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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로구 동숭동

누적: 24.3km, 오늘: 8.2km, 걸음 수: 12,337

by 마포걷달

표지사진 | 서울 종로구 동숭동 ‘낙산 가는 길’




낙산은 엄마의 자궁 같아요. 뭐랄까… 태초의 평안함 같은 곳?


그이는 ‘낙산’이라는 곳이 엄마의 자궁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따듯한 장소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따로 경험한 적은 없어서 그 느낌이 쉬이 오지는 않았다.


고요한 저녁에 뻐꾹새 소리가 울리면,

어느 마을이든

그곳이 가장 평안한 곳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가 어느새 잊고 세월은 꽤나 많이 흘러 버렸다.


십수 년이 지나고 나서야 또 다른 그이가

“낙산에 한 번 가보세요. 정말 서울 야경이 끝내줘요”라는 말에,

잊었던 태초의 평안함이 생각났다.


“아! 낙산이요? 저 거기 이름은 들어봐서 알아요. 그런데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어요. 기회가 되면 꼭 가보겠습니다.”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 말이 마치

오래전에 잊은 약속처럼 들렸다.

그렇게 낙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낙산은 종로구 혜화동과 동숭동에 걸쳐 있는 작은 야산(野山)이다.

낙산 성곽길이 유명한데, 성곽을 중심으로 한쪽은 동숭동, 다른 한쪽은 창신동으로 연결된다.


낙산 성곽을 오르는 길이 동대문(흥인지문)을 통해 수월하다는 말을 듣고, 늦은 오후 동대문으로 향했다.

여름 내내 계속되는 폭염으로 기온이 펄펄 끓었지만,

날씨는 맑고 하늘은 높다.

가을도 아닌 것이 가을 흉내를 내니 얄궂다.



낙산 성곽길이 시작되는 ‘흥인지문 공원’에 도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대문은 동대문이었지,

‘흥인지문’이라는 말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동대문이 인(仁)의 마음을 일으킨다 하여 흥인지문이라는데, 더더욱 ‘흥인문’도 아닌 ‘흥인지문’ 네 글자라

입안에서 모래알을 굴리는 기분이다.


흥인지문 공원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성곽길이 시작된다. 평소 지나칠 일이 없었던 이곳이, 생각보다 큰

도로에서 바로 이어져 있었다. 접근성이 좋고, 길도 가파르지 않다.


입구 주변으로 ‘수크령’이 갈대마냥 푸르럭 거린다.

파르르 떨리는 잎 사이로, 더위에 지친 듯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자기 물 한 모금만 달라는 걸,

나 먹을 물도 없다며 눈길을 돌렸다.


길 끝에 걸려 있는 창신동 교회탑이

하늘 안테나로 빛난다.



마른 성곽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걸어 내려오는 낯선 세 모자(母子)를 마주쳤다.


‘어쩜… 이렇게 더운데, 모자(帽子)도 안 쓰셨네요?’

가만히 보니 외국인이다.


‘한국에 놀러 오셨는데, 더워서 죄송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나의 혼잣말이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잘 놀다 가시라고 속으로 빌어 주었다.


그들 뒤의 아카시 나무가 한 폭의 그늘로

찰나의 더위를 가시는 풍경도 그림이 된다.


그렇게, 동숭동은 나에게 인상 깊은 첫 장을 열고 있었다.



길은 가파르지 않은데, 여름이라 땀이 줄줄 흘렀다.

올라가면서 성곽 구멍 너머 창신동을 본다고, 몇 번을 멈추었다.


차광막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듯,

성곽 구멍 너머 세상은 한 폭의 정물화다.


오르는 성곽길 왼편으로 카페가 하나둘씩 나왔다.

하나같이 예쁘다. 어쩜 이렇게도 정성스레 지었을까?


얼른 들어가 아이스커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지만 참았다.

왠지 저 뒤로 더 좋은 카페가 나올 것 같았다.



성곽길 초입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10여 분이면 오른다. 처음부터 높은 산이 아니라 언덕에 가까웠다.


성곽을 오른손으로 하릴없이 매만지며 걷다 보면,

그 끝 왼편으로 ‘이화벽화마을’이 나온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허름한 담장과 꽉 막힌 동네를 예술로 만들었다.

좁은 골목마다 식당과 카페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그들마다 개성 있게 뽐을 낸다.


‘역시. 더 예쁜 카페가 많았어.’


저녁 야경을 담기에 딱 좋은 위치다.

돌아오는 길에 들르면, 멋진 야경을 글로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낙산의 가장 낮은 하늘에서 본 서울 풍경은 내 팔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남산의 가장 높은 하늘에서 본 서울도 좋았지만,

낙산에서 가까이 마주한 서울은 더 섬세하고 깊었다.


이것이 엄마의 품인가?

싶었지만,

일단 더 걷기로 했다.



낙산 정상은 낙산공원으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왼편으로 내려가면 혜화동,

오른편 성곽 암문(暗門)을 지나면 창신동이다.


나는 성곽을 따라 한 바퀴를 돌 모양새로,

성곽 암문을 통해 오른편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이제는

내 왼쪽으론 성곽이 길을 만들고

오른쪽으론 창신동의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 반긴다.



성곽의 바깥에서 바라본 벽은 꽤나 높았다.

어지간하면 기어오르기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전투라도 벌어진다면

이 성곽은 적들을 막기에 충분했다.


이 벽을 쌓으려고 전국 각지에서 돌을 한양으로 보내왔다고 한다.

어떤 돌들은 어느 지역에서 보내어졌는지 표식도 되어 있다는데…

걸으면서 살펴보니 정말 그러하다.



낙산의 성곽길은 동숭동 끝에서 끊겨,

8차선 도로 건너편 혜화동으로 이어진다.

그 너머에 혜화문(惠化門)이 보이고

성곽은 다시 성북동을 지나 북악산으로 이어진다.


나는 다시 혜화동 성당을 지나

연극배우의 꿈, 혜화역 대학로로 향했다.




한때, 연극이 너무 좋아서 연극배우를 꿈꾼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회 행사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이 있었다.

나름 열연을 펼쳤고,

애드리브라는 것도 제법 능수능란하게 해냈던 것 같다.


100여 명이 넘는 교인들이 깔깔 웃으며 박수를 보내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희열이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혜화역, 대학로에 올 때마다 오래된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보듯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은 여전히 창의적이고 젊다.

하지만 이곳도 예전만은 못해 보였다.


일요일 저녁이어서인지

가게 문을 연 곳은 드물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적었다.


혜화동 골목이 차가워 보였다.

사람 흔적이 없어 쓸쓸해서 쌀쌀하다.

폭염마저 잠시 멈추었다.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을 거쳐 다시 낙산 공원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어둠이 짙게 깔리고,

공원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졌다.


이화벽화마을이 다시 가까워졌다.


이내 공원을 가로질러

아까 봐두었던 카페 하나를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서울 야경을 바라본다.


아… 지인이 이야기했던
엄마의 품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푸른 밤을 지나

주황 가로등이 저 지붕 너머의 서울을 비춘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 품에 안기듯,

가까운 서울의 야경은

낙산이 줄 수 있는 엄마의 자궁 속 기억이다.


평안하고, 평안하다.

이렇게 평안할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지친 몸이

한순간에 녹아져 내렸다.


낙산의 길을 걸어

낙산의 꿈속에 빠진 채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조용한 재즈 음악이

귓속을 간지럽힌다.


다시 두 모금을 들이켜고,

카페를 나왔다.


올라왔던 낙산 성곽길은

밤길이 되어 고요했다.


뻐꾹새 울음은 들리지 않았다.



- 제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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