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본 적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이 망했다.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먹을 게 지천에 널려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먹을 게 씨가 말랐다. 남은 생존자들은 주로 벌레나 다람쥐 같은 작은 짐승들을 사냥해서 연명한다. 다람쥐와 그냥 쥐는 생긴 건 천지 차이지만 맛은 비슷하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토끼 사냥에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토끼도 거의 멸종한 것 같다. 너무 배가 고프면 새로 올라오는 푸성귀를 뜯어 먹는다. 무척이나 쓰고 맛이 없다.
엄마의 엄마는 말했다. 생존자들이 도망쳐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에 뿌리내렸다고.
지금도 가끔 비행접시가 날아와 우리의 은신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간다.
무리에서 가장 늙은 아저씨는 옛날에 그들에게 붙잡혀 포로 생활을 했다. 아저씨는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말할 수 없는 힘든 기억일 것이다. 아저씨는 기지를 발휘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자유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악랄한 놈들이 아저씨의 한쪽 귀를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귀가 뜯겨 나갔다.
너무도 잔혹한 일이다. 아저씨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귀는 다시 자라지 않았다. 아저씨의 왼쪽 귀가 있던 자리는 흉측하게 일그러져 흉터로 남았다.
생존자들은 규칙을 만들었다. 그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 사항 1항이었다. 다만, 가장 늙은 아저씨는 예외다.
아저씨는 그들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그게 교육적 가치로 충분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적을 알면 알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중적인 잣대에 대해서 일종의 관음증을 엿볼 수 있었다. 아저씨의 말에 숨죽이고 듣고 있는 무리는 자신들이 내세운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통념을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깨트렸다. 그럼에도 부끄럼 하나 느끼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뭔가 구역질이 느껴 진다.
아저씨가 입에도 담아서는 안 될 자들을 언급할 때면, 나도 까닭 없이 가슴이 떨린다. 아마도 나도 사람들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금지된 행동을 한다는 희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잡혀갔다.
하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단단한 물질들이 나타나 엄마를 결박하고 거두어 갔다. 분명 비행접시는 아니었다. 새로운 병기였다.
나는 엄마를 구하기로 나섰다. 나의 동생도 선뜻 길을 따라나섰다.
가장 늙은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입에 담지도 못할 그놈들의 마을로 잠입하기에 앞서 작전을 짰다. 아저씨는 세월이 그렇게 오래 지났지만, 탈출 경로를 잊어먹지 않았다. 하긴 그 모진 아픔을 겪고 어찌 잊을까.
"산을 내려가면 강이 나온다."
그 강이 흐르는 쪽을 따라 3일을 걷어가면 악취가 나는 구역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들의 공간과 가까워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동생과 나는 이글거리는 감정을 가슴에 묻고 발톱을 감추었다. 화가 난다고 다 드러내면 지는 것이라고 엄마가 누누이 말했었다.
출정에 앞서 우리는 목욕재계를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무리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나와 격려해주었다. 엄마의 엄마는 마음이 꽤나 안 좋으셨는지 우리가 떠나는 날에 어딘가로 자리를 비우셨다. 우리가 떠나는 것을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말리셨다.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까지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동생과 나는 움막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걱정마세요. 우리가 엄마를 꼭 구출해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