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과 내가 관계가 틀어지던 날처럼 명확한 상황 정립 없이 자연스럽게 모친이 승계하는 것으로 판단 지었다. 누구 하나 명확하게 협의한 것은 없었다. 서로 그렇게 물 흘러가듯 각자의 일을 했다.
허나, 가게 일을 오랫동안 지속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모친은 점포 계약 기간이 끝나자, 대현의 의사를 물어 가게를 폐업시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당 초 가게를 시작했을 때, 천오백만 원이 있을 리 없었던 대현은 다시 제2금융권의 문을 두드렸다. 기존에 오토바이 구입대금으로 대출받은 6백만 원도 이미 연체 중이었지만, 2금융권은 관대했다.
임대계약서와 사업계획이 명확했기 때문에 은행도 손해될 게 없었다. 임대계약만료 시 건물주가 임대계약금 천오백만 원을 직접 은행에 상환하는 조건으로 천오백만 원을 전액 대출 해주었다. 기존의 연체 이력 덕택에 금리는 더 무겁게 책정되었다.
어쨌든 임대 계약금은 대현이 꾸준히 월세를 미뤄왔기 때문에 계약금에서 차감되어 계약금이라는 명분에 부합하게 사용되었다. 따라서 받은 돈은 십 원 한 장 없었고, 은행에 갚을 돈만 원금 천오백만 원에 밀린 이자까지 두둑하게 남게 되었다.
대현은 자신의 자취방에 수없이 날아드는 '체납고지서'를 일거에 무시했다. 자신은 그 돈을 갚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훗날 주장하는 바였다.
자신은 모친께 가게를 승계했으니, 그 부채는 모친이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안에 대해 한 번도 논의한 바가 없으면서 혼자 그렇게 판단했다. 무책임한 일이다.
그런 사유로 수없이 많았던 은행의 통보를 침묵으로 일관했다. 은행은 더는 기다려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필살기와 다름없는 '어떤' 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일명 '빨간 딱지'라고 일컫는 유체동산압류를 신청했다. 어느 날 대현의 자취방에 관청직원들이 들이닥쳐 얼마 되지도 않은 살림에 압류 스티커를 부착했다.
대현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따지고 들어 진상을 파악했다. 그길로 본가로 난입해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마침 양친이 집에 있었다. 대현은 손수 마련한 몽둥이로 본가의 세간살이를 몽땅 박살 냈다. 몽둥이로 거울과 유리창도 빠뜨리지 않고 잘근잘근 깨트렸다. 가구도 꼼꼼하게 때려 부수었다.
대현의 기질을 잘 파악하고 있는 양친은 잠잠해질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고 했다.
대현은 망가트릴 게 고갈되자 방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때 부친이 어르고 달랬다. 그사이 모친은 슬그머니 콜택시를 불렀다.
분이 풀린 대현은 순순히 정신병원으로 갔고 그길로 3개월간 강제 입원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입원 길에는 부친과 전철을 타고 나란히 앉아서 병원으로 갔다고 말했다.
정신병이라고 딱히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대현의 말투에서 뭔가 부자연스러움이 풍겼다. 괴상하게 바뀐 웃음소리도 상당히 거슬렸다. 맥락상 웃음이 나올 포인트가 아님에도 수시로 과장된 웃음을 터트렸다. 섬뜩했다. 야심한 밤이라는 배경도 음침함을 더했다.
그러다가 난데없는 질문을 했다.
"너 술은 여전히 마시냐? 낄낄…."
"요즘은 거의 안 마셔."
"어쩐 일이냐? 난 매일 마시는데. 이히히히."
"특별한 건 없고, 그냥 다음날 피곤하고 일도 잘 안 되고 해서 잘 안 먹게 되더라."
"대단하네. 나는 못 끊겠던데."
"그래, 나도 예전부터 먹었다 하면 코가 삐뚤어졌잖아.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원."
"그러게 대단하다야. 나는 지금도 먹는 중이다. …히히히."
"엥? 지금도 술마시냐? 야, 작작 퍼마셔라. 몸 버리겠다. 그런데 너 어디인데 이렇게 목소리가 울리냐?"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