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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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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Oct 24. 2022

취업대작전 3

 살얼음판 같은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양옆의 다른 칸은 상황이 대충 정리가 되어 문이 닫힌 상황이었다.

 나는 여차하면 옆 차량의 문으로 달려가 탑승을 시도했다. 번번이 문이 닫혀 실패했다. 닫혀서 돌아서면 문에 뭐가 끼여 다시 열리기를 반복했다. 전철은 아주 교활하게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시민들을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이 실랑이 속에서도 특유의 잔머리로 슬쩍 탑승할 수 있었다(운도 따랐지만). 나는 몇 칸 떨어진 곳에 문이 열린 칸을 발견했다. 내가 들어갈 빈틈도 있었다. 전력 질주해서 열차 문이 거의 닫히기 직전에 살포시 탑승했다.

 '철컹'하고 문이 아슬아슬하게 닫히고 출발했다.

 내가 저 철옹성 같은 문을 뚫다니. 객실 중간에서 내리지 못한 사람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애석할 따름이다.

 전철은 터널을 파고들었다.


 전철은 콩나물시루나 다름없었다. 꿈쩍도 못할 만큼 사방이 빽빽했다. 갑갑해서 미칠 것 같은 상황은 알겠는데 이상하게 내 목을 조르는 기분은 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근처에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 주름 많은 노신사와 과장스럽게 화려한 레인부츠를 신고 있는 젊은 여성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언쟁을 펼치고 있었다.

 특히 여자 쪽이 급발진이 나 툭 건들면 당장이라도 엉겨 붙을 기세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기점으로 홍해의 기적처럼 공간이 벌어졌다.

 누구 하나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을 하고 있다.

 저런 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현시대에 가장 악독한 형벌일 것이다. 상황이 기가 막혔다.

 내가 인지한 자초지종은 대충 이러했다. 여자가 뭔가 공중도덕을 어기는 행동을 했고 노신사는 그 점을 계몽적인 말투로 지적했다. 이에 수치심을 느낀 여자는 나름의 항변을 했고, 노인도 도덕적으로 올바른 규범을 거론하며 맞불을 놓아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가장 큰 문제점은, 내가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다는 거다.


 나는 수십 명의 경멸적 시선을 벗어나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목덜미에 심각한 저항감을 느껴졌다.

 아뿔싸, 넥타이가 문에 끼였다.


 넥타이를 빼내려 풀고 당기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내 등 뒤에 두 남녀의 기행에 주목했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나의 덜떨어져 보이는 행동까지 합세해 무료한 인간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일종의 불행 포르노를 자아내고 있었다. 대중심리는 기묘하다.

 나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내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일에 나까지 바보 같은 모습으로 일조하고 있다는 상황이 견딜 수 없었다. 우리는 원숭이 재롱을 떨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누가 저 두 사람 좀 말려주기만을 빌었다(덤으로 넥타이도 빼주소서).

 그러나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음증은 그칠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재미있는 걸 왜 말리겠나 싶다.


 얼마 후 대치 상태의 두 사람은 불꽃 튀는 몸싸움을 몇 차례 주고받았다. 나를 사이에 두고 말이다.

 나를 방패막이로 쓰며 마구 흔들어대는 그들에게 "저는 아니에요!"를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구경꾼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우스워했다. 내가 구경꾼이었어도 배꼽 빠지게 웃으면서 팝콘을 찾았을 것 같다.

 노인과 20대로 추정되는 여성의 완력은 대등했다. 멱살잡이 끝에 여성의 박치기 일격을 맞고 노인의 코가 깨졌다. 백병전은 그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노인은 흐르는 코피를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다른 손으로 여자에게 삿대질했다.

 "너, 딱 기다리고 있어."

 "쌍방이다! 니도 두고 보자, 내 경찰에 빽 있거든! 가만 안 놔둘 끼다!"

 여자는 경남지방 방언을 쓰며 경찰에 줄이 닿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싸움도 이제 소강상태. 모두 전철이 정차하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그들의 전쟁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었고 어서 빨리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역에 정차하기 직전 창문 너머로 경찰들과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인파들이 보였다.

 미리 신고를 받고 대기 중이었을 것이다. 경찰들의 표정은 세상 피로해 보였다. 근무 조가 어떻게 편성되었든지 간에 갓 출근한 사람들의 얼굴 같지는 않았다.

 경찰들은 두 사람에게 신고받고 출동했다. 서로 동행하자고 했다.

 나는 넥타이가 해방되어 조용한 곳으로 갈려고 하던 차에 어디가시냐며 (경찰)서로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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