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아빠

by 이림과

4. 나의 아빠


나의 아빠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었다. 두 형들과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늦둥이로 사랑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으나, 하필이면 6·25가 한창일 때 태어나는 바람에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 전사하셨고, 갓난쟁이를 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할머니는 돈깨나 있는 집의 후처로 들어가셨다. 어쩌면 그게 문제의 시발점이었을까? 세상엔 많은 좋은 사람이 있을 텐데, 아빠의 새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폭력을 일삼던 인간 말종이었다. 청소년이었던 두 형들은 당신들의 살 궁리를 찾아 집을 떠났고, 혼자 남은 아빠는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농기구를 탔다고 했던가. 남의 새끼한테 무슨 돈을 들이냐며 학교도 보내지 않았고, 꼭 동생들 새 옷을 사 와선 아빠 앞에서 보란 듯이 입혀 보였다고 했다. 그 새 옷들이 헐면 그제야 아빠 옷이 됐는데, 동생들 옷이었으니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었다. 천을 덧대어 입은 옷이 얼마나 서럽게 느껴졌는지 모른다고 했다. 결국 아빠는 폭력을 피해 15살이 되던 해 가출을 결심했다.

몇 날 며칠 산을 넘고 넘어 형들이 있는 곳으로 갔으나, 형들도 입에 풀칠하기가 바빠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느 방앗간에서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 이후의 기억들은 중구난방으로 전해진 데다 자세히 들은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이름 석 자만 간신히 쓸 수 있는 아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몸 쓰는 일들뿐이었다. 그러니 몸이 성할 리가 있나. 엄지는 짓이겨졌고 현재도 여전히 손톱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성실함 하나는 끝내주는 아빠는 매일 새벽 3, 4시에 일어나 온갖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조그만 집에 세 들어 살 정도가 되자 인간 말종인 새아빠 밑에서 살던 엄마를 모셔 왔다. 그 과정에서 이복동생과 떨어지게 되었지만, 둘을 모두 데리고 올 형편이 못 됐다. 이 일은 두고두고 아빠의 한으로 남았고, 딸들이 어느 정도 큰 다음에야 신문광고 통해 여동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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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빠만의 깊고 어두운 우물이었던 강원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곳에서 딸들을 키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경기도 외곽에 터를 잡았고,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목장도 차렸다. 여기서 고난이 끝이라면 좋았겠지만, 슬프게도 고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목장에 벼락이 쳤고, 집을 사기당했다. 역경은 아빠를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화분을 떼다 트럭에서 팔기도 하고, 일용근로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에 조그만 비닐하우스에 도소매 화원을 차릴 수 있었다. 이대로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그 후 화원에는 세 번 정도 불이 났었다. 어느 날은 도로를 달리던 차가 우리 가게 안으로 쳐들어온 적도 있었다. 이런 불운들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했고, 우리가 살 집을 지었고, 돈을 벌었다. 흔히들 하는 술,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도박은 아예 혐오하여 국민 게임이라는 화투조차 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언니들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고, 나 또한 부모님과 언니들 덕분에 윗세대보다는 조금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모순되게도 아빠가 가난과 폭력으로 벗어나려 터를 잡은 곳은 욕심 많은 막내딸에겐 또 다른 깊고 어두운 우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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