 곳도 찾기 어렵다.



여기저기 골목을 걸어봐도, 한산하다.

건물 리뉴얼에 들어간 돈은 많고,

은행 대출을 끼었으니 이자 감당을 위해

임대료를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저렴한 식당이나 매장이 들어오기 힘들고,

손님은 점점 떨어지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비 온 뒤 맑게 갠 날이라, 오월은 한층 더 화창했다.

장미가 만개한 계절이자, 눈부시게 저린

베르테르의 슬픔의 계절.


신사동 거리 곳곳에서

몇몇의 연인들이 애정을 과시하는데,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부러웠다.

그 시절, 나의 사랑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니 아득하다.



어느 빌딩 가상이를 무심코 돌다가

가벼운 바람결에 숨이 멎었다.


그런 거 있지 않나?

문을 열고 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바람이 훅 스치며

옛 추억이 가슴을 저미는 일.


몇 번을 겪었어도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거기에 땅 내음까지 더해지면,

그 어린 시절의 풍경화가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달려든다.


‘아… 그립다, 그립다’ 하며

혼자 바닥을 보다가, 하늘을 보다가 웃는다.



신사동 골목길을 여기저기 걷다가

보세 옷과 모자를 파는 가게를 만났다.


밖에 전시된 모자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몇 번을 서성이다가 사진만 찍고 뒤돌아섰다.


머릿속에서 아내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집에 모자가 몇 개나 있는데, 또 사려고?“





신사동 건너 압구정동에 ‘현대고등학교’가 있다.

그 옆길을 따라 내려가면 한강 고수부지로 이어진다.


이전에도 몇 번을 오갔던 길이지만,

오늘은 처음 보는 ‘신사근린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참 좋다.

‘살기 좋은 동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옆으로 미성아파트가 보인다.

오래되었다. 가격은 어마어마하다.


낡음이 주는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아파트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사진을 남기고 한강공원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참 많다.

요즘 어디를 가도 그렇다.

명동도, 인사동도, 북촌마을도 바글바글하다.


코로나 시절의 보상심리는 이미 끝난 듯하고,

날씨가 좋으니 다들 자연스레 밖으로 나온다.


집에 있으면 괜히 귀찮아서 나가기 싫다가도,

막상 나오면 모든 게 밝고 기분이 좋아진다.



한남대교 남단을 지나

반포대교까지 걸었다.


최근, 한강 잠수교에서는

‘차 없는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일요일마다 양방향 도로를 통제하고

오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개방한다.


서울시에서 야외 테이블과 푹신한 의자를 마련해 둬

한강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푸드트럭도 많고,

무료 공연도 하고,

액세서리를 파는 작은 마켓도 열린다.



잠수교 위, 반포대교에서는

일정 시간마다 분수쇼가 열린다.


음악에 맞춰 분수 물줄기가 보랏빛으로 물든다.

초여름의 더위를 날려주는 기분이다.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

사진을 남기고 그렇게 잠수교를 건너

북단으로 넘어간다.


다시 한강을 따라 마포까지 걸어간다.



지난 2년 동안 여기 코스를 수도 없이 걸었다.

이제는 눈 감고도 반포대교를 지나

동작대교, 한강대교, 노들섬을 볼 수 있다.


눈 감고도 보인다는 건, 익숙함이다.

한강철교를 지나 원효대교까지 걸어가면,

건너편으로 해가 넘어가면서

63 빌딩을 금가루로 수놓는다.


황금빛이 찬란하다.

태양이 지는 시간,

이 빛은 어느 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후배의 결혼식 덕분에

꽤나 아름다운 일몰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기를 잘했다.

오기를 잘했다.


- 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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