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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Dec 25. 2022

모독 2

경창


 이튿날인 일요일,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다.

 종이에 적힌 전화번호는 어떤 주소지를 남기고 일방적으로 끊었다.

 송정해수욕장 인근이다. 막상 소재지에 도착했더니 주소가 잘못된 것 같다. 괜히 헛고생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분하다. 이만 집으로 갈려던 참이었다.

 길 건너편에 공중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뭔가 수상하다.

 나는 경계한 채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 나온 목소리는 대뜸 내 이름을 댔다.

 "이경창 선생님?"

 남자의 말투는 의외로 온화하다. 나는 최대한 박력 있게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저 앞에 은색 봉고차로 가라며 지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건 또 뭐야' 분통이 터질 것 같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더 할 것도 있겠나 싶어 봉고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 위에 '사주 궁합 운세' 광고판이 올라가 있다.

 지하철역 앞에서 노인들이 돗자리 깔고 앉아 점을 봐주는 광경은 흔했다. 한 번도 점을 본 적이 없지만, 노인들은 실력도 형편없을 것 같았다. 오죽하면 돗자리 신세겠냔 말이다.

 송정해수욕장 인근에는 포터를 개조해 분식을 파는 노점이 빼곡했다.

 그 틈에서 봉고차는 점을 봐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차에서 몸집이 작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남성이 내렸다. 한 서른쯤 돼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경창 선생님, 이쪽으로 타시죠."

 굵고 힘 있는 목소리다. 전화상의 남자와 다른 사람이다.

 "글쎄요, 도대체 뭐 하시는 분들인데 제 이름을 알고 여기저기로 불러내는 거요?"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겁니다. 나쁜 의도는 없어요. 시간을 길게 뺏지 않겠습니다."

 남자는 한층 더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고개를 기울여 차 안을 확인했다. 좌석을 뜯어내고 테이블을 설치해 응접실처럼 되어 있다.

 무슨 용건일까? 생각하며 차에 탑승했다.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도어를 닫으며 탑승했다.


 은색 봉고는 걸쭉한 디젤 소음을 내뿜으며 출발했다.




미선


 '천벌을 받을 것이야, 천벌을 받을 것이야.'


 아득하게 들리는 저 소리는 잠꼬대였나? 꿈속에서 들은 말인가?

 젠장, 모르겠다.

 더는 그 이상한 말을 떠올리기 싫어 클론의 노래를 생각하기로 했다.

 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여기저기가 쑤시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추워서 온몸이 떨린다.

 입안에 꼬릿한 소주 향이 맴돈다. 구역질이 올라온다. 이상하게 아래가 시큰거린다.

 사타구니가 허전해 더듬었다.

 '이런, 속옷이 어디 갔지?'

 상의는 가슴까지 들춰져 있고 브라 후크가 풀린 채 양쪽 겨드랑이에 걸려 있다.

 내가 왜 이런 꼴로 있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간신히 일으켜 근처에서 속옷 주웠다. 흙먼지를 아무리 털어도 제 색상을 찾지 못한다. 할 수 없이 허리를 숙여 황급히 치마 속으로 감추어 올렸다. 저기 널브러진 스타킹은 걸레짝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이 흙투성이다.

 오, 하느님.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한숨이 절로 나온다. 토 냄새를 피해서 밖으로 나왔다.

 세상은 눈부시게 밝아 있다.

 그리고 뭔가 수치심이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고마워, 미선아. 이따가 거기서 만나자."

 종철 선배가 다정다감하게 말했다. 곁에 있는 힙합 보이 두 명도 눈웃음을 보인다.

 하루 전의 일이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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