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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Oct 27. 2022

취업대작전 6

 이렇게 사무실을 차례로 들락날락거렸다. 나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고 모멸 어린 시선과 때로는 고위 간부급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질책하기도 했다. 나는 아주 송구스럽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퇴장했다.

 그러길 반복하다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의 여직원이 하얀 팔을 들어 자신임을 알렸다. 말과 행동은 차분했는데, 거지꼴을 한 나를 보고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어쨌든 인솔자에게 이미 연락이 닿았던지, 석유 냄새가 모락 나는 A4용지를 들고 있었다. 능숙한 솜씨로 이름 부분을 재단하고 케이스에 밀어 넣어 전달했다.

 나는 이름표를 차고 다시 대강의장으로 나섰다.

 미로 같은 길은 금방 전에 지나왔음에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텐데 온종일 바보가 된 기분이다.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낯선 공간을 벗어났다. 복도 반대편 끝에서 향긋한 커피향이 풍긴다. 제대로 찾아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문득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는 후각이 동물적으로 예민해진다고 한다. 지옥 훈련을 거듭하는 미국 특수부대원들은 훈련장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풍겨오는 치즈버거 냄새를 맡았었다.

 내가 다시 강의장으로 복귀했을 때에는 벌써 몇 팀이 비어 있었다. 나머지 대기 인원들이 나를 벌레라도 보는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아무렴, 어때. 나는 눈을 감고 평점심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인솔자가 들어오자 다들 자세를 바로 잡았다.

 나를 포함한 총 8명을 호명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다시 2개 조로 분리되었다.

 우리 조는 처음에 지나온 복도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기했다.

 다들 눈을 감고 자기소개 멘트를 복기하는 것 같았다.

 이들을 보면 나는 복장만으로도 불합격될 것이 직감되었다. 면접으로 만회할 수 있을까? 이 저주받은 오늘은 그만 잊고 나도 어서 예상 질문을 복기하자!


 그런데, 지금 저 여자가 커피를 마시는 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말려야겠다.

 커피점에서 일행들과 잡담을 하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손 세정제를 3번이나 눌러 넣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 맹렬한 사명감은 7년 전 군 복무 시절에 비롯되었다.

 우리 내무실은 20대 초반의 호기 넘치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그 시절 우리는 몸집만 컸지 소년과 다를 바 없었다.

 외부와 철저히 폐쇄된 공간은 허세와 자신감이라는 독버섯을 무한에 가깝게 성장시켰다. 증명할 수 없다는 현실이 게 작용했던 걸까.

 한양대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한유진 일병은 고학력의 자부심에 심취해 매사에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걸핏하면 "아, 씨발. 내가 이래서 대학교 안 나온 새끼들 하고는 말을 못하겠어."를 남발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한유진 그는 한양사이버대에 다니고 있었다. 신병으로 들어온 진슬기 이병이 그의 고향 친구였다. 어이없는 거짓말은 순식간에 탄로가 났다.

 이렇듯 한없이 깨끗하고 보들보들해 보이는 녀석들이 사회에서는 죄다 한 가닥씩 하시는 분들이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밝혀낼 재간이 없었다. 어쨌든 내무반 아이들은 수십 번 반복했던 이야기를 풀어낼 때마다 변화무쌍하게 사건의 틀이 바뀌었고 점점 더 드라마 틱하게 말이 바뀌었다.

 주로 주먹다짐 이야기나 여성편력에 관한 주제였는데, 하나 같이 멸치같이 왜소한 녀석들이 자기는 왕년에 나대는 일진이 되기 싫어 배후에 숨어있는 실질적인 '짱'이었고, 딱지도 못 떼고 사창가에서 쭈뼛거릴 것 같은 녀석이 양다리를 넘어 오다리를 걸쳤다는 식의. 그러니까, 언제는 7 대 1로 싸워서 이겼다고 하더니, 오늘은 17 대 1이었다는 식이다.

 무용담은 왜 항상 7 대 1 아니면 17 대 1인 것일까?

 그런 현상을 감안하면 절반만 믿어도 후하게 쳐주는 거라 생각한다.


 그날도 화두로 올랐던 것이 이른바 '술부심'이었다.

 전우들에 비하면 내 주량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다들 소주 4병은 기본으로 마셨다. 그 시절 소주는 지금보다 도수가 훨씬 높다.

 세월이 지날수록 소주는 계속 순해졌다. 그러나 소주 2병을 마시면 만취한다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회 통념이다.

 그럼에도 20대 조무래기들이 무슨 술을 그렇게도 잘 마시는지 2병, 3병도 아니고 꼭 4병 아니면 7병인 걸까? 숫자 4, 7에 집착하는 까닭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어떻든 한유진 병사는 아침까지 술을 마셔도 멀쩡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최승엽 병사가 자신은 한 병씩 주문하는 게 하도 번거로워서 아예 짝으로(box) 받아서 먹는다고 맞받아쳤다.

 이 논쟁은 다른 사안과 달리 훨씬 원만하게 종결되었다.

 누군가 실제로 겨뤄보면 되지 않냐며 제안하면서 판이 벌어졌다. 술을 구할 방법이 없었던 우리는 그렇다고 술을 담글 인내심도 없었다.

 "야, 술이 없으면 알콜은 어때? 예전에 러시아에서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 공업용 알콜 마셨대더라. …큭큭큭!"

 우리는 러시아인들의 술에 대한 애정에 놀라움과 실소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날 일직 병사가 의무실에서 소독용 알코올을 한 병 슬쩍했다.

 용기 라벨에는 에탄올 70퍼센트와 해골 마크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목숨과 바꾸기에는 터무니없이 저렴해 보였지만, 풋내기 주당들의 의욕을 꺾지는 못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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