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결
내 뒤로 3명이 더 입장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
방 중앙에 넉넉한 풍채의 중년 남성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남자가 말했다.
"앉으세요."
우리는 의자에 앉아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주시길바래요. 제한 시간 1분입니다."
첫 사람이 시작했다.
"Introduce myself. …oh, my bad."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아.. 실수했습니다.
"한국어로 다시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기진입니다. 면접의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3살 때 외교관이신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IBM 마케팅 부서에 인턴으로 재직하며 기업용 제품 프로모션 업무를 경험했습니다. 그 직무경험을 살려 거상 그룹에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하략) 감사합니다."
영어가 얼마나 편하길래 자기소개랍시고 영어가 튀어나올까? 그리고 자신의 단점을 묻는 질문에 '완벽주의자'라서 팀원들이 피곤할 수도 있다는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속물주의자 같으니!
다음 사람은 무난한 자기소개를 끝내고 대뜸 '지는 마, 토종 한국인입니더. 그래도 노래 한 곡 하겠십니더.'하고 돌발행동을 했다.
이어 '오오, 세이 캔 유 씨….(Oh, say can you see….)'로 시작하는 미국 국가를 불렀다. 한 곡을 완창 하자 면접관들은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다른 한 사람도 대충 비슷하게 흘러갔고 바톤이 나에게로 넘겨졌다.
나는 준비한 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질문에도 충실하게 답을 했다.
중년 남자는 침을 삼키고 초연한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결론 먼저 말하지. 김기진 95점, 정대식 80점, 이성진 87점. 자네들은 합격이야. 오늘 자네들의 감점 포인트는 돌발 질문에서 나왔네. 위기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평가한 걸세. 어쨌든 자네들 케이스는 꽤 괜찮아."
"아니, 이보게 이 사람아! 점수를 말하면 어떡하나!"
"뭐야? 이 사람? 박 부장! 정신 나갔구먼!"
벌떡 일어나 삿대질하며 말했다.
"오지랖도 정도가 있어야지! 난 괜찮은데 상무님께서 아시면 뭐라고 하시겠나!"
박 부장이라는 남자도 질세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천장에 붙어 있는 카메라에 대고 소리쳤다.
- …음, 음. 나 최 상무일세. 상황실에서 다 보고 있었네만, 나는 괜찮은데 전무님께서 불편해하실 것 같은데 말이지.
실내 음향시설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봐! 이 양반아 그래도 잘했다고 할 생각인가?"
"이 양반이라니! 터진 입이라고 계속 막말할 텐가? 그리고 인사과 새끼들! 상무님께서 통제실에서 보고 계신다는 말은 왜 안 했어? 이 개새끼들 봐라?"
- 김 부장. 진정하게. 나 김 전무이오만. 나는 괜찮은데 사장님께서 불편하실까 걱정이 되긴 하네.
전무까지 등판하여 김 부장이라는 남자는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두 사람은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드잡이를 했고, 난데없는 소동에 바깥에 있던 양복맨들이 충원되었다.
그들도 나름의 파벌이 있었는지 진영을 갈라서 거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젊은 직원 몇 명이 욱하는 바람에 주먹다짐으로 번졌고 카펫 바닥을 뱅글뱅글 구르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말리던 사람들이 싸우던 사람의 펀치를 얻어맞고 또 다른 싸움으로 이어졌다. 총체적으로 난국이 따로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거상 빌딩은 들어오기는 힘들었어도 나가는 길은 제약이 없어서 순조롭게 걸어 나갔다. 전철은 울렁증이 생겨서 당분간은 피하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148번 버스에 탑승해 중간쯤 좌석에 앉았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언제 취업할까?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