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둘은 결국 수통 뚜껑에 알코올을 따라서 단숨에 꺾어 넘겼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굴었지만 한유진 병사는 미세하게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최승엽 병사도 쿨럭이며 헛기침을 한차례 했다.
그들의 용맹함을 과시하기에는 한 잔이면 충분했다. 누구 하나 먼저 한 잔 더 마셔서 본때를 보여주겠노라고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 정도면 비긴 것으로 하자며 꽁무니를 뺐다.
그리고 두 명의 알코올 전사들은 여중생이 빈혈 일으키는 자세로 다소곳하게 쓰러졌다.
술이 세긴 센 것 같다며 감탄하고 있던 우리는 두 병사를 업고 내무실로 뛰어갔다. 삶의 지식이 풍부하지 못했던 우리는 단순히 술을 먹고 뻗은 것으로 생각했다. 적당히 눕혀 놓으면 술기운이 떨어지면서 깨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점호시간이 임박해도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지독한 술 냄새만 숨결에 풍겨 나왔다.
"이런 염병할. 이제 우린 좆됐어."
결국 분대장이 대표성을 띈 보고를 했고, 두 병사를 의무실로 이동시켰다. 아직 여드름이 무성한 의무병은 난데없이 실려 온 취객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
소대장은 상황을 짧고 굵게 요약해서 설명했다.
단순히 술만 먹었으리라 생각했던 의무병은 하룻밤 충분히 재우면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들이 마신 것이 정상적인 술이 아니라 소독용 알코올이라고 순순히 보고하지 못했다.
위험성을 알지 못했을뿐더러, 의무실에서 의무실 물품을 훔쳤다고 말할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시의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던 그들은 아침에서야 깨어났다. 두 병사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젊은 치기에 벌어진 사건으로 줄 장님이 된 두 병사는 군 병원에서 형식적인 치료를 거듭했다.
기적은 없었다. 끝내 별다른 차도를 보지 못하고 둘은 장님으로 군 생활을 매듭지었다.
손 세정제가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면서 두 선임 병사들을 떠올렸다.
한 모금에 특급 전사 두 명이 나가떨어졌다.
저 아담한 여성이라면 더욱 치명적이다. 더군다나 손 세정제를 세 차례나 펌프질 했으니. 아메리카노를 입에 대는 것은 반드시 말려야 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저기요!"
하마터면 커피를 쏟을 뻔한 여성은 놀래서 눈이 동그래졌다.
"드시면 안 됩니다. 알코올이 들어갔어요!"
늘 그랬듯이 내 몰골을 보고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반색을 하며 돌아섰다.
나는 여자의 팔목을 거칠게 가로채 끌어당겼다. 속절없이 끌려온 여자와 일행들이 경악했다.
"끼악! 왜 이래요!"
나는 여자의 플라스틱 커피잔을 농수선수처럼 순식간에 가로채어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텅 소리가 나게 빠뜨렸다.
"지금 이제 무슨 짓입니까!"
여자 뒤에 서 있던 키가 큰 남자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아까의 상황을 최대한 정중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겪은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문제의 여자는 버러지 보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머머, 제가 세정제를 넣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시럽을 넣었어요. 사람을 뭘로 보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여자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뭐, 이미 충분히 망신스럽긴 하겠다. 그 정도는 이해한다. 더 이상 실랑이도 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젊은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부랑자 꼴을 한 수상한 사람과 말다툼이라니(아까 전철에서 싸우던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커피점에서 뜻밖에 말이 들렸다.
"저기 고객님 이거 서비스로 드릴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여자는 수줍게 "어머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 일행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면접실에서 내 이름을 호명했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