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나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항변했다. 경찰은 대충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근처에 있던 사람으로서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이상 공권력에 반항했다가는 상황 전개가 몹시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당장 경찰서로 갈 수는 없다. 다만, 참고인 조사가 불가피하다면 추후에 방문하여 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 말은 순순히 먹혀들지 않았다.
경찰들은 애초에 내 말을 들을 의지가 없어 보였다.
시각은 어느새 9시 3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줄행랑을 쳤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발이 빨랐다. 귀찮음에 찌든 경찰 정도는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그래, 도망이라니 좀 비겁하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 역은 출구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출구로 생각되는 지점으로 냅다 뛰어나갔다.
곧이어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전력 질주했다. 출구 게이트에 교통카드를 태그하고 지상으로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간신히 경찰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인도로 황급히 걸어갔다. 택시를 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서울의 교통사정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더 늦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다시 말해 전철을 타는 옵션만 가능했다.
하지만 다시 내려가 전철을 타면 아까 해결 짓지 못한 문제가 발목을 잡아 돌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정거장을 되돌아가서 전철에 탑승한다면? 아까 난리 통을 기억하는 승객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나는 다음 역으로 뛰어갔다.
전철역까지 무사히 도착하긴 했는데 내가 타야 하는 노선과 전혀 다른 호선이다.
길을 잘못 들어 착각하고 말았다. 아까의 그 끔찍한 사건의 여파로 경황이 없었다. 지도 어플을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그래도 환승하면 아직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다. 저 깊은 구렁에서 '나 아직 살아있다!'라는 희망의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이상한 일에 두 번 다시 휘말리지 않기 위해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며 전철에 탑승했다. 마침 빈자리가 있었다. 좌석에 몸을 맡기고 앉았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민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려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이 크게 한몫했겠지만, 아까 뛰어온 관계로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여파로 쉰내와 고시원의 꿉꿉한 냄새가 뒤섞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꼭 비 맞고 방치된 신발 냄새를 방불케 했다.
유리창으로 비치는 내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몸싸움과 도망치면서 머리는 조선시대 망나니같이 산발해 있었다.
그리고 그놈의 셔츠 카라는 또 뒤집혀 있었다.
어쨌든 나는 안면 몰수하고 시선을 견뎌냈고 면접 시간 10분을 남기고 회사에 도착했다.
아니, 아마 10분 정도 남았을 거다. 회사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핸드폰을 오토바이에게 날치기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정확한 시간을 알았을 것이다.
회사 로비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예술은 난해해서 잘 모르지만, 저 동상만큼은 웅장함과 벅찬 감정이 느껴진다.
언젠가 신문에서 거상 그룹 회장은 예술품 수집을 취미로 삼고 있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참 그래, 거상 그룹에서 운영하는 미술관도 있다!
그런 점을 반영한다면 진품임이 틀림없다.
"이봐, 학생! 여기 함부로 들어오면 안 돼."
멀쑥한 검은 정장차림의 남성이 말했다. 한 오십은 돼 보였다.
"네? 저 말씀이신가요? 전 면접 보러 왔는데요?"
정장 맨은 위아래로 시선을 스캔하며 값을 매기더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면접 접수증 주세요."
반말에서 존댓말로 대우가 한층 격상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면접 접수증이요? 그런 말은 없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면접 접수증이라니. 나는 면접 안내 메일을 몇 번이고 정독했다. 내용에 접수증을 지참하라는 안내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확인차 스마트폰을 꺼내려다 금방 전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