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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Apr 13. 2020

초등학교 마당에서 농부시장을!
스트라우드 그린 마켓

[마르쉐 영국연수기_11]

* 2019년 8월에 다녀온 영국 연수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 전편 [마르쉐 영국연수기_10]에서 소개한 GC마켓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담하고 오손도손한 시장을 둘러보고 있으니, GC 앞치마를 맨 운영팀이 보였다. 일행들이 운영팀 인터뷰를 시도하는 동안 나는 운영팀이 직접 차려둔 커피트럭과 포스터 등을 찍으려고 했는데, 운영팀 중 한명이 사진 촬영하려면 돈을 내란다. 심장이 쫄아든 내게 그는 농담이라며 웃는다. 곧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걸 눈치채고 말보다는 표정으로 “많이 놀랐구나, 미안해” 라며 옥수수를 하나 건넨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든 유쾌하게 장난치고 금세 친구가 될 것 같은 그를 보며, 이주민이 많다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된 GC의 활동이 더욱 궁금해졌다.  


GC마켓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먹거리를 만나고, 교회와 연결된 텃밭과 작은 공원도 둘러보며 시장에서의 오후를 즐겼다. 메릴본 파머스마켓에서 맛보았던 터키의 괴즐레메와 비슷한 음식을 판매하는 부스도 있었는데, 판매자분이 영어를 거의 못해서 음식의 이름도 모른 채 맛있게 먹었다.



잠깐 이야기하자면, 영국에서 지낸 며칠동안 생활 곳곳에 스며든 다양성을 만나는 건 기쁜 발견이었다. 우리가 간 파머스마켓을 비롯한 모든 음식점에는 비건 Vegan 메뉴들이 있거나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많은 화장실이 성중립 화장실 All Gender Toilet 이었으며 지하철에서는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성소수자 LGBTQ 관련 캠페인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대형서점에도 비건 코너가 따로 있고, 어느 곳에서나 다인종 사람들과 다국적 음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지인에게는 특별하지 않을 일상이 특별하게 보일 때에 이방인으로서는 그 문화 차이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런던의 식문화에도 이런 다양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다녀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리의 입맛을 다시게 한 것은 런던에서 맛본 태국, 중국, 인도, 터키 등 다양한 세계 음식이었다. 물론 우리는 잠깐 여행을 하는 동안 최대한 좋은 것들만 경험한 것이리라. 당연히 쓰라린 기억도 있는데, 그건 조금 더 마음을 다독인 후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양성 이야기를 하다보니 떠오른 기억 또 하나. 이동하며 작은 강줄기를 따라 걸은 적이 있는데, 강가에 정박해둔 보트들이 특이했다. 길죽한 보트마다 천장 위나 앞쪽의 빈 공간에 화분들이 빼곡하고, 온갖 세간이 엿보였다. 꾸준히 관리되고 있는 게 분명한 화분들은 초록이 무성하고 열매도 맺혀있었다. 강변을 걸을수록 그런 보트가 많아서 궁금했는데, 이후 검색해보니 런던의 물가와 집세가 너무 비싸서 보트에서 살기를 선택한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 정말 집이었구나! 그 나름의 속사정이야 많고도 어렵겠으나, 삶의 형태와 가능성은 정말 다양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때로는 그 다양성이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그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우리는 숙소 근처에서 열리는 파머스마켓을 향해 걸었다.   

파머스마켓 중 마지막으로 소개할 스트라우드 그린 마켓 Stroud Green Market 이다.

마켓의 이름은 마켓이 열리는 지역 및 초등학교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담한 초등학교 뒷마당에서 매주 일요일 10:00부터 14:30까지 열리는 이 시장은 2017년에 시작된 비교적 신생 시장으로, 한적한 여유와 가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미리, 이 시장을 시작한 에드먼드 Edmund May 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둔 터였다. 영국 연수를 준비할 때 친절하고 세심한 답장으로 도움을 주었던 그와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영국 느낌 좀 느껴보려 우산을 안 쓰고 코트 깃을 추켜올리던 일행도 슬금슬금 우산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던 차, 장신의 청년이 맨발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게 보였다. 에드먼드였다. 이 섬세한 청년은 마치 영화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아시 같은 말투를 구사했는데, 빗 속에서 시장을 여느라 바쁜 와중에도 우리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준 그와 반갑게 시장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드먼드는 다른 파머스마켓에 출점하다가 가까운 지역에도 이런 마켓이 생기면 좋겠다는 마음에 마켓을 시작했다고 한다. 파머스마켓을 사랑하는 그는, 런던에 파머스마켓은 많지만 이 지역의 이웃들도 걸어서 올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파머스마켓에 대한 지역의 수요도 충분히 있다고 봤다. 원래 농부들의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시장을 하고 싶었지만, 다양한 지역민이 와서 행복해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유연하게 출점팀을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마켓에 손님들이 오는 이유는 3가지이다. 첫째는 농부나 생산자를 직접 만나고 싶어서이고,  둘째는 마켓 음식의 품질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마켓은 엄격한 기준을 갖고 마켓 내 음식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워크숍, 야외 공연 등 놀러오기 좋은 마켓의 분위기 자체를 즐기러 온다고 한다.    



스트라우드 그린 마켓은 지역의 소규모 먹거리 생산자, 영국 농부들과 함께하는 시장이다. 지속가능성과 동물복지를 고려하여 생산된 농산물, 지역 소규모 생산자의 증류주나 홈메이드 요리, 로컬 식재료로 만든 요리와 음료 등을 생산자 혹은 생산자가 고용한 판매자가 직접 와서 판매하고 있다. 


