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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Oct 23. 2022

취업대작전 2

 너무 분했지만, 내 자필 사명이 분명했다. 엉뚱하게 진상을 부리는 취객 취급을 받은 것도 속상한 기억이다.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세탁물 분실 사건으로 600억 대 소송까지 이어진 사례가 있는데 말이다. 정말이지 이곳은 후진국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소송으로 물고 늘어지기에는 나는 정신이 너무 멀쩡했다.

 면접 준비가 시급하다. 그깟 싸구려 양복 한 벌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할 수 없다.


 그러나 내 방 옷장은 정장을 대체할 만한 복장이 없었다. 최대한 격식 있는 상의는 밤색 체크무늬 재킷이다. 언뜻 봐도 촌티가 풀풀 날린다.

 청바지를 제외한 바지는 정말 낡을 대로 낡은 베이지색 면바지가 유일하다.

 눈물을 머금고 그 옷을 입고 흰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었다. 거기다 남색 격자무늬 넥타이까지 걸쳤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영락없는 촌뜨기 꼴이다. 너무 어색하다.


 면접은 오전 10:00분, 장소는 거상 빌딩.

 내가 기거하는 고시원에서 전철로 45분가량 소요되는 거리다.

 나는 이동 시간에 넉넉히 1시간을 잡았다. 중요한 날은 도착 시간을 좀 넉넉히 할애해야 일정에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출발 전, 1시간 정도 예상 질문에 답변하는 이미지 트레이닝도 해야 한다.

 공복으로 갈 수는 없으니 아침 식사는 필수. 거기다 씻고, 입고, 나갈 준비도 널널하게 1시간을 할당했다. 그러면 기상 시간은 오전 7시. 그것도 10분 당겨 6시 50분 알람을 맞추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8시 30분에 아주 개운한 컨디션으로 눈을 떴다는 것이다. 왜 지각은 항상 충만한 컨디션을 동반할까(푹 잤으니 그렇겠지).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분통이 터졌다. 그렇지만 자책할 시간도 아깝다.

 나는 모든 생명력을 면접 준비에 쏟아 넣었다.

 수건만 들고 샤워장으로 우당탕 달려갔다. 샤워장의 누리끼리한 비누로 머리를 감고 양쪽 겨드랑이와 중요 부위에 비누기가 가실 정도로만 대충 물로 헹구고 뛰쳐나왔다.


 '아니, 사흘 전에 널어놓은 양말이 왜 축축한 걸까?'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비틀어 짜면 물기가 주룩 흘러나올 정도로 젖어 있다.

 구두를 벗을 일이 없어 외관상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젖은 양말을 신고 면접을 볼 자신이 없다. 얼마나 신경 쓰일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젖은 양말이라니.

 서랍에서 짝을 분실한 다른 양말 찾아 한 짝씩 신었다. 그래도 구두를 신고 바지를 입으니 교묘하게 가려진다.


 머리를 말릴 시간이 없다. 왁스로 머리를 정리했지만 물기가 남아있어서 생각대로 모양이 잡히지 않는다.

 이대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이제 8시 58분. 준비해둔 옷을 입었는데 와이셔츠의 카라 한쪽이 위로 꼬부라진다. 넥타이를 매어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반대편 안쪽으로 아무리 구부려도 비틀어져 올라갔다.


 울화통이 터지지만, 시간이 없다. 일단 이동하면서 이 우스꽝스러운 몰골을 어떻게든 손써보기로 했다.

 전철역 플랫폼은 끝도 보이지 않는 줄이 서 있다.

 출근 시간은 아까 지났다. 지금 서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 시간에 러시아워라니. 내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걸까.

 주요 언론사 기사는 매일 읽는다. 그 덕에 사회에는 밝은 편이라 자부하지만, 그 어디에도 10시 출근이 보편화됐다는 소식은 들은 바 없다.

 어떻든 기차가 도착했다. 정렬해 있던 줄은 질서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개판으로 일그러졌다.

 전철 문이 열리고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밀려 나왔다. 막상 내려야 하는 사람들은 전철을 타려는 사람들이 버티고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탑승객과 하차 인원, 두 계층 간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갈렸다. 어떤 사람은 출근도장을 찍으러 가기 위해 육두문자를 날리며 울부짖었다.

 "좀 비켜 이 개새끼야!"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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