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와 그리스 철학에서도 연애와 사랑을 찾아내는 15살에 관하여
도서관 why 책 중 가장 너덜너덜한 책이 <<사춘기와 성>>이라지?
나도 어린 시절, 책장에 꽂힌 세계문학전집 중 야한 장면이 묘사된 책을 엄마 아빠 안 계실 때 읽곤 했다. 부모님은 그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형광등도 안 켠 늦은 오후 작은방 책장 앞에 자리 잡고, 누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 책을 책장에 빛의 속도로 꽂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읽었다. 이미 읽어 다 아는 내용이지만 매번 따꼼따꼼한 기분이 들었다.
15살도 그렇다.
역사 수업 중에 아이들이 숨도 참고 듣는 주제들이 있다.
사마천이 궁형 당한 사연, 환관과 내시되는 다양한 과정, 춘향이가 이몽룡 만날 때 각서 받고 연애 시작한 이야기,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로 장난질 치다가 정작 자기 사랑에서는 고통 겪는 내용..의 수업에서는 교사가 부담스러울 정도의 초집중 상태를 보여준다. 썰을 풀다 잠깐 멈춰 뜸이라도 들일라치면 어그로 끄시면 안 된다며 난리가 난다.
사랑과 성.
물론 남녀노소 모두의 주제이겠으나, 아직 어른의 세계로 건너가기 직전의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흥미롭고 호기심 가득한 주제다. 그리고 요즘은 봄이지. 만물이 깨어나는 계절, 15살들의 마음이 일렁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사춘기들은 갑골문과 카스트제, 봉건제와 스파르타의 군사 통치, 함무라비 법전과 이집트 피라미드 등등으로 가득한 역사 수업 곳곳에서 숨어 있는 하트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이러니 내가 사춘기에게 감탄할 수밖에. 전두엽 스위치는 꺼졌어도 본능으로 찾아지는 행간의 사랑이 참으로 귀하다.
1) 선사시대 배움 일지 쓰면서..
중단원이 끝날 때마다 작성해 보는 역사 수업 배움 일지. 수업을 하다 궁금했던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적어보게 한다. 큰 기대 없이 마련한 활동이었는데 편견 가득한 나는 하지 못할 질문들이 가득해서 놀란다. 학생들 입장에서 소화되지 않은 수업의 개념, 사건, 의미가 무엇인지 그대로 드러난다.
그중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 수업 배움 일지에 적힌 궁금증들은 나마저 설레게 했으니.
구석기인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선사시대 사람들도 반려동물을 키웠을까?
언어가 있었다고 했는데, 존댓말 같은 것도 썼을까?
전염병이 돌 때 어떻게 했을까?
응급처치 방법에는 뭐가 있었을까?
벌레에 대한 생각이 우리랑 달랐을까?
...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데이트)했을까?
결혼식이 있었을까?
꺄아- 진짜 궁금해진다.
이 관점으로 보면 뗀석기도, 동굴 벽화도, 사냥도, 채집도, 불의 사용도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활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사랑이 동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2026년의 사춘기 덕분에 겨우 해본다. 실제 내 삶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서 과거 사람들의 삶을 살필 때는 뜨겁고 말랑거리는 이 감정을 쏙 빼고 건조하게 분석했다니. 근대 과학과 철학이 제국주의와 만나 제2차 세계대전까지 밀어붙인 인간의 이성과 진보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 아직도 갇혀 있나 보다. 이성은 감정과 본능을 설명해 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누군가의 가설을 되새기며 감정이 이성보다 하위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을 떨쳐낸다.
2) 고대 그리스 철학 수업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과거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보편적 질문들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편적'이 뭘 의미하는지 감 잡도록 안내하고, 마지막 5번 칸은 비워 각 학급마다 자기 반만의 보편적 질문을 선택하고 답하게 했다. 3반은 '죽음이란?', 5반은 '인생이란?' 질문을 골랐는데,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 마음이 말랑말랑으로 충만했던 6반이 선택한 질문은... '이상형은?'이었다.
처음엔 그건 보편적 질문이 아니잖아! 하며 아이들은 타박하였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상형이 사랑 상대로서의 이상형이든, 인생 선배로서의 롤모델이든 사랑과 존경의 추구미를 적어보는 것은 어렵지 않게 자기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는 요소였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강조했던 '너 자신을 알라' 영역에 찰떡처럼 부합했다.
15살의 사춘기 30명은 1~4번 질문보다 더 열정적이고 진심으로 5번 질문에 답하더라.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라는 답에서는 우리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질문하게 했고,
할아버지.라고 답한 친구 덕분에 이전 세대를 존경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눴고,
본받을 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답으로부터 관계에서 성장을 원하고 있다는 욕구를 찾아내었다.
티키타카가 잘 맞는 사람이라는 답에서는 소통이 우리 일상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학습지와 배움 일지를 정리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의 사는 나의 감정,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 을 정성껏 돌보는 것이 가치 있는 것임을 확인한다. 일상의 버거움에 종종 가치 없음으로 분류될 때가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놓아버리면 안 되는구나 생각한다. "당신은 그 무엇도 잘못하지 않았다."라는 메시지를 건네며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돌봄의 본질이라고 한다. 자기 돌봄은 '하는 것'이 아니고 '되는 것'이라고도 하고.(<<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 중) 사랑, 감정.. 말랑말랑해서 때로 부글거리는 것으로도 변모해 버리는 이 뜨겁고 정제되지 않은 것들도 진짜 나임을 인정하려 한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지 않다고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그러면 100년 후, 1000년 후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를 해석할 때 사랑을 기준으로 봐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