바이오다이나믹 농장, 자연방목 육류, 일본식 발효식품, 영국산 유기농 밀·물·소금만으로 자연 발효한 사워도우 빵을 만드는 소규모 로컬 베이커리를 비롯하여 자전거 수리 부스와 제로웨이스트 수공예품까지 다양한 분야의 40여 팀이 매주 혹은 격주로 참가한다는데, 이날은 휴가철이라 그런지 작은 규모였다. 음악 공연, 가드닝과 자전거 수리 워크숍도 비정기적으로 함께 열어 건강한 먹거리와 문화가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우리는 신생 시장으로서 경험한 현재 런던의 시장 관련 법규들이 궁금했다. 한국에서 마르쉐 농부시장을 열어오며 넘사벽이기만 한 행정 법규를 마주한 후, 런던은 어떻게 풀어가는지 보고싶은 게 이번 연수를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에드먼드는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이곳에서도 신생 파머스마켓이 만들어질 때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 하나가 파머스마켓/식품법 관련 법규 문제라고 했다. 먼저 파머스마켓을 처음 만들 때, 영국 법에 따르면 다음의 다섯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 공간 사용 계획을 세워서 해당 지자체에 허가 받기. 

둘째, 화재 안전에 대한 허가 받기. 

셋째, 출점자들은 지역 당국에 식품 사업 관련 등록을 마치기. 

넷째, 먹거리 가공품은 식품 위생법에 따른 인증을 받기. 

다섯째, 판매되는 모든 음식에는 관련 정보 표기하기.  


위와 더불어 파머스마켓에 참여하려면 각 출점자들은 판매 관련 상해를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며, 요리사는 요리 시설이 지역 당국에 신고·등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등록 절차의 난이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에드먼드에 따르면 런던에서 파머스마켓에 적용되는 법이 기존 재래시장에 적용하던 법에서 차용한 것이 대부분이라 재래시장과 성격이 다른 지점에 대해 정확한 규정은 없고, 지역 당국 책임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등 법규가 운영 실정에 안 맞는 경우도 다수 있다고 한다. 

 


이후 우리가 좀 더 알아보니 영국의 경우 식품 관련 규제는 기본적으로 HACCP의 규정을 따르며, 영국 정부에서 먹거리 안전을 관할하는 독립 부서인 Food Standards Agency에서는 MyHACCP이라는 무료 웹 툴을 제공하여 50명 이하 규모의 소규모 생산자에게 안전한 생산 절차를 보다 간편하게 교육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HACCP의 복잡한 절차를 따르기 어려운 소규모 먹거리 생산자에게는 ‘Safer Food Better Business’ 패키지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생산자는 소규모 생산에 맞는 세척, 요리, 보존, 운반 등 생산 과정 전반의 위생을 점검해볼 수 있으며, 이를 충실히 따르면 지역 의회에서 승인하는 먹거리 위생 점수 Food Hygiene Rating 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생산자가 받은 0~5점 사이의 위생 점수 스티커는 영업장 내 손님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비치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이후 소개할 버로우마켓이나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또한 소규모 식품 생산자 및 가공업자에게 적합한 식품 안전 인증제도 SALSA – Safe and Local Supplier Approval는 영국의 소규모 사업체를 지원하고 비교적 저렴한 식품 안전 보장 인증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농부시장에 나오는 농부와 요리사 대부분이 소규모 생산자이다. 이런 작은 생산자들이 좀 더 수월하고 저렴하게 식품 안전 기준을 따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농부시장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스트라우드 그린 마켓을 둘러보다가 일본인 요리사들의 부스에서 쌀누룩과 콩을 기본재료로 만든 발효소스와 요리를 맛보았다. 정말 맛있어서 나중에 찾아보니 꽤 유명한 소규모 생산자였다. 마르쉐 역시 소농이 그때그때 거둔 싱싱한 제철 농산물을 다양한 요리로 맛보이고 싶어서, 부엌에서 꿈을 키워 작은 마켓에서 성장해나가는 소규모 요리사나 생산자들과 초반부터 함께 해왔다. 



처음부터 이 생산자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해온 시장이었지만, 마르쉐의 역사가 쌓이면서 오히려 현재 한국의 식품법규로는 담아낼 수 없는 작은 생산자들과 함께 하는 구조에 위험 부담이 커졌다. 그래서 더욱, 농부시장을 위한 법이 필요하다고 꾸준히 행정에 이야기해왔다. 


한국은 바뀔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사람들도 그만큼 농부시장이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우리는 낙관할 수만은 없음을 알고 있다.   



에드먼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비가 조금씩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시장에서 몸에 붙은 습관대로, 손님들이 쓸 테이블을 시장 마당에 펴는 작업을 척척 도왔다. 금방 끝났지만, 간만에 시장을 펼치는 작업을 함께 하니 몸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사이 비에 젖은 바닥 위로 햇살이 포근하게 덮이기 시작했다. 친절한 생산자들의 웃음과 유유자적한 손님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전해받으며 우리는 씩씩하게 마지막 파머스마켓 유람을 끝냈다. 


다음은 이제까지의 파머스마켓들과는 확연히 다른 런던의 대표 먹거리 시장, 버로우 마켓으로!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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