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암기 과목인가?
첫 시간에 아이들의 발표하고 싶은 마음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두면
두 번째 시간에는 ‘역사란?’에 대한 답을 집단 지성으로 완성해 본다.
내가 뱉은 답은 정답이든 오답이든 공공재가 된다는 마음으로 선생님이나 친구, 혹은 본인 자신에 의해 해체되어 재상산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자고 미리 일러둔다.
아이들이 던진 단어들은 칠판에서 헤쳐 모인다.
- 과거, 옛날, 예전에..
- 있었던 일, 일어난 일, 사건
- 중요한, 기억되어야 할, 후손에게 남길만한, 잊지 말아야 할
- 기록
이 정도의 답변이 중구난방으로 나오면 아이들의 동의 아래 같은 영역끼리 묶어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역사란? = 과거에 / 일어난 일 (중에) / 기억될만한 중요한 사건에 대한 / 기록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훌륭한 정리라서 우리는 충분히 뿌듯해도 되지만, 교사로서 욕심을 조금 내어 본다.
“너무 좋은데, 제일 중요한 게 빠졌어. 맞춰보자.“
아이들은 저 문장에서 더 덧붙일 게 있냐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호기심이 끝까지 차오른 시간! 아이들은 맞추고 싶다!
힌트 아닌 힌트를 준다. “너무 당연해서, 공기처럼 당연해서 못 맞출 수도 있어.”
“에이-”하는 김 빠지는 소리가 난다.
동시에 우리 반만의 ‘역사란’ 정의에 화룡점정을 자기가 찍고 싶은 학생들의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한 녀석이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자기보다 먼저 맞출 친구를 기대와 부러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급우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아이는 외쳤다.
“느낌표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교직 인생에서 한 번도 이 수업 때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답변에 순간 얼음.
아이는 마저 대답한다. “느낌표가 맨 뒤에 와야 해요. 과거에 일어난 기억될만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 이렇게요.”
사실 내가 준비한 대답은 ‘사람’이었다.
역사는 시간으로 무조건 ‘과거’고, 대상과 주체는 무조건 ‘인간’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특히 ’중요한‘ 사건, ’기록될 만한‘ 일이라는 건 ’역사가’ 입장이라는 것을 알면, 역사가 역사가의 환경과 관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해석의 학문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우리는 1년 동안 수업에서 ’작은 역사가’ 입장이 되어 역사적 상상력과 합리적 근거를 가져 보는 거고.
“역사 좋아해?” 맥락 없이 물으면 암기 과목이라 재미없다는 답이 나오곤 하는데, 개별 지식 암기가 쌓여야 괜찮은 해석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아예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적 인물과 현재의 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기반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써의 역사가 암기가 다일 수는 없다. 그래서 학습지 맨 위칸에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고 강조하는데, 그걸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가 맞춘 셈이다.
맞다. 느끼는 거지.
과거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래서 이랬구나! 다른 가능성을 시도해 봤다면 좋았을 텐데! 아, 안타깝다! 잔인해! 멋지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네! … 등등의
수많은 느낌표들이 숨어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가슴으로는 공감되거나 인정되는 영역이 인간사에, 우리 일상에 너무나 있다.
용감이 학생 덕분에 느낌표 품고 새 학기 수업을 시작한다.
칠판에 정의된 ‘역사란?‘에 느낌표가 붙으니 벌써 간결한 의미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숨결을 불어넣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의 우리가 대화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