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가야 할까?"
"이제 제법 가까이 왔을 거야."
동생은 어리지만,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동생도 구린내를 맡을 만큼 코가 충분히 예민하다. 동생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진다.
'놈들은 거인이란다.'
늙은 아저씨의 말이 곱씹었다. 대체 얼마나 크길래 거인이라는 걸까. 그때 봐두지 않은 게 후회막심하다. 반나절을 내리 걸었고 쫄쫄 굶은 탓에 고단했던 우리는 곧장 골아떨어졌다.
뭔가 축축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달리 비를 피할 대책은 없었지만, 마냥 나무 위에만 있을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황급히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역시 몸을 숨길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저씨의 따뜻했던 보금자리가 그리웠다.
우리는 나무 밑둥에 몸을 바짝 붙이고 웅크려 앉았다. 동생의 온기가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너무 춥다. 그리고 이 칠흑 같은 어둠이 공포감을 더했다. 비는 언제 그칠까? 이러다 들개라도 마주칠까 걱정된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깟 비바람도 무서워서 질질 짜면서 거인들을 뚫고 엄마를 구출하겠다고 나섰다. 아무래도 내 고집이 너무 지나쳤다.
나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서글프다. 바보 같다. 처량하다. 무모하다. 등신 같다.
결국, 눈물이 흘렀다.
"엄마."
"엄마아."
동생도 엄마를 부르며 흐느꼈다. 우리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었다.
"비야! 비야! 많이 와라! …흐어어엉."
새 소리에 정신이 들었을 때 동생과 나는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동생도 고개를 들고 슬며시 눈을 떴다. 우리 홀딱 젖어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난을 훌쩍 뛰어넘었고, 고집도 한풀 꺾였다. 동생도 판단력을 차츰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 하나 먼저 돌아갈 것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강물로 목을 축이고 그렇게 다시 길을 걸었다.
"새들아, 고마워!"
우리는 무리를 떠난 이후로 가급적 침묵을 했지만, 갈수록 혼잣말이 늘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꼭 대답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각자 머릿속의 말이 떠오르면 떠오른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딱히 상대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대답을 하고 싶으면 했고, 그냥 듣기만 하기도 했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밝아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걷기로 했다. 몹시 배가 고팠다. 그러나 먹을 게 전혀 없는 관계로 빈속으로 길을 걸어야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들렸다. 심장이 쪼여 들었다.
동생과 나는 반사적으로 풀숲에 엎드려 자세를 낮추었다.
'그놈들이다.'
근처가 바로 놈들을 진지다. 이번만큼 위험한 건 처음이다. 다행히 놈들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집채만 한 몸을 육중하게 움직였다. 거대한 두 생명체가 떠드는 소리는 생소함 그 자체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심경이 복잡했다. 저런 놈들의 진지에 잠입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다.
엄마가 무사하기나 할까? 나이 많은 아저씨 말로는 실험실행이라던데. 우리의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실험을 한다고 했다.
"아저씨 말이 맞았어."
놈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동생이 소곤거렸다.
"어쩌지? 다시 돌아갈까?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아저씨한테 다시 가볼까? 부탁해보자. 놈들 진지까지만 같이 가달라고. 그다음은 상황을 봐서 다시 결정하자."
"뭐? 미쳤어? 지금 저놈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리고 아저씨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어."
나는 구역질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라고 딱히 방법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지만, 동생의 제안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동생의 눈빛이 험악해졌다.