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한 달 전
"네, 뭐라고요?"
"복수할 거라고."
"그러니까,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정리 좀 해볼게요. 오늘 근무 중에 우연히 승객으로 김정남 검사를 태웠다. 그 자식은 가증스럽게 형님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어쨌든 자택으로 귀가했다. 형님은 놈의 소재지를 파악했고 손을 봐주시겠다는 거 맞아요?"
"그래, 맞어."
"아이참, 왜 그러세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그러세요."
"야, 잔말 말고 너네 집 옆에 철공소 가서 몽둥이 될만한 거나 좀 주어와라."
"에이, 형님!"
"아, 그 자식 말 되게 많네?"
순간 가게 귀퉁이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다툼이 붙었다. 우리 테이블에서 몇 자리 건너 테이블에서 마작을 두고 있던 사내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심기가 불편한 참이었다. 저러다 말겠거니 생각하며 외면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드잡이가 점점 심해졌다. 둘의 몸이 주변 테이블을 마구 밀치고 있었다. 어라, 제발 이쪽은 오지 마라.
"아이쿠, 깜짝이야!"
놈들이 멱살잡이를 하다 등지고 있던 준식이를 밀쳤다. 준식이는 짜증스러웠는지 기어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니, 왜 여기서 싸우고 난리에요. 나가서 하시라니까요."
우락부락한 사내 둘이 멱살을 놓더니 값을 매기듯 준식을 위아래로 훑었다. 준식의 근무복 조끼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말했다.
"어디서 굴러먹던 개 뼈다귀인가 했더니, 택시 기사였군."
"저기요! 택시 기사 샌님들만 하는 거 아니걸랑요!"
드잡이를 하던 두 명이 어느새 친구가 되어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형님! 정신차리세요!"
준식이가 내 뺨을 두들겼다. 녀석의 안색이 창백하다.
"어?"
나는 뭔가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준식이 똥 마려운 개 마냥 호들갑 떨며 내 손에서 뭔가를 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초록병이었다. 내가 손에 힘을 풀자 준식이 소주병을 빼앗아 식탁 위로 올려놓았다. 주변은 정적에 휩싸여있었다. 모두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바닥에는 아까 그놈들이 쓰러져있다. 다시 준식이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지갑에서 만 원권을 두 장 꺼내 식탁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있었다.
"형! 정신차려요! 빨리 가야 해요!"
우리는 점포를 나와 각자의 택시를 타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집으로 경찰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내 택시가 집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침이 밝아오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의외로 깊은 잠까지 빠져들었다. 은주가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한 이후 처음으로 달콤하게 잠을 잤다.
날이 밝아오자 대충 아이들 아침을 마련해 주었다. 오늘도 근무를 나가는 걸 포기했다. 나는 두 사람을 때려눕히고 도망갔다. 음주운전까지 했다. 다가올 경찰을 기다렸다. 밤이 되도록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TV를 틀어 뉴스를 샅샅이 뒤졌다. 그 어디에도 차이나타운에서의 폭행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국
현재
불이 꺼진 아파트 계단실에 웅크리고 때를 기다렸다.
지속적인 미행 끝에 김정남이가 2층에 산다는 것을 알아냈다. 놈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올라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나는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손을 봐주기로 작전을 짰다.
며칠을 지켜본 결과, 다행히 3층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2층 계단은 사용감이 많은 반면 3층 계단은 반짝반짝했다. 숨기 딱 좋은 곳이었다.
다만, 복도식 아파트인 점을 고려한다면 공격할 때 주민들의 이목을 끌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단말마의 비명소리도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방에 쓰러트려야 한다.
마침 김정남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예상대로였다. 2층 복도로 꺾어 들어가자, 나는 가꾸목을 움켜쥐었다. 고양이 걸음을 하며 김정남의 뒤를 따라붙었다.
순간 불이 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골반 아래로 뻗어 있는 두 다리가 시원했다. 발가락 끝까지 차가운 감각이 전해진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될 상황이다. 그러나 뭔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나중엔 알게 된 사실은 '클로로포름'이라는 약에 당한 것이었다.
이어 나는 차량에 탑승한 기분을 느꼈다. 주변에서 누군가 웅성거리는 음성도 들렸다. 자세한 내용은 식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시야가 한 꺼풀 벗겨졌다. 눈앞이 한층 밝아졌다. 아직도 사물을 인지하기에는 초점이 많이 흐리다. 그런데 사실 그딴 거 다 상관없다.
지금은 그저 좀 자고 싶을 뿐이다.
다음 화에 계속.
This is a work of fiction, meaning it's made up and not real. Any similarities to real people, events, or places are pu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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