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배우는 시간에 현재에 존재하기를 배우기
즐겁고 안전한 수업을 지향한다.
29명이 즐거운데 1명이 괴로운 수업 별로,
28명이 낄낄대는데 2명이 급우 눈치 보며 할 말 못 하는 수업도 싫어라,
차라리 아무도 즐겁지 않고 낄낄대지 않는 밍숭맹숭한 수업을 하련다.
학교에 있는 시간 중 수업 시간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경험상, 수업이 잘 되는 학급은 교우 관계도 나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안전한 울타리를 학년 초에 잘 둘러놔야 지식을 바탕으로 학문적 대화를 하는 짜릿함까지 경험할 수 있다.
중학교 역사 수업에서 나의 직관적 목표는
작게는 학생들이 역사라는 학문이 흥미롭다!라는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이고,
크게는 역사 수업 때 배웠던 것들이 소개팅에 활용되는 것이다.
어려운 역사 용어가 나오면 학생들을 살살 꼬인다. "이거 나중에 소개팅에 써먹을 수 있어."
말도 안 된다며 미심쩍은 표정이 되는 학생들에게 증거를 댄다. 역사는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므로.
"누가 아냐? 잘 생기고 돈 많고 똑똑하고 성격 좋은 상대방이 역사 덕후일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리고 어? 선생님이 증거다. 선생님이 남편이랑 소개팅할 때, 남편이 그랬어. 선생님이랑 정치 이야기해서 신선하고 좋았대."하고 말해준다.
단어뿐이겠는가. 역사 수업에서 긴 흐름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가늠해 보는 조급하지 않은 태도, 섣불리 일반화하지 않는 습관,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는 신중함, 같은 인간으로 느껴지는 감정적 움직임... 을 가벼운 마음으로 잘 배우고 수용하여 삶에 쓰이면 정말 기쁘겠다.
그래서 첫 수업에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들어가기 전에, '역사 수업이란?'부터.
안전하고 즐거울 역사 수업에 해서는 안 되는 3대 악행 맞추기가 시작된다. '악행'이란 단어가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지 가만가만 자기들이 했던 나쁜 짓들을 떠올려보는 아이들. 떠들기, 화장실 가기, 돌아다니기!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온다. 때리기! 라며 무리수를 두는 녀석들도 있다.
'떠들기'를 먼저 정의해 본다. 수업 주제와 관련된 떠듦은 환영이라 말해두며, 용기 내어 발표한 친구의 오답은 우리 수업의 축복이 될 것이라 못 박는다. 우리는 친구의 오답을 주워 먹으며, 10개의 오답의 일부분을 합쳐 정답을 찾는 신기한 경험들을 하게 될 거라고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러니 부디, 친구의 오답에 낄낄 거리지 않기로 약속을 강요한다. 가벼운 비난도 안 되기로. 위축되지 않은 발표가 모여 함께 정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존중과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학생들은 '오답이 정답이 된다고?'와 '함께'에서 눈동자가 흔들린다. 사춘기는 좋은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시기다. 그 두 가지 가치가 좋은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적극적인 발표 덕분에 3대 악행은 곧 추려진다.
악행 1은 대놓고 잠자기다. 단, '졸기'와 구분할 것! 졸기와 잠자기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부터 고민하게 한다. 두 행위의 차이는 의지의 여부다. 잠자기는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어떤 것에 그 정도로 반감이 있다는 것은 그 학생에게 위험한 상황이다. 지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졸기는 집중을 너무 해도 졸 수 있으니 우리 서로 용서하고 깨워주기로 한다.
악행 2는 몰래 먹기다. 배고픈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하는데 입을 오물거리며 질겅거리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상 좀 예의 없기에. 그러니 다 같이 먹을 것을 가져오는 게 아닌 이상 다른 선생님이 상품으로 하사한 청포도사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혀에 잠깐 스쳤을 뿐이라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발견하는 순간 휴지에 싸서 버리고 오는 정성은 보이자고 단디 일러둔다. 아, 음료는 가능. 하지만 트림 때문에 탄산은 위험. 텀블러에 라면 국물 싸와도 되냐는 녀석이 있어 원샷만 가능하다고 주의를 주었다.
악행 3은 딴짓하기다. 구체적으로 학원 숙제하기. 아이들은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지 표정이 야릇하다. 나는 칠판에 딴짓하기를 분필로 적고는 별표를 치며 '3대 악행 중 최악' '최악 중 최악'이라고 강조한다. 조용한 딴짓은 악행 1, 2보다 수업에 끼치는 악영향은 덜 할 수 있으나, 학생 인생에 최악이다. 왜냐면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서. 안 그래도 미디어 경험이 맥스인 세상에서 진짜를 만나고 만져보기 어려운 시대인데 현재에 몰입하기도 어려우면 안 되지 않을까? 몸은 여기 와있는데 정신과 마음과 이성이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그것은 반복되며 습이 된다. 나중에 내가 나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다른 것을 보일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교실이라는 공간, 역사 수업이라는 시간 안에 나를 온전히 몰입시키자고, 그 몰입과 집중의 감각이야 말로 요즘 시대에 너무 귀한 진짜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예방주사 3방을 광광 맞으면 '역사란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답변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아이들이 생긴다.
그건 도파민의 영역 아니고, 안전함의 영역이다.
학문을 배우는 데 용기가 필요할 줄이야.
오답일 수 있음에도 발표할 용기, 내 오답을 친구의 정답의 밑거름으로 쓰게 할 용기, 나를 내려놓고 드러내는 용기, 비웃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보는 용기.. 그리고 교사인 나는 일관되게 울타리를 잘 단도리할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