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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Nov 03. 2022

지구종말론 5

 실내가 한결 밝아졌다. 곧 날이 밝아 올 거라고 예견했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한밤중에 해가 뜰 거라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동생이 꿩 날개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아침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지."

 아저씨는 현자처럼 말했다. 우리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저씨의 말투와 비슷했다.

 어떻든 나로서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아저씨의 요상한 첫인상은 깨끗이 씻겨 나갔다.

 군인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것도 특수부대란다. 과묵한 행동거지에 신뢰가 느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지적했던 모든 단점이 알고 보면 장점이었다.

 아저씨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손질했다.

 세월의 흔적이 아저씨의 나이를 가늠케 했다. 작고 볼품없는 내 무기를 꺼내 보이는 건 삼가야겠다.

 집 안에는 물이 솟아 나는 작은 샘도 있었다. 우리는 목을 축이고 잠자리로 들었다.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라 혼자 자고 싶었지만, 혹시나 모를 돌발상황을 대비해 동생과 함께 자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위를 위해 등을 맞붙이고 눈을 감았다.

 세상이 망하던 날. 아저씨도 그 전쟁에 참전했겠지? 그날의 전투는 어땠을까? 나였다면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일은 어떤 형국일까? 아, 어떻게든 싸움은 피하고 싶다.

 그렇다면 엄마를 무사히 구출해올 수 있을까? 계속되는 질문을 반복하다가 잠이 들 수 있을까? 애써 밝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동생의 호흡이 느껴진다. 녀석은 벌써 잠이 들었다.

 방 안에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뜨거운 해가 바위를 달구고 있는 것 같다.

 온몸으로 추위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내 움직임에 동생도 일어났다.

 우리는 아저씨를 찾아 방에서 나왔다. 전날 밥을 먹던 곳에 쥐 한 마리가 올라가 있다. 배를 보이며 축 늘어져 있었다. 동생은 샘물을 몇 모금 마시고 입맛을 다시고 있다.

 "밖으로 나가보자."

 나는 입구로 앞장서 가며 말했다.

 아저씨는 어제와 같이 바위에 앉아 먼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잘 주무셨어요?"

 "언제 나왔냐? 무진장 피곤했나 보더구나. 천둥 번개가 따로 없더라. 무슨 코를 그렇게 고는지, 놈들이 나타날까 무섭더라."

 아저씨의 말이 어찌나 웃기던지 우리는 엄마 일도 까맣게 잊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저씨, 우린 이제 갈게요. 먹여주고 재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어 동생도 비슷한 말로 고마움을 전했다.

 "건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까딱 거리고는(그 마저 미세한 동작으로) 다시 등을 돌리고 앉아서 먼 산에 우두커니 응시했다.

 하룻밤이지만 얼마나 안락했는지 다시 떠나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더는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황급히 숲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하루의 재충전에 의욕이 충만해졌다. 침울했던 분위기도 반전되었다.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하면 다시 두려움이 앞섰지만, 지금의 밝은 기분을 깨트리지 말기로 했다.

 따라서 그놈들을 만났을 때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가 논의하는 것은 미루기로 했다.

 동생도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하루의 재충전에 이토록 많은 심리적 여유를 안겨 주었다. 우리는 휴식의 민족인 걸까.

 어쨌든 우리는 반나절을 내리 걸었고 커다란 나무를 발견했다. 슬슬 피로감도 밀려왔다. 해가 뜨기 전에 잘 곳을 마련해야 했다. 안전으로 치면 나무 위 만한 게 없었다. 우리는 큰 나무 위에서 자기로 했다.

 계산대로라면 이 끝없는 행군도 오늘 밤이 마지막 될 터였다.

 마침 바람결에 구린내가 물씬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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