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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Dec 24. 2022

모독 1

경창


 교사로 임용된 초기에는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였다.

 나이를 먹어가며 풋풋한 총각 선생님의 면모를 잃었고 촌지도 못 이기는 척, 슬쩍 받아 넣는 노회한 교사로 변했다.

 교직 생활은 하품 나오는 삶의 연속이었다.

 나는 부산의 신설된 A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반 아이 중에 유난히 빛이 나는 아이가 있다.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여학생치고도 조용한 축이었다.

 겉보기에는 반 아이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따돌림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나는 그해 3교시 수업이 없었다. 주로 답안지 채점을 하거나, 수업 준비를 했다. 그날따라 여유가 생겨서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조용한 분위기를 깨고 거칠게 문이 열렸다. 창백한 표정의 남학생이 들어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경창 선생님 빨리 와보세요!" 

 나는 약속이라도 한 사람처럼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남학생을 따라 쫓아가며 물었다.

 "누가 다쳤니?"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학생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으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2층 교무실을 시발점으로 뜀박질이 멈춘 곳은 고작 1층 중앙 현관이다. 그리고 학생의 손가락은 교사용 화장실을 향해있다.

 화장실에 누가 빠졌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데 나를 왜 불렀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수업 시간인데, 다들 어떻게 나왔는지 학생들 무리가 화장실 입구를 에워싸고 있다. 

 때는 1997년 7월이다.




종철


 비보이 댄스는 나의 전부다.

 사실 제대로 된 스핀 동작은 하지 못한다. 춤꾼인 척 까불기만 할 뿐이다.

 두 달 전 가출했을 때 우연한 기회로 아는 형이 소속된 댄스팀 연습실에 얹혀 지낸 적이 있다. 형들 입치다꺼리와(주로 라면이지만) 심부름을 하는 조건이었다.

 나는 온갖 아양을 떨어 스텝 동작 몇 개를 배웠다. 다른 건 너무 어려워서 배울 수가 없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져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학교도 출석해야 했다.

 학교 복귀 첫날 힙합 스타일로 머리를 바짝 깎고 큼직한 티셔츠를 교복 상의 안에 입고 갔다.

 춤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껌뻑 넘어갔다.

 "혹시 춤 좀 배울 수 있을까?"

 용석이 패거리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용석이 패거리는 소위 말하는 '일진'이다.

 싸움으로 서열을 매기는 시대는 지났다. 요즘은 힙합이 최고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다른 학교 친구를 만나면 나를 이 동네 최고의 명물로 내세운다. 도시 전설과 학교 전설은 항상 그런 식으로 탄생한다.

 사실 춤 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헐렁한 티셔츠와 힙합 바지 그리고 귀만 뚫으면 된다.

 근엄한 표정으로 까치 뛰듯 방정맞게 발을 구르고, 알고 있는 모든 스텝을 밟아 준다.

 더 보여줄 기술이 고갈되면 양손을 바닥에 대고 연결 동작으로 들어간다. 올림픽 체조 종목, 도마 경기에서 볼 수 있는 다리 회전 기술인 윈드밀이나 토마스다.

 쪽도 못 쓰고 실패한다. 그래도 괜찮다.

 구경꾼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깝게' 실패했다고 간주해 준다. 한 번도 성공하는 걸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경창


 나는 하루하루 술자리를 구걸하며 산다.

 오늘도 친구를 꼬드기는데 성공했다.

 단골집에서 돼지갈비에 소주를 걸치고 9시를 조금 넘겼을 때 친구 태식이 슬슬 일어나길 권했다.

 다른 친구들도 번갈아 맞장구를 쳤다. 나는 '에이 왜들 이러시냐'며 입가심으로 호프 한 잔 더 하자고 선동을 했다.

 친구들도 아쉬워했다. 다만 내일은 근무량이 많다, 요즘 마누라 등쌀에 안절부절못하고 산다는 등 핑계를 남발하며 선뜻 따라나서지 않았다.

 나는 의리 없게 이러기냐고 약간의 가스라이팅을 하며 결속을 시도했다. 친구들은 적의만 더 내보이며 해산하길 원했다.

 "그래, 이 치사한 놈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엄포를 놓고 돌아섰다. 아무도 붙잡지 않는다. 체면만 더욱 실추되는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다.

 혼자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두 번째 소주를 절반 정도 비웠다. 옆자리 손님에게 말을 걸고 싶다. 만취했다는 증거다. 그렇게 슬슬 인사불성이 될 무렵. 라디오 방송에서 5인조 힙합 그룹에 대한 논평이 흘러나왔다.

 패널들은 가수들이 가요계를 넘어 사회에 미친 영향을 찬양하듯 말했다.

 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는 발언이 들렸다.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남성이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정치권은 여야당 모두 도둑놈이다. 부모 잘 만난 오렌지족과 저런 근본 없는 놈들은 주둥이로 요상한 소리를 나불거리면 저절로 돈이 생긴다. 그 돈으로 외제차를 사서 여자나 꼬시러 다닌다고 말했다.

 "거기다 대낮부터 할 일 없는 아줌마들이 승용차를 끌고 나와서 도로는 막히지! 집에 가면 애는 울지!"

 혀가 꼬인 상태로 자신이 술을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몇 마디 거들어 주고 말자 싶어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한술 더 뜬다.

 "나라의 발전이 안 된다아입니꺼!"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취한 사람과 얘기를 나눌 기분은 아니었다.

 딱히 적의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딱 싫어하는 말투에(혀 꼬여 늘어지는 말투)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그가 허리를 곧게 펴더니 목소리를 달리하며 말했다.

 "이경창 선생님. 안주도 좀 잡수세요."

 순간 너무 당혹스러웠다. 포장마차에서 처음 본 취객이 내 이름 석 자를, 그것도 선생님이라는 직함까지 붙여서 언급한단 말인가.

 "저를 아세요?"

 횡설수설 불평을 늘어놓은 것은 연기였다. 남자는 내 반응에 선량함을 가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경창 선생님, 힘든 일 겪으셨지예? 다 압니더. 우리는 사회에 작은 힘이라도 될라꼬 이 일을 시작했습니더. 관심 있으면 연락하이소."

 내 술잔 옆으로 쪽지를 한 장 건넸다.

 나는 짐짓 경계심이 앞섰지만, 술김에 나온 용기인지 그 쪽지를 덥석 집어 자세히 보았다. 성의 없는 글씨체로 전화번호가 휘갈겨져 있다. 그리고 남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자리를 뜨고 없었다. 

 습기를 머금은 빈 잔과 술값 만 원이 남아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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