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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Nov 11. 2022

아머 킹 8

종결

 "나? 집이지. 소리가 잘 안 들려?"

 "안 들리는 건 아닌데, 목소리가 울리네. 동굴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방에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그런가벼. 으히히히…."

 끝도 없이 괴상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그리고 종훈이라는 친구네 마트에서 일한다고 했었다. 그곳은 아마 집에서는 거리가 있는 지역인 것 같다. 자취방을 얻어서 지내는 것. 전화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대현은 지금 외롭다.

 "간혹 가다가 또 전화할게."

 "어, 그래. 잘 지내고 또 연락하자."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간혹 가다가 또 전화할게'라는 잘 쓰지도 않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홀연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현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커플 사진으로 변경되었다. 곁에 있는 얼굴은 나이가 좀 있는 여성 같았다.

 재호가 전해준 대현의 근황 중에는 연상의 유부녀와 관계를 가지고 이혼녀와 교제를 한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여학생과 짧은 교제가 잦았다. 그렇지만 성관계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대학에 가서 비로소 성관계까지 이어지는 만남을 시작했다. 듣고 있노라면 낮이 달아오를 정도로 문란한 생활을 했더랬다. 낙태도 셀 수 없이 했다. 한 번은 동기 여학생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며 여학생의 집을 방문했다. 부친이 격분하여 대현을 집에서 내쫓았다.

 그날 여학생과 가출을 감행했다. 서로 연고가 없는 도시로 야반도주했다. 무일푼이었던 그들은 허름한 모텔에 사정을 설명했다. '당장 가진 돈은 없지만, 방을 내주신다면 내일 당장 노가다라도 해서 지불하겠나이다.'

 달리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었던 모텔 사장은 둘 중 한 명은 방에 머무는 조건을 걸고 방을 내주었단다. 그러길 석 달을 반복했다. 학교는 자연히 제적처리되었다. 때는 1학년 2학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다 그렇듯 그 여자도 곧 임신을 했고, 얼마 못 가 유산을 했다. 의사의 주장에 따르면 잦은 유산이나 낙태로 인해 수정란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통곡했고, 고등학교 때 낙태를 몇 차례 했었노라고 고백했다고 했다.

 매사에 쿨할 것 같은 대현은 막상 그런 상황에서는 옹졸하게 굴었다. 여자 때문에 자신의 아이가 생명을 잃었다고 원망했다고 했다.

 대현이 윤리를 따지기는 좀 애매하다고 생각했지만, 뭐. 그것도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일은 오래전 재호에게 들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문제로 졸지에 학업도 그만두게 되었고, 이 경우에는 '그만두었다' 정도로는 자칫 그 심각성을 과소평가될 수 있으니,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해 '짤렸다'라고 표현하는 게 알맞을 것 같다.


 얼마 후 재호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늘 그랬듯 재호는 대현의 소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새끼 결국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에는 문제가 좀 심각해."

 "무슨 일인데? 얼마 전에 대현이 전화했었어."

 "아, 그래? 뭐래?"

 "정신병원에 있었다더라. 조현병이 좀 있었다더라고."

 "그래, 그 새끼 그럴 줄 알았다. 이번에는 좀 길게 있을 거야. 치료 감호소로 갔다더라."

 "뭐야?"

 "너 째철수 기억하지?"

 "어릴 때 그 째철수?"

 "그래 걔네 집에 복면 쓰고 찾아가서 '묻지 마 폭행'을 했다더라. 미친놈이 따로 없지."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째철수가 왜 나와?"

 "그러게 뭐 경찰에서 횡설수설하면서 어릴 때 어쩌고 하면서 복수라고 중얼거렸데. 너는 뭐 아는 거 없냐?"

 "나야 모르지. 근데 째철수는 무사하데?"

 "야, 임마. 째철수가 우리가 어릴 때 알던 그 째철수가 아니더라. 만호가 같은 고등학교 진학해서 잘 아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일진이 되어서 애가 싹 바뀌었데. 성격도 좋아서 친구도 잘 사귀고. 킥복싱도 배워서 싸움도 잘한데. 그리고 걔 원래 덩치는 컸잖아. 그러니 대현이 된통 두들겨 맞고 경찰에 잡혀갔지."

 "지가 맞았데?"

 "어, 근데. 김철수는 왜 째철수냐?"

 "학교 다닐 때 우유 급식하잖아? 철수가 매일 초코맛 제티를 챙겨 왔걸랑. 괴롭힌다고 대현이만 쏙 빼고 안 주니까 쩨쩨하게 군다고 째철수라고 놀린 게 시발점이야. 근데 걔가 뚱뚱하니까 다들 짜장면을 많이 먹어서 짜철수에서 변형된 걸로 아는 사람도 있고. 뭐 둘 다 일 수도 있어. 어째 둘 다 좀 굴욕적이네."

 "그렇네. 크크크…."


 재호의 전화를 끊고 소셜미디어 앱을 열었다. 만호의 페이지로 들어가 팔로워를 열람했다. 그리고 째철수를 찾았다. 그의 이름을 슬쩍 눌렀다. 가장 마지막 피드는 자신의 집 현관 사진이었다.

 그 현관 앞 복도에는 복면이 떨어져 있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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