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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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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Nov 02. 2022

지구종말론 4

 "공격이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저희는 산속에서 왔어요. 사흘 전 하늘에서 알 수 없는 물체가 나타나서 엄마를 납치해 갔어요. 우리는 엄마를 찾으러 길을 나섰고요."

 "…아, 그런 일이 있었냐? 그렇다면 곧 다시 침공이 시작될 모양이구나. 이제는 어쩌나…."

 온통 검은색으로 칠한 아저씨는 절망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희끗한 수염이 시커먼 얼굴과 대비되었다.

 아저씨는 내가 알지 못하는 속 깊은 사연이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소매에서 감춰두었던 무기를 슬그머니 꺼내 들었다. 낡을 대로 낡아 있었지만, 날은 바짝 서 있었다.

 그럼에도 바위의 평평한 면에 난데없이 날을 갈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나도 무기를 꺼내어 뽐내고 싶은 충동이 뿜어져 나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무기 자랑이나 할 상황이 아니었다.


 "난 군인이었단다."

 바위에 날을 문지르던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뭔가 감정이 울컥했는지 말을 잠시 멈추었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원래의 톤을 찾아 말을 이었다.


 "우리는 특수부대였다. 작전에 실패하고 전멸당했단다. 우연한 기회로 나 혼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 부끄럽다. 놈들은 말이다. 크기만 큰 게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나는 실전 전투 경험이 많지만, 그런 전술과 공격 방식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중에 패잔병 무리에게 듣고 알았지, 그걸 생화학 공격이라고 한다더구나."

 아저씨는 갈수록 횡설수설했다. 미친 게 틀림없다. 이 사람의 말을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나는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 허리를 잘랐다.

 "아저씨, 정말 힘든 일을 겪으셨네요. 가까운 사람을 잃은 기분 저도 잘 알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만 가던 길을 가보겠습니다. 아저씨도 건강히 살아남으세요."

 그러고 등을 돌렸다.

 "… 가지 마라. 거긴 위험하다."

 아저씨 명령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뒤돌아서자, 아저씨는 숲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가로 가면 위험하다. 그놈들의 진지는 높은 지대에 있어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잠입하려면 숲으로 가야 한다. 만에 하나 놈들을 만나더라도 나무 사이로 도망가야 승산이 있다. 그리고 어둡게 위장해야 한다. 놈들은 어두운 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단다."

 나는 그제야 아저씨의 이상한 차림새가 납득이 되었다. 동생과 나의 옷은 하얀색이다. 다만, 낡고 때가 타서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그럼에도 검은색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우리는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흙밭에 뒹굴어 옷을 더럽혔다. 그러나 약간 더 지저분해졌을 뿐, 여전히 흰색 계통인 것은 변함없었다.

 아저씨는 우리 행동이 우스웠는지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 곧 있으면 동이 튼다. 날이 밝으면 놈들이 나타날 수도 있단다. 너네 들 산에서 왔다면 꽤 멀리서 왔을 텐데. 우리 집에서 하루 묵고 가거라. 요깃거리도 있다. 어제 운 좋게 꿩을 잡았지."

 우리는 내가 고팠고 내 기억에 의하면 그 누구도 꿩고기를 먹고 맛없다고 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아저씨의 제안에 그저 고개만 끄덕했다.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멋들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근처 거대한 바위의 틈 사이로 들어갔다. 몸을 수그리면 겨우 한 사람 들어갈 만한 비좁은 틈이 있었다. 아, 여기가 아저씨가 말했던 집이구나.

 집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입구도 감쪽같이 숨어있어 일종의 군사시설 같았다.

 이런 은신처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 누구도 이런 곳에 집이 있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저씨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오해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오히려 생존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얼마 후 입구에서 한 가닥 빛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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