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동굴 벽화와 2-1반 시간표 그림의 공통점
선사 시대는 1%의 단서와 99%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영역이다. 물론 이때의 99% 상상력은 근거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상상력을 의미한다. 아득한 먼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하는 작업을 돕는 것은 '만약 나라면?'인데, 이 질문은 과거의 그들과 지금 나 사이의 간극을 확 줄여준다. '우린 같은 인간이니까'라는 전제에 의지해 과감하게 몇 만년을 훌쩍 뛰어넘어본다.
앗! 하지만 얼마 안 가 인간의 보편적 특성만으로 각 시대의 고유한 특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뗀석기 이름 맞추기부터 난항이다. '찍개'는 우리 눈에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짱돌'일 뿐이고, '긁개'와 '밀개'로 동물 가죽을 가공했다는데 경험해보지 않은 거라 감도 안 잡힌다. 상상력이라는 게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게 아니고, 시간이라는 게 그리 만만히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동굴 벽화를 마주하면 다시 희망이 생긴다. 아이들은 예측가능한 범위의 단서라는 듯 벽화 제작 의도는 기원, 교육, 종교적 의미, 낙서, 예술 등등 어렵지 않게 답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아래 아르헨티나 구석기 동굴 벽화를 보여주면 다시 절망! 짐작도 안 될뿐더러 확신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야말로 '만약 나라면?'을 쥐어짜 궁리해야 한다. 정답은 모른다. 그래서일까? 끝 간 데 없는 상상의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성인식, 다른 동굴로의 이동 직전의 의식, 영역 표시, 부족 구성원 수 체크, 장례 의식의 한 과정, 살려달라는 외침...
한참을 헤매다가 문득 아이들은 집단적으로 궁금해한다. 왜 인간은 빈 공간, 여백에 뭘 남기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특정 동물과 같은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손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 전체로서의 인간, 인류는 뒤로 하고, 개인인 '나'의 입장에서 나는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지, 남긴다면 무엇을 남길지, 또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등등을 스스로에게 질문할 차례.
마침 2학년 1반 칠판에 적힌 시간표 옆에 누군가가 해당 과목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놓았더라. 덕분에 우리는 시간을 뛰어넘는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을 직관적으로 확인한다. 어쩌면 구석기인들도 그냥, 막, 별생각 없이 시작했을 수도 있지 않겠어? 하며. 혹시 이 칠판 사진이 몇 만년 후에 발견되어 2026년의 2학년 교실을 재구성할 때 쓰인다면, 우리의 막, 그냥, 별생각 없음이 생각지도 못한 이유들로 포장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하면서.
이 부분을 수업하면 오해되는 과거가 얼마나 많을까 싶어진다. 단서가 적은 만큼 어쩔 수 없음의 영역도 커지는 시대라서 더더욱. 그럼에도 상상력을 한껏 키워보고 허무맹랑한 답들도 귀하게 모아보는 이유는, 역사는 결국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라서. 구석기인이나 2026년의 15살이나 여백에 끄적인 것처럼, 단서 없는 부분만큼의 여백을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의 궁금증으로 가득 채워보는 것이다. 앞으로 수업 시간에 만날 입체적이고 모순적인 존재가 모두 '인간' 카테고리 안에 있음을 이해하기 위한 풍성한 워밍업